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작은대학교입니다.
지난 시간에는 오페라 세리아가 점차 세퇴하면서 일어난 변화를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럼 오늘은 오페라 부파, 그리고 프랑스의 오페라 코미크가 어떻게 발달되었는지 알아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2) 오페라 부파의 번성
① 장르의 태동
고전시대에 만들어진 희극적인 오페라들은 18세기 말에 퍼지기 시작한 '오페라 부파'라는 용어로 불립니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오페라 부파라는 용어도 있었지만, '익살극'(dramma giocoso), '코믹 디베르티멘토'(divertimento comico), '익살 스케르초'(scherzo giocoso), '음악 코미디'(commedia per/in musica) 등으로도 불려졌었습니다. 그 당시에 오페라라고 하면 주로 정통적인 오페라 세리아를 떠올렸기 때문에 이러한 희극적인 오페라들에서는 오페라라는 명칭이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오페라 안에서 희극적인 내용은 이미 17세기 오페라부터 나름의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18세기에 들어서자 극적 줄거리가 비극 또는 희극으로 분리되는 경향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그에 따라서 희극적인 요소는 작품의 뒤로 밀려나고 주변적인 것으로 처리되다가, 이후에는 아예 비극적인 작품 속에서는 희극적 요소를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밀려난 희극적인 요소는 오페라 세리아의 막 사이에 연주되는 짧은 독립적 '막간극'(인테르메초, intermezzo)이나, 편안함을 즐기고 싶어하는 청중들에게 제공되는 가벼운 '음악 코미디'의 형태로 나타났습니다. 막간극은 이탈리아 베네치아와 나폴리에서, 반면 음악 코미디는 나폴리에서 발달했고, 이러한 흐름은 이후 오페라 세리아와 오페라 부파의 양립적인 구도를 만들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막간극은 대개 3막으로 구성된 오페라 세리아의 중간에 끼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 두 부분으로 짝을 이루게 만들어졌습니다. 막간극의 대표적인 예로는 지오반니 바티스타 페르골레지(Giovanni Battista Pergolesi, 1710년 ~ 1736년)의 《마님이 된 하녀》(La Serva Padrona, 1733년)를 들 수 있습니다. 원래 이 작품은 오페라 세리아 《자부심 강한 죄수》(Il prigioner superbo)에 삽입된 것인데, 공연과동시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되었습니다. 또한 이 작품은 파리에서 원정 공연을 하게 되었는데, 이 때 보수적인 인사들과 진보적인 인사들 사이에 '부퐁 논쟁'('어릿광대'논쟁, querelle des bouffons)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였습니다. 이 부퐁논쟁은 이탈리아 오페라와 프랑스 오페라 중 어느 것이 더 우위에 있는지, 그리고 직접적으로 오페라 부파와 같은 파격적인 오페라를 수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열띤 논쟁이었습니다.
바로크 시대의 막간극에서는 대부분 두 명의 등장인물(소프라노, 베이스)이 나오는 것이 규격화 되어있었습니다. 허나 고전시대에서는 7~8명까지 늘어나기도 하였습니다. 음악 코미디에서는 일찍부터 그 정도의 등장인물들이 공연에 동원되었고, 그 지방의 사투리로 노래를 하기 때문에 청중 친화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② 장르의 발달
일상에서의 익살스러운 내용들을 편안한 음역의 노래로 부르는 오페라 부파는 고전시대에 더 이상 주변적 장르로 취급되지 않았습니다. 작곡가들은 작품 구성의 방식에서 때때로 오페라 세리아에 못지 않은 음악적인 면을 추구했습니다. 이전의 오페라 세리아가 음악과 극을 단순히 조합시켰다면, 고전시대의 오페라 부파는 음악으로서 극을 이끌어 갑니다. 그래서 레치타티보와 아리아의 도식적인 구분이 더이상 무의미해지게 되었습니다.
일상적 언어에 의한 가사와 리얼한 레치타티보, 그리고 빠르게 말하듯이 노래하는 아리아 등은 기악적인 음향과 아주 잘 맞습니다. 하여 전성기의 오페라 부파에서 기악 부분들은 자주 선율의 단편을 반복해서 전체적인 유기성을 높이는 역할을 합니다. 또한 상황을 묘사하는 역할을 맡기도 합니다. 따라서 점점 아리아가 독주했던 구성은 지양되었고, 줄거리의 전체 이미지를 강화하는 결말부분에 음악의 초점이 맞춰지기 시작했습니다.
18세기 중엽부터 나름의 위상을 확보했던 오페라 부파는 베네치아의 발다사레 갈루피(Baldassare Galuppi, 1706년 ~ 1785년), 나폴리의 니콜로 피치니(Niccolo Piccini, 1728년 ~ 1800년), 지오반니 파이지엘로(Giovanni Paisiello, 1740년 ~ 1816년) 등에 의해 발전을 거듭하게 되었습니다. 이 전통은 비엔나에까지 이어져서 안토니오 살리에리(Antonio Salieri, 1750년 ~ 1825년)와 모차르크가 이 장르에 다수의 작품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18세기 중엽까지는 오페라 부파가 한 등급 낮은 장르로 여겨졌지만, 이를 예술적으로 끌어올려 고전시대의 이상에 제대로 부합시킨 것은 바로 모차르트입니다. 그는 여러 번에 걸친 각국의 여행으로 오페라의 흥행성을 직접 경험했고, 또 여러 지역의 양식들을 익힐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고전시대의 세 대가 중에서 유독 모차르트만 오페라 부분에 독보적인 업적을 낼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여행을 통한 다국적 음악어법을 섭렵했기 때문입니다.
