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음악사

네덜란드 작곡가들2/3(2022.06.15)-죠스켕 데 프레

작은대학교 2022. 6. 15.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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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작은대학교입니다.

오늘은 지난 시간에 이어 16세기 초반에 활동했던 죠스켕 데 프레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겠습니다.


2. 죠스켕 데 프레


죠스켕 데 프레와 그의 동시대에 활동하던 작곡가들은 요하네스 오케겜과 야콥 오브레흐트가 중세시대의 영향에서 벗어나 새롭게 실험하기 시작했던 새로운 어법들을 이제 곡 전반에 걸쳐 더욱 체계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정선율을 테노르 중심으로 사용했던 기법에서 벗어나 모든 성부에 고루 배치하기도 하였고, 모방적인 짜임새들을 더 많이 사용하여 모든 성부가 더욱 동등한 구조로 바뀌어갔습니다. 또한 호모포니적인 짜임새도 많은 비중을 차지하기 시작했고, 이는 3화음적 음향이 열린 5도와 옥타브 종지를 대체하게 되었습니다. 가사와 음악과의 관계도 점점 더 밀접해져서 음악은 가사의 발음이 잘 전달되어야 했을 뿐만 아니라, 가사의 분위기 또한 잘 표현해야만 했습니다.

 

1) 죠스켕 데 프레(Josquin des Prez, 1450년, 1455년 경 ~ 1521년)


16세기 초반에 활동했던 작곡가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작곡가를 꼽자면 바로 죠스켕 데 프레일 것입니다. 죠스켕 데 프레도 어린 시절에 관해 별로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다만 프랑스 북부지방에서 태어난 것 정도만 추측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를 기록한 내용에 따르면, 1459년에 밀라노 대성당의 성가대원으로 첫 직장을 얻은 이래 1474년부터는 스포르차 일가에서 활동을 하다가 1486년에 로마 교황의 성당으로 직장을 옮겼다고 합니다.

그러나 최근 연구에 따르면 죠스켕 데 프레의 성이 르블르와트(Lebloitte)고, 사실 1459년에 밀라노 대성당 성가대원으로 입단한 사람은 죠스켕이 아닌 비슷한 이름을 가졌던 성악가라는 것이 밝혀져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1501년부터 2년 동안 그는 프랑스의 루이 12세의 궁정에서 일을 한 것으로 보이며, 1503년에는 페라라의 에르콜레 데스테 1세(Ercole I d' Este) 일가의 교회 성가대장(maestro da cappella)으로 하인리히 이삭(Heinrich Isaac, 1450년 경 ~ 1517년 경)의 뒤를 이어 임명되었습니다. 그러나 일년 후에 그는 그 곳을 떠나게 되었는데, 그 곳에서 발생했던 흑사병을 피하기 위한 이유도 있었다고 합니다. 무엇보다 죠스켕 데 프레의 뒤를 이어 성가대장을 하게 된 야콥 오브레흐트가 페라라에서 흑사병으로 사망한 것은 사실입니다. 죠스켕 데 프레는 페라라를 떠나 콩데(Conde)로 거처를 옮겨 생활했으며, 이 곳에서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출처 : 조스캥 데 프레(Josquin Des Prez) 압살론 필리 미(Absalon fili mi)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죠스켕 데 프레

 

죠스켕 데 프레
1450년 경 프랑스 북부에서 출생
1459년 ~ 1472년 밀라노 성당 성가대원(의문 제기)
1474년 밀라노 스포르차가(家) 교회에서 노래(의문 제기)
1476년 ~ 1479년 로마에서 추기경 아스카니오 스포르차에게 고용
1486년 ~ 1499년 로마 교황청의 성가대원
1499년 ~ 1503년 프랑스에 거주
1503년 ~ 1504년 페라라의 에르콜레 데스테 1세 공작의 교회성가대장
1504년 콩데에 거주
1521년 8월 27일 콩데에서 사망


죠스켕 데 프레의 작품에서는 요하네스 오케겜과 야콥 오브레흐트의 작곡 기법들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죠스켕 데 프레의 작품에서 볼 수 있는 카논의 사용이나 빌려온 선율을 수정하고 장식하여 사용하는 방식, 그리고 '종지를 향해 몰아가는 기법'등은 요하네스 오케겜이 사용하기 시작했던 기법들입니다. 또한 죠스켕 데 프레는 야콥 오브레흐트의 모방기법을 더욱 체계적으로 모든 성부에 적용하였고, 그것을 모든 곡을 통일하는 요소로 사용하면서 후대의 많은 작곡가들에게 표본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죠스켕 데 프레는 18개의 미사곡과 16개의 개별적인 미사 악장, 그리고 95개의 모테트, 68개의 세속음악을 남긴 것으로 알려져 있었는데, 이 또한 최근의 연구에 의해 논란이 되어지고 있습니다. 연구가 계속되면서 새로 밝혀지는 그의 곡들도 있지만, 반대로 그의 작품이라 간주되었던 것이 다른 사람의 곡으로 밝혀지기도 하였습니다. 한 예로 그의 작품이라고 알려져있던 모테트 《압살롬, 내 아들》(Absalom, fili mi)가 그의 작품이 아닌 것으로 알려지게 된 작품입니다. 죠스켕 데 프레 역시 작품에 날짜를 기록하지 않았지만, 몇 작품들은 그 작품과 관련된 행사의 연대를 추측하여 시기를 짐작할 수 있을 뿐입니다.

