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음악사

새로운 양식의 조성음악 5/8(2023.03.08)

작은대학교 2023. 3. 8. 18:00
반응형

안녕하세요. 작은대학교입니다.

 

오늘은 지난 시간에 이어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의 신고전주의에 대해 서술하고, 미국으로 이주한 그의 말년기는 어떤 행보를 보였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② 《오이디푸스 왕》

쟝 콕토의 대본을 라틴어로 번역해 음악을 붙인 오페라-오라토리오 《오이디푸스 왕》에는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의 신고전주의 정신이 아주 잘 반영되어 있습니다. 이 작품에도 《병사이야기》와 마찬가지로 해설자가 있지만, 이제 그는 연기자들과 멀리 떨어진 곳에 서서 현대적인 복장을 착용하고 자국어로 청중에게 이야기를 설명합니다. 따라서 무대와 청중은 해설자를 사이에 두고 엄격하게 분리되며, 해설자는 무대와 청중 사이의 매개자 역할을 합니다. 이고르 스트라빈스키는 《봄의 제전》, 《결혼》과 같은 일련의 의식 음악을 작곡했는데, 《오이디푸스 왕》 역시 엄격한 의식을 무대 위에서 잘 표현하는 작품입니다. 《오이디푸스 왕》의 음악적인 면을 살펴보아도, 이제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의 신고전주의가 완전히 성숙했음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오이디푸스 왕》 속의 주요 인물들은 주세페 베르디를 연상케 하는 듯한 양식의 노래를 하는데, 이 점 만으로도 신고전이 고전시대나 특정한 과거로 돌아간다는 의미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의 《피아노소나타》는 바로크적 대위법 양식 안에서 베토벤을 느낄 수 있게 하고, 《피아노와 관현악을 위한 카프리치오》는 콘체르토 그로소 형식 속에서  표트르 차이콥스키적인 낭만적 서정성을 느끼게 합니다.

출처 : 스트라빈스키 오이디푸스 왕 : Claudio Abbado · RAI Symphony Orchestra & Chorus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오이디푸스를 연기하는 알버트 그라이너(1896년)

 

③ 《시편 교향곡》과 그 이후

라틴어 가사로 된 엄숙한 음악의 압권으로 《시편 교향곡》(Symphonie des Psaumes, 1930년)을 꼽을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은 성경의 시편을 가사로 한 교향곡인데, 각 악장 사이에 휴식 없이 계속 연주되는 형태로 되어 있습니다. 무대음악을 주로 작곡해 온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의 독특한 악기편성과 리듬을 타고 나오는 라틴어 성경의 시편 구절을 보면 '알렐루야'라는 가사가 불규칙적인 리듬을 타고 나오기 때문에 청중들은 거기에서 묘한 느낌을 받게 됩니다. 이고르 스트라빈스키는 《시편 교향곡》 이후에도 《C조의 교향곡》(1938년 ~ 1940년), 《3악장의 교향곡》(Symphony in Three Movements, 1942년 ~ 1945년)과 같은 대편성 작품들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3. 미국으로의 이주와 후기 음렬음악

 

이고르 스트라빈스키는 1939년 미국으로 건너가 하버드대학교에서 강의를 하게 되었는데, 이 때 사용한 강의록은 『음악시학』이라는 단행본이었습니다. 그리고 서부인 캘리포니아주 로스엔젤레스 근교로 이주해 근 30년 가까이 살게 됩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국이 승리를 거두게 된 1945년에는 미국 국적을 취득하게 되었고, 1969년에는 다시 뉴욕으로 이주해 이곳에서 남은 여생을 보내게 됩니다. 1971년까지 90년 가까운 일생을 마치면서 그는 이탈리아 베네치아에 묻어 달라는 유언을 남겼고, 지금 그의 묘는 현재 베네치아 근교의 언덕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항상 남들이 상상할 수 없는 획기적인 새로운 종류의 음악을 내놓으며 세상을 놀라게 했던 그는 매번 작품이 어느 정도 양식화되어 익숙해 질만 하면 또다시 변신해 평론가와 그의 음악애호가들을 당혹스럽게 했습니다. 하지만 그도 오랜 기간동안 거부했던 것이 있었는데, 당시 지배적인 기법으로 자리 잡혔던 음렬기법 음악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놀드 쇤베르크가 죽은 이듬해인 1952년부터는 음렬기법까지 자신의 음악에 사용함으로써 다시 한 번 세상을 놀라게 했습니다.