모차르트의 오페라 부파 작품들은 오페라 세리아에 뒤지지 않을 만큼 높은 음악적 완성도를 보여줍니다. 하여 흥미 뿐만 아니라 짜임새 있는 구조에서 오는 음악적인 아름다움을 맛볼 수 있습니다. 특히 그는 중창이나 합창으로 극의 중요한 부분을 두드러지게 만들고, 곡 전체의 이미지를 전할 수 있도록 서곡을 만들어 선보여주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의 작품에서는 명쾌하게 끝맺는 피날레의 구성도 돋보입니다. 그의 생애 후반기에 작곡된 《피가로의 결혼》(Le nozze di Figaro, 1786년), 《돈 지오반니》(Don Giovanni, 1787년), 《코지 판 투테》(Cosi fan tutte, 1790년)는 모두 다 로렌초 다 폰테(Lorenzo da Ponte, 1749년 ~ 1838년)의 대본으로 만들어진 작품인데, 이 작품들은 오늘날까지 자주 연주되는 작품들입니다.
3) 프랑스의 오페라 코미크
이탈리아 오페라가 전 유럽에서 통용되던 시대에는 다른 나라의 오페라들이 이에 견줄만한 전통을 형성하기 어려웠는데, 프랑스에서는 두드러진 자국 전통의 오페라 양식이 존재했습니다. 먼저 프랑스에는 바로크 시대부터 형성된 서정비극과 오페라 발레의 전통을 들 수 있습니다. 18세기에 이르러 이러한 프랑스의 전통은 이탈리아 오페라와의 차별성을 놓고 많은 고민을 거듭하기 시작합니다. 하여 18세기 중엽이 되서 희극 오페라인 오페라 코미크(Opera comique)가 프랑스 오페라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게 됩니다.
오페라 코미크는 말로 하는 대화와 짧고 단순한 노래들로 엮어져 있습니다. 초기에는 정규 오페라 극장에서는 연주되지 못했고, 마당극 형태로 공연하였습니다. 이러한 형태의 프랑스 오페라는 이전의 희극적 연극과 발레로부터 나온 것이고, 오페라 부파(막간극)의 영향을 받은 것도 있습니다. 그리고 고전시대 이전에 이미 많은 지지층을 확보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고전시대에 들어서서 계몽주의적인 사고가 퍼지면서 자연스러운 평민 오페라가 점점 더 주목을 끌게 된 것입니다.
1752년 지오반니 바티스타 페르골레지의 《마님이 된 하녀》가 파리에서 촉발시키게 된 부퐁 논쟁은 바로 오페라 코미크의 발전에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음악의 자연스러움을 주장했던 장 자크 루소는 음악적 진보주의자들 편에서 편안한 오페라를 옹호했고, 이런 취지에서 직접 막간극 《마을의 점쟁이》를 쓰기도 했습니다. 이 작품은 민속적인 선율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청중들이 쉽게 공감할 수 있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이 작품은 기본적으로 오페라 부파의 전통을 따라 만들어진 것이긴 합니다. 모차르트의 《바스티앙과 바스티엔느》(1754년)는 이 작품의 독일어 버전에 해당됩니다. 또한 장 자크 루소는 음악을 배경으로 가사를 낭송하는 멜로드라마 《피그말리옹》(Pygmalion)을 쓰기도 했습니다.
오페라 코미크에서는 계몽사상의 정신을 반영해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쉬운 노래들이 사용되었습니다. 특히 샹송의 변형인 보드빌이 작품의 끝부분에서 한 사람씩 메기고 모두가 후렴으로 받는 형태로 노래합니다. 그러나 점차 작품의 전체 부분이 음악적으로 짜임새 있게 작곡되기 시작하였습니다.
18세기 후반, 오페라 코미크 분야에서 가장 돋보이는 사람은 앙드레 에르네스트 모데스트 그레트리(Andre-Ernst-Modesre Gretry, 1741년 ~ 1813년)입니다. 그의 작품에서는 보드빌과 같은 기존의 노래 사용들이 점점 줄어들고, 일반 오페라처럼 아리아와 중창, 합창 등이 더욱 많이 등장하게 됩니다. 그리고 말로 하는 대화 부분이 들어있기 때문에 레치타티보를 별도로 설정하기 보다는 아리아에 준하는 작은 독창 노래들이 함께 편성되어 있습니다. 그 결과 오페라 코미크는 양식 면에서 복합적인 성격을 띠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형태의 오페라 코미크는 음악적으로 기존의 프랑스 오페라, 즉 서정비극과 거의 차이가 없었습니다.
출처 : 새 들으며 배우는 서양음악사. 허영한 외 6명. 심설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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