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음악사

고전시대 성악음악 1/5(2022.09.12)

작은대학교 2022. 9. 12.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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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작은대학교입니다.

 

오늘부터는 고전시대의 성악음악에 대해 알아볼까 합니다. 바로크 시대까지만 해도 기악음악보다는 성악음악이 더욱 발전했다면, 고전시대에는 기악음악이 좀 더 성행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교회의 영향이 작아짐에 따라 성악의 힘이 상실되었고, 제한적이었던 기악음악이 더욱 성행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또한 성악음악의 음역보다 기악이 더욱 넓고, 음색이나 음향 등이 더욱 다채롭기 때문에 더더욱 발전이 급속히 이루어지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전시대에도 성악음악이 발전하게 되었는데, 어떻게 발전, 변화되었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ⅩⅤ. 고전시대의 성악음악

 

고전시대가 되면서 점차 기악 중심의 음악 이해 방식이 대두되었는데, 이런 흐름으로 인해 성악음악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낮아지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고전시대에 성악음악이 사라지거나 퇴보한 것은 아닙니다. 고전시대의 성악음악은 기악과 더불어 음악의 전반적인 변화에 동참하였고, 고전시대의 음악 이상에 부응하는 형태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고전시대의 성악음악 분야는 크게 오페라와 교회음악, 가곡으로 나눌 수 있는데, 이 중심에는 바로크 시대부터 내려온 오페라가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성악음악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던 교회음악은 고전시대에 이르러 더욱 적극적으로 세속음악의 어법을 수용하는 상황으로 변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교회음악의 사회적인 역할에도 불구하고 전체 음악 창작에서 더 이상 큰 주목을 받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고전시대 후반에는 가곡이라는 새로운 조명을 받는 성악 장르가 탄생하게 되었는데, 이 장르는 19세기에 보다 정제된 형태인 예술 가곡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1. 오페라

 

고전시대에 만들어진 오페라들은 바로크 시대와 같이 공연 지역에 상관없이 기본적으로 이탈리아 계열의 오페라가 주류를 이루었습니다. 이탈리아의 오페라는 '오페라 세리아'(심각한 오페라)와 '오페라 부파'(익살스런 오페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이 두 용어는 특정 이론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오페라의 성격에 따라서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구별해서 부르게 된 것입니다.

 

1) 오페라 세리아의 퇴조

 

① 수용 상황

오페라 세리아는 기본적으로 신화나 전설 등의 심각한 줄거리로 구성된 작품입니다.  따라서 오페라 세리아에서는 주로 윤리적인 내용이나 사랑 등이 주제로 쓰이는데, 선·영웅·운명 등을 도식화시켜 표현하기 때문에 극적인 현실성이 결여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런 내용들은 주로 사회적 규범으로서 통치 계급의 권위를 형상화시키기 때문에 샹류층들의 인정과 후원을 받았습니다. 

 

오페라에 사용되는 음악은 레치타티보(낭송)와 아리아(독창)로 확연히 구분할 수 있습니다. 레치타티보가 줄거리를 전하는 중요한 부분임에도 불구하고 그 뒤에 따라오는 기교적인 아리아가 오페라의 전체 진행을 지배합니다.이 아리아는 해당 장면을 종결시키는 역할을 하며, 청중들로부터 큰 박수갈채를 받기도 했습니다.

 

18세기 중엽의 오페라 세리아는 아포스톨로 제노(Apostolo Zeno, 1668년 ~ 1750년)와 피에트로 메타스타지오(Pietro Metastasio, 1698년 ~ 1782년)라는 유명한 두 대본가가 주도하였습니다. 특히 피에트로 메타스타지오의 대본은 18세기를 넘어 19세기에도 일부 오페라 작곡가들이 사용할 정도로 많이 쓰였습니다.

 

오페라 세리아는 바로크 시대 오페라의 새로운 도약에 의해 시작된 것이었지만, 그것의 고착성으로 인해 결국 비판을 받고 고전시대에 들어서 점점 인기가 줄어들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오페라 세리아의 요소들이 계몽주의적인 흐름에 맞지 않았습니다. 줄거리가 구태의연할 뿐만 아니라, 아리아 중심의 자연스럽지 못한 음악 구성에 대한 지적들이 고전시대 이전부터 줄곧 있었습니다. 하여 사람들은 이제 고전시대의 이상에 어울리는 자연스러움이 오페라에도 반영되기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오페라 세리아의 쇠퇴는 갑작스럽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점차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당시의 작곡가들은 오페라 세리아 계열의 작품과 함께 오페라 부파의 작품도 작곡했습니다. 다만 18세기 말에 가까워질수록 오페라 세리아는 청중의 관심을 끄는 데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요한 아돌프 핫세(Johann Adolph Hasse, 1699년 ~ 1783년)와 더불어 오페라 세리아의 마지막 전성기를 구가했던 작곡가들은 카를 하인리히 그라운(Carl Heinrich Graun, 1703/1704년 ~ 1759년), 니콜로 욤멜리(Nicolo Jommelli, 1714년 ~ 1774년)등이 있습니다.

