안녕하세요. 작은대학교입니다.
지난 시간에는 피아노의 위상이 점차 강화되면서 실내악이 기존의 의미가 아닌 아주 새로운 의미의 실내악으로 자리매김 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럼 오늘은 피아노 소나타에 대해서 알아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2) 피아노 소나타
① 피아노의 등장
피아노는 대표적인 고전시대 악기입니다. 피아노는 18세기 후반에 음악계의 주목을 받은 뒤 전성기 고전시대의 쳄발로, 클라비코드 등의 이전 건반악기들을 뛰어넘게 되었습니다. 이전까지는 쳄발로가 가장 대표적인 건반악기었습니다. 쳄발로는 건반을 누를때마다 기타의 피크 역할을 하는 깃촉이 줄을 퉁기면서 소리를 내는 악기입니다. 이 악기는 음량이 풍부하고, 여러 단의 건반을 갖추기도 하며, 음역에 따른 음색의 대비와 폴리포니적인 다성부 연주에 탁월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줄을 퉁기는 발음의 원리 때문에 음의 세기를 조절하기가 어렵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여 쳄발로의 음세기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조합되는 음의 수를 늘려주거나 트릴을 사용해야만 했습니다. 반면 클라비코드는 건반을 누를 때 접촉쇠가 장착되어있는 줄을 직접 치면서 소리가 나는 악기입니다. 이 악기는 미세한 음량 조절이 가능하지만, 전체적인 음량이 적기 때문에 역동적인 표현을 하기에 어려움이 있는 악기입니다. 하지만 감정과다 양식에 잘 어울리는 악기였고, 일반인들이 가정에서 연주하기에 적합한 악기여서 널리 사용되기도 하였습니다.
이 두 악기의 계승자에 해당했던 피아노는 여리고(piano) 센(forte) 음을 모두 낼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는 악기입니다. 이탈리아의 바르톨로메오 크리스토포리(Bartolomeo Cristofori, 1655년 ~ 1731년)는 18세기 초에 작은 망치(해머, Hammer) 장치를 사용해 줄을 보다 섬세하고 강하게 때릴 수 있는 것을 만들어냈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피아노는 원래 피아노포르테(Pianoforte) 또는 포르테피아노(Fortepiano)라고 불렸습니다. 이 악기가 처음 공공연주회에 등장한 것은 런던(1768년)에서 J.C. 바흐가 했던 연주입니다. 당시에는 악보 판매를 위해 출판사에서는 하나의 작품을 자주 피아노, 혹은 쳄발로를 위한 것으로 명명하기도 했습니다.
허나 이미 그 음악적 뉘앙스의 차이가 분명해지면서 점점 쳄발로는 역사의 뒤편으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과도기에 만들어진 음악들은 오늘날에도 피아노 혹은 쳄발로로 연주되기도 합니다. 흔하지는 않지만 이 두 악기의 차이를 작품에 적극 수용해 적용하려는 시도도 있긴 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C.P.E. 바흐는 쳄발로와 피아노를 위한 이중 협주곡(Wq. 47, 1788년)을 들 수 있습니다.
이후 피아노는 보다 효율적인 타현장치를 개발함에 따라 더욱 음악적인 표현력의 범위를 넓혀나갔습니다. 그리고 피아노는 교향곡, 실내악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어법들을 골고루 수용할 수 있었기 때문에 편곡용 악기로도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고전시대에 독주 악기로서의 피아노는 이전 전통의 판타지, 카프리치오, 프렐류드, 변주곡 뿐만 아니라 다악장 체제를 지닌 소나타에서도 탁월한 역량을 발휘하였습니다.