 

① 모테트

죠스켕 데 프레는 다른 어떤 장르보다 모테트에서 가장 많은 독창성과 예술성을 발휘하였습니다. 모테트는 미사곡과는 다르게 어떠한 제약을 받지 않고 음악적 착상에 적합한 가사를 자유롭게 선택하고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그는 모테트에 대담한 작곡기법을 구사하여 지금까지와는 다른 강도있는 감정 표현을 곡에 녹여낼 수 있었습니다. 모테트를 작곡할 때 그는 선율을 수정하고 장식해서 사용하거나, 모티브의 모방이 한 기점을 시작으로 각 성부에서 차례대로 이루어지는  '모방기점'(point of imitation)기법을 사용하였습니다. 모방기법은 요하네스 오케겜과 야콥 오브레흐트와 같은 선배 작곡가들이 시도한 기법이었지만, 죠스켕 데 프레는 이 기법을 곡 전반에 걸쳐 더욱 체계적으로 사용했던 작곡가입니다. 그는 특히 '모방 기점'기법을 탁월하게 구사하였는데, 한 동기의 모방이 끝났을 때는 완전히 종지하게 되지만, 또 다른 동기의 새로운 모방기점이 앞 동기의 종지 부분과 겹쳐지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보았을 땐 계속해서 흘러가는 모습의 다성선율로 이루어지게 됩니다.

 

② 가사그리기

죠스켕 데 프레는 선율과 화성을 종합적으로 구사해 가사의 의미를 묘사하는 '가사그리기'(word painting)에도 뛰어난 기량을 보였습니다. 예를 들어 '올라간다'라는 가사에서는 선율이 올라가고, '내려간다'라는 가사에서는 점점 하행하는 것, 그리고 '하늘'이라는 가사에는 높은 음을, '땅'이라는 가사에는 낮은 음을, '지옥'이라는 단어에는 더 낮은 음을 사용하는 방법입니다. 죠스켕 데 프레의 후기 모테트에서는 그 당시 사용이 가능했던 모든 방법, 즉 반음계, 화성, 장식음 그리고 리듬과 짜임새의 대비 등을 동원해서 가사의 의미를 음악적으로 전달하려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가사를 눈 앞에 보이듯이 생생하게 표현하는 음악을 그 당시에는 '무지카 레세르바타'(musica reservata, 직역하면 보존된 또는 함축된 음악)이라고 불렀습니다. 이는 가사의 의미가 음악 속에 함축되어 있다는 의미이며, 다른 의미로는 특정한 후원자를 위해 예약된 음악이라는 의미도 포함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③ 미사

죠스켕 데 프레는 18개 미사의 대부분에 선율을 빌려와 사용하였는데, 빌려온 선율들을 보면 다른 작곡가의 샹송이 5개, 자신의 세속노래가 4개, 성가의 선율이 4개, 그리고 1개가 모테트의 선율을 빌린 것입니다. 나머지 4개의 미사 중 2개는 카논에서 빌려왔고, 2개는 가사의 모음을 계명의 모음에 대입시켜 만들어진 동기로 통일되어 있습니다.

이 시기의 미사들은 대부분 4성부로 구성된 것과 같이 죠스켕 데 프레의 미사 또한 한 곡을 제외한 나머지의 미사는 모두 4성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죠스켕 데 프레의 미사들은 그의 다른 곡들보다 비교적 보수적으로 작곡되었으며, 이 곡들에서 기욤 두파이와 요하네스 오케겜, 야콥 오브레흐트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또한 16세기에 흔히 사용되던 기법들 또한 자주 발견되고 있습니다.

그의 작품 《미사 아드 푸감》(Missa ad fugam)에서는 수페리우스와 테노르가 카논을 이루고, 모든 악장이 같은 선율로 시작되는 시작동기가 사용되었기 때문에 악장 간에 통일성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미사 페라라의 헤르쿨레스공》(Missa Hercules Dux Ferrarie)에서는 아래의 악보와 같이 이 제목의 모음들을 그 당시 6음음계(hexachord)의 계명으로 바꾸어 정선율로 사용하기도 하였습니다. 헤르쿨레스는 앞에서 언급했던 페라라의 에르콜레 데스테 1세의 라틴어 이름입니다. 이렇게 단어나 문장의 모음에서부터 유도해 낸 동기를 그 당시의 이론가였던 차를리노(Gioseffo Zarlino, 1517년 ~1590년)는 소제토 카바토(soggetto cavato)라고 불렀으며, 이러한 기법은 이후에도 사용되어 바흐와 슈만에까지 사용되었습니다.