 

① 음렬음악의 수용

아놀드 쇤베르크의 죽음과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의 음렬음악이 실제적인 인과관계가 있을지 없을지는 본인 스스로밖에 모르는 문제이지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프랑스에서 올리비에 메시앙(Olivier Messiaen, 1908년 ~ 1992년)과 피에르 불레즈(Pierre Boulez, 1925년 ~ 2016년) 등이 제2 비엔나악파의 음악을 연구하고 분석했다는 점 또한 이고르 스트라빈스키를 음렬음악의 세계로 들어오도록 자극했을 수도 있습니다. 어찌되었든 이 당시의 정황들을 종합해보면 적어도 이고르 스트라빈스키가 아놀드 쇤베르크의 죽음으로 인해 음렬기법을 수용했다고 보기에는 다소 문제가 있습니다.

 

먼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가 음렬음악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아놀드 쇤베르크의 영향이 아닌 안톤 베베른의 작품을 통해서였습니다. 또한 음렬기법이 과연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에게 생소한 것이었는지에 대한 점도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12음이 계속적으로 반복하는 음렬이란 결국 그가 오랫동안 작품에서 즐겨 사용한 오스티나토 기법을 단순히 12음으로 확장한 것으로 보는 것도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그가 음렬기법을 수용하는 과정은 급진적이 아니라 점진적인 방법이었습니다. 그가 완전한 음렬음악에 도달하는 데는 적어도 5년 이상이 걸렸으며, 그 변화의 과정 속에서 나름대로 12음 체계를 사용하는 방법을 발전시켜 나갔습니다. 이고르 스트라빈스키는 1952년 작곡된 《칸타타》에서 음렬음악의 가능성을 타진한 뒤, 무용음악 《아곤》(Agon)에서 이를 전면적으로 사용하게 되었으며, 《칸티쿰 사크룸》(Canticum Sacrum), 《트레니》(Threni)로 확대하면서 그의 음렬음악 시도가 잠깐 스쳐지나가는 일탈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② 스트라빈스키 음악양식의 다양성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이고르 스트라빈스키는 20세기의 작곡가들 중에서도 가장 변덕스러우면서 예측 불가능한 인물입니다. 그의 이러한 성향은 그의 음악에도 잘 반영되어 나타납니다. 그의 작품은 보통 1913년까지의 초기 민족주의 음악과 세 개의 발레음악, 그 이후 1951년까지의 신고전주의 작품, 그리고 최후 20년 동안의 음렬음악 등 세 시대로 나뉘어 거론되지만 이보다 훨씬 더 세분화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어떤 작곡가든 시간이 흐르면서 어느 정도 양식적인 변화를 가지게 되는 것이 보통이지만,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와 같이 극에서 극으로 변화하는 작곡가는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봄의 제전》처럼 기독교 사상의 정반대편에 서 있는 이교도들의 제전을 그린 음악이 있는가 하면, 신고전주의 작품인 《시편 교향곡》은 라틴어로 된 성경을 텍스트로 취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의 작품은 음렬음악에서조차도 "스트라빈스키만의 소리"를 가진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기악과 성악, 무대음악과 순수음악, 대편성과 소편성, 모든 장르의 음악을 가지리 않고 섭렵했습니다. 또한 조성과 무조성, 원시적인 아름다움과 극도의 세련미, 과거와 미래, 또 전통과 전위 사이를 누구보다도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었고, 또 서로 간의 상반된 개념들을 동시에 추구했던 독특한 작곡가임이 틀림없습니다.


▶출처 : 새 들으며 배우는 서양음악사. 허영한 외 6명 공저. 심설당.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