② 형성과정
건반악기 독주를 위한 음악으로는 바로크 시대에 쳄발로, 클라비코드, 오르간 등 여러 종류의 악기를 포괄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오늘날까지도 언어에 따라 이런 용어들이 쓰이고 있기도 하는데, 대표적으로 독일어의 '클라비어(Klavier)'가 건반악기를 총칭하는 말로 사용되는 것입니다. 18세기 중엽을 거치면서 개별의 건반악기를 염두에 둔 작품들이 점점 일반화되었습니다. 이 때 피아노가 점점 중심적 악기로 부상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고전시대의 건반악기 독주 소나타는 곧 피아노를 위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합니다. 즉, 이것은 피아노의 표현 역량이 그만큼 경쟁력을 가지고 있었고, 또 당시의 음악적 이상을 표현하는 데 적합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전 시대에 독립적인 기악곡으로서 독주 건반악기의 음악은 성격이 다른 여러 악장들의 음악을 묶는 전통적 기악음악의 모습이었는데, 이 때는 전체적인 통일성보다는 각 부분의 구별성이 더 두드러졌습니다. 반면 고전시대의 피아노소나타는 음악적 구조에서 규칙성이 보다 많이 고려되었고, 각 부분의 유기성이 강조되었습니다.
18세기 후반 독주 피아노소나타의 발전에 기초를 닦은 작곡가로는 바흐의 두 아들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C.P.E. 바흐는 감정과다 양식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3악장 구성의 독주 건반악기소나타를 많이 작곡했고, 이를 이론적으로 뒷받침해줄 수 있는 건반악기 교습서(Versuch uber die wahre Art, das Clavier zu spielen, 1753년)를 남기기도 했습니다. 바흐의 막내 아들인 J.C. 바흐는 우아한 이탈리아 양식의 선율에 편안하고 경쾌하며 단정한 음형 처리를 결합시킴을 통해 고전적 양식의 틀을 보여주었습니다.
③ 음악적 특징
고전시대 피아노소나타의 악장 구성은 일반적으로 빠름-느림-빠름의 순서로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바로크 실내소나타의 구조와 맥을 같이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기악음악의 방식은 현악사중주나 교향곡 등의 다른 장르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고전시대의 일부 작품들에서 느린 서주부로 된 작품이 종종 있지만, 경쾌하고 밝으며 편안한 음향의 악장이 작품 전체의 성격을 소개합니다. 빠른 악장은 대개 소나타형식의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당시 기악곡에서 빠르고 느린 악장들의 조합 외에도 춤곡 악장으로서 미뉴에트가 삽입되기도 했는데, 독주 형태인 피아노소나타에서는 상대적으로 적게 사용되었습니다.
하이든에 이르러 미뉴에트가 피아노소나타에 자리 잡을 수 있었지만, 어떠한 고정된 틀을 형성하지는 않았습니다. 미뉴에트는 세 개의 악장 중에 두 번째 혹은 세 번째 악장에 넣어 곡 전체 분위기를 부드럽게 해주었습니다. 모차르트는 연주 여행을 통해 여러 경향의 피아노 음악들을 접하게 되었는데, 특히 하이든과 요한 쇼베르트, J.C. 바흐의 영향을 받아 경쾌하면서도 선율성이 두드러지는 작품들을 많이 남겼습니다. 또한 오케스트라의 음향 구성을 연상케 하는 셈여림의 대비와, 옥타브 중복의 선율 구성 등을 보여주기도 하였습니다.
베토벤은 모차르트와 더불어 당대의 뛰어난 피아니스트로, 피아노의 역량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기도 했습니다. 초기에 그는 하이든의 영향을 받았다는 느낌을 풍기는 작품들을 선보이긴 했지만, 점차 자신의 고유한 색채를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네 개의 악장으로 이루어진 피아노소나타는 베토벤에 이르러 자주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작품의 역동성을 강화시키기 위해 하이든 전통의 미뉴에트 악장이 아닌 스케르초를 넣어 작곡을 했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미뉴에트와 스케르초를 둘 다 한 작품에 넣기도 했습니다(Op. 31). 베토벤의 완숙기 이후의 피아노소나타는 점차 의지적 성격이 강화되었고, 음악외적 상상력들을 촉발하기도 하였는데, 이는 단아한 고전적 형식성을 자주 뛰어넘었습니다. 하여 그의 후기 피아노소나타에서는 표현력의 증대를 위한 극단적 음향 대비와 더불어 대위법적 구성이 혼재되어 강도 높은 진지함과 무게감을 표출하기도 합니다.
출처 : 새 들으며 배우는 서양음악사. 허영한 외 6명 공저. 심설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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