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음악사

고전시대 성악음악 3/5(2022.09.16)

작은대학교 2022. 9. 16.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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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작은대학교입니다.

 

지난 시간에는 오페라 세리아, 오페라 부파, 그리고 프랑스의 오페라 코미크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그럼 오늘은 독일에서는 오페라가 어떻게 발전되었는지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겠습니다.


4) 독일의 징슈필

 

출처 : Singspiel - 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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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중엽, 독일어권에서는 일반적으로 이탈리아 계열의 오페라를 향유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점점 독일어 문학처럼 독일어에 의한 오페라 창작의 필요성이 대두되기 시작했습니다. 하여 이러한 요구에 의해 독일어로 된 대본들이 창작되었고, 독일어 오페라가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초기의 독일어 오페라들은 대본이 독일어로 되어 있다는 것 외에는 기본적으로 이탈리아와 프랑스 전통의 오페라에 가까웠습니다.

 

독일 전통의 오페라는 18세기 중엽에 희극 오페라 쪽에서 나왔습니다. 그 오페라를  '징슈필'(Singspiel, 노래극)'이라고 부릅니다. 징슈필은 원래 18세기에 들어서면서 궁정의 귀족적이고 어려운 오페라에 대응해, 널리 알려진 보드빌이나 독일 노래들을 엮어서 서민적이면서도 쉬운 오페라였습니다. 이 종류의 오페라들은 징슈필이라는 이름 외에도  '희극 오페라(komische Oper)' 또는 '오페레테(Operette)'라고 불리기도 했습니다.

 

18세기 중엽에 이르러 영국의 발라드 오페라 및 프랑스의 오페라 코미크가 독일어 버전으로 공연되었는데, 이 때 독일어 오페라인 징슈필이 유행하게 되었습니다. 독일어 오페라들은 기본적으로 기교적인 아리아 대신에 편안한 노래들이 등장하고, 경직된 레치타티보 대신에 말로 하는 대화가 사용됩니다. 특히 비엔나에서는 1766년 계몽 군주인 요제프 2세가 프랑스의 전형을 뛰어넘는 독일적인 징슈필을 장려하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연극배우들이 아닌 전통적인 오페라 가수들이 공연을 했기 때문에 음악적으로 보다 더 성숙한 비엔나 징슈필의 전통이 형성되었습니다. 고전시대의 징슈필은 대체로 가벼운 내용의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반드시 희극적인 요소가 들어가 있지는 않습니다. 징슈필은 동화적이면서 이상주의적인 내용이 희극적인 내용과 섞여서 나타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징슈필의 주요 작곡가들로는 요한 아담 힐러(Johann Adam Hiller, 1728년 ~ 1804년), 게오르그 벤다(Georg Benda, 1722년 ~ 1795년), 크리스티안 코틀로브 네페(Christian Gottlieb Neefe, 1748년 ~ 1798년), 카를 디터스 폰 디터스도르프,  요한 프레드리히 라이하르트(Johann Friedrich Reichardt, 1752년 ~ 1814년) 등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징슈필을 높은 예술적 경지로 끌어올렸던 사람은 다름아닌 모차르트입니다. 그는 독일어로 된 대본을 가지고 만든 오페라에서 전통적 오페라의 여러 가지 기법들을 수용했습니다. 그는 무엇보다 청중들을 재미있고 편안하게 만들 수 있는 방안들을 마련하였습니다. 또한 소박한 선율과 오페라 세리아에서와 같은 기교적인 아리아, 그리고 중창이나 합창 및 기악적 음향을 긴밀하게 연결시켜서 극적인 긴장감을 끌어올리기도 했습니다.

 

오늘날까지 자주 연주되는 모차르트의 주요 징슈필 중에서는 《후궁에서의 유괴》(1782년)와 《마술피리》(1791년)가 있습니다. 그는 크리스토프 발리발트 글룩과는 다르게 오페라에서는 시가 음악에 복종해야한다고 보았고(1782년의 편지), 그 이상이 바로 그의 작품에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오페라에서 극적인 것을 무시하고 도식적 아리아에 의존했던 때에는 음악이 극을 함께 고려해주기를 바랐고, 그것이 보편성과 단순성을 추구하는 고전시대의 이상에 가까운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이제 모차르트는 음악이 극적이며 내용적인 모든 것들을 담고 있었기 때문에 그 모든 것을 음악으로 직접 나타내는 게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마술피리》는 모차르트 징슈필 작품들 중 가장 널리 알려져 있고 또 자주 연주되는 작품입니다. 이 오페라는 서곡을 포함해 기악 부분이 줄거리의 전개에 매우 밀접하게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특히 작품 전체의 성격을 아우르고 있는 서곡의 음향적 역동성은 당대의 오페라들 중에서 가장 으뜸에 속합니다.

 

이 오페라는 앙드레 에르네스트 모데스트 그레트리의 오페라 코미크에서처럼 동시대의 여러 가지 오페라 경향들이 혼합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동화적인 요소에 계몽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기때문에 고전시대의 정신에 더 잘 어울립니다. 그리고 모차르트가 가입했었던 프리메이슨의 흔적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신화적인 요소 때문에 현실성이 조금 결여되어 있고, 줄거리의 비논리적 반전이 자주 지적되지만, 탄탄한 음악적 짜임새에 가려져 그런 단점들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베토벤은 오페라 분야에서 《피델리오》(Fidelio)라는 작품을 남겼는데, 이 작품은 두 번의 실패를 딛고 세 번째의 수정본으로 성공을 거둔 작품입니다. 이 오페라는 남편에 대한 헌신적인 사랑 외에, 프랑스 혁명의 영향을 떠올리게 하는 부당한 권력에 대한 고발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원래 불어로 되어 있던 『레오노르 또는 부부애』(1789년)를 독일어로 바꾸어 대본으로 사용하였습니다. 그래서 징슈필 전통의 말로 하는 대화(특히 제 1막)가 나옵니다. 하지만 베토벤은 표현하고자 하는 심층적인 사고를 음악과 긴밀하게 연결시키면서 결코 쉽지 않은 음악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모차르트의 《마술피리》가 동화적인 소재를 바탕으로 이상적인 인간상을 추구했다면, 이 작품은 리얼한 상황 묘사를 통해 그것을 구체화 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 작품에서는 《마술피리》의 앞부분에서 볼 수 있는 희극적인 모습은 거의 볼 수 없고, 진지하고 무겁게 진행됩니다.


출처 : 새 들으며 배우는 서양음악사. 허영한 외 6명. 심설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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