 

② 변화의 시도

오페라의 변화에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바로 레치타티보의 역할이 강화된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크 시대부터 시도되었던 것으로, 계속저음 악기에 의존한 '메마른'(레치타티보 세코, recitativo secco) 형태를 벗어나, 오케스트라가 보다 풍부한 음향으로 동행하는 '반주'(레치타티보 아콤파냐토, recitativo accompagnato) 형태로 쓰이면서 음악적인 위상이 더욱 강화되었습니다. 그리고 중창과 합창이 전체 구성에서 유기적인 역할을 하면서 도식적인 아리아의 순환 형태를 부분적으로나마 탈출하게 되었습니다. 하여 레치타티보 아콤파냐토에서는 레치타티보 세코에서보다 노래 선율이 보다 성악적인 형태로 다듬어졌습니다.

 

이러한 노래적인 레치타티보를 '아리오소(arioso)'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는 전통적인 레치타티보와 아리아의 중간에 해당합니다. 사실 이런 변화는 원천적으로 고전시대의 음악 이상에 부합하는 것이었지만, 실제로는 극적 내용을 상대적으로 더 배려하는 프랑스의 전통적 서정비극(tragedie lyrique)의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또한 당시 대중적인 인기를 모으고 있던 오페라 부파의 영향도 컸습니다.

 

③ 크리스토프 발리발트 글룩과 모차르트

크리스토프 발리발트 글룩(Christoph Willibald Gluck, 1714년 ~ 1787년)의 오페라 개혁은, 오페라 세리아의 음악적인 단점을 극복하려는 시도의 종합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는 경직되어있는 오페라 세리아의 문제점들을 극적 줄거리의 강화로서 풀어보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이전의 오페라에서 아리아가 모든 극적인 것을 밀어내는 것에 반대하고, 오히려 음악이 표현하고자 하는 사고, 즉 시에 음악이 봉사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를테면 별도의 기악 작품들과 같이 오페라 서곡이 이제 작품 전체의 흐름과 연계되어야만 했습니다. 하여 아리아의 숫자는 줄어들고, 오케스트라 반주의 레치타티보의 숫자는 더욱 증가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합창과 중창이 강화되었는데, 이런 변화는 당연한 귀결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시도는 오페라 세리아뿐만 아니라 당시 프랑스의 도식적인 서정비극의 단점까지 개선하기 위한 시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출처 : File:Gluck's Orphée - title page illustration (lightened and cropped).jpg - Wikimedia Commons/저승에서 에우리디체를 데려오는 오르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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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러한 개혁적인 시도가 바로 일반화되진 않았습니다. 과도기에 나타난 청중들의 다중적인 취향은 이탈리아 전통의 오페라가 계속적으로 작곡되게 하였습니다. 물론 이렇게 만들어진 작품들은 그닥 음악사적인 가치로서 인정되고있진 않습니다. 예를 들면 기악 부분에서 고전시대의 음악어법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 하이든은 20여 곡의 오페라를 남겼지만, 이 작품들은 양식적인 고유성이 약하기 때문에 오늘날 하이든의 기악곡들만큼 높은 평가를 받지는 못합니다. 반면 하이든은 에스테르하지 가의 여흥을 위해 수많은 오페라 곡을 지휘해야 했고, 때때로 그가 직접 작곡하기도 했습니다.

 

고전시대에 크리스토프 발리발트 글룩의 오페라 개혁과 맥을 같이하는 오페라 작품들은 주로 모차르트에게서 발견됩니다. 그는 당시의 많은 작곡가들이 그러했듯이, 오페라 세리아와 오페라 부파를 모두 작곡했습니다. 그의 오페라 세리아 계열의 작품들은 이전 시대부터 내려오던 도식적인 구조를 따르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신에 극적인 줄거리에 의한 음악적 흐름을 우선시하여 작품 전체가 친근하고 이해하기 쉽게 만들어졌습니다. 다시말해 모차르트가 작곡한 오페라 세리아는 고전시대의 음악어법으로 새롭게 각색되어 작곡되었습니다. 그의 주요 오페라 세리아 작품은 생의 말기에 프라하 공연을 위해 작곡된 《티토의 자비》(La clemenza di Tito, 1791년), 1770년대 초 밀라노에서 공연된 《폰토의 오아 미트리다테》(Mitridate, Re di Ponto, 1770년), 《알바의 아스카니오》(Ascanio in Alba, 1771년), 《루치오 실라》(Lucio Silla, 1772년) 등이 있으며, 뮌헨에서 초연된 《이도메네오 크레타의 왕》(Idomeneo, Re di Creta, 1781년)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출처 : Amsterdams Marionetten Theater: Backstage/에스테르하지 가에서의 오페라 공연


출처 : 새 들으며 배우는 서양음악사. 허영한 외 6명. 심설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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