출처 : 에네의 음반기록보관소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미사 페라라의 헤르쿨레스공》


죠스켕 데 프레는 그 당시에 유명했던 세속노래인 《무장한 남자》(L'Homme arme)의 선율을 빌려와 2개의 미사를 작곡하였습니다. 그 중 한 미사인 《미사 음계에 의한 무장한 남자》(Missa L' Homme arme super voces musicales)는 6음음계에서 한음씩 올라가면서 정선율로 각 악장을 시작하게 됩니다. 즉 <기리에>는 C에서 시작하고 그 다음 악장인 <글로리아>는 D로 점차적으로 올라가게 됩니다. <아뉴스 데이Ⅰ>은 G에서, <아뉴스 데이Ⅲ>은 A에서 시작하게 되는데, 그 이유는 <아뉴스 데이Ⅱ>에서는 정선율이 사용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시작음이 계속 달라짐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악장이 D음으로 끝맺음을 하기 때문에 선법적인 통일성이 유지됩니다. 이 외에도 정선율이 거꾸로 진행되거나(retrograde), 축소되거나(diminution) 혹은 확대되어(augmentation) 나타나기도 합니다.

정선율이 사용되지 않은 <아뉴스 데이Ⅱ>에서는 다른 빠르기 카논(mensuration canon)이 사용되어 죠스켕 데 프레의 능란한 작곡기법의 한 단면을 볼 수 있습니다. 아래의 악보처럼, 그는 한 성부만 제시하고 세 사람이 동시에 D와 A, 그리고 옥타브 위의 D음에서 다른 박자와 빠르기로 노래를 부르게 하였습니다. 또한 모든 악장의 끝 부분에서 정선율을 갖는 성부는 다른 성부보다 먼저 끝내게 하는 것은 요하네스 오케겜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출처 : 고대, 중세, 르네상스의 음악 (P. 204). - ppt download (slidesplayer.org)/죠스켕 데 프레, 《미사 무장한 남자》 중 <아뉴스 데이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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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패러디미사

죠스켕 데 프레의 미사 《미사 포르투나 데스페라타》(Missa Fortuna desperata)에서는 앙트완느 뷔누와(Antoine Busnois, 1492년 사망)의 샹송 《포르투나 데스페라타》의 세 성부를 모두 가져와 사용하였습니다(아래의 악보 참고). 이처럼 죠스켕 데 프레는 미사를 작곡할 때 한 선율만 빌려오는 것이 아니라 여러 성부나 특징있는 주제, 화성진행, 그리고 곡의 구성까지도 빌려와 미사에 적용시켰는데, 이렇게 다양하게 빌려와 작곡하는 미사를 패러디미사(parody Mass)라고 부릅니다. 이렇게 다른 곡을 모방하며 만든 미사라는 의미로 모방미사(imitation Mass)라고도 불리지만, 모방미사라는 용어는 모방기법을 사용한 일반적인 미사와 혼동될 수 있기 때문에 패러디미사라고 부르는 것이 혼란을 줄일 수 있습니다. 죠스켕 데 프레는 이런 기법으로 미사에 통일성을 부여했던 첫 작곡가로 간주되고 있으며, 이 기법은 16세기 후반 미사를 작곡할 때 많이 사용되는 기법이었습니다.

출처 : 서양음악사: 7. 조스캥 데 프레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뷔누와 샹송, 죠스켕 데프레 미사

 

⑤ 변용미사

변용(變用)미사(paraphrase Mass)는 정선율 미사(cantus firmus Missa)와 다른 차이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먼저 정선율 미사에는 정선율이 일반적으로 테노르 성부에 머무르고 있지만, 변용미사에는 정선율이 다른 성부로 옮겨다닌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둘째로 선율이 원형대로 사용되지 않으며, 변형되거나 장식이 되어 사용됩니다. 이렇게 정선율을 변형해 사용하는 방법은 모방을 가장 중요한 대위적 기법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16세기부터 시작되었고, 빌려온 선율로부터 얻은 모티브들은 각 성부에서 모방됩니다. 대표적인 변용미사의 예로는 《미사 판제 링과》(혀어 말하라)를 들 수 있습니다.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죠스켕 데 프레의 미사들은 정선율미사, 패러디미사, 변용미사, 카논기법을 사용한 미사들로 나눌 수 있습니다. 정선율 미사에서는 그레고리오 성가나 세속 샹송의 선율이 사용되기도 하고, 소제토 카바토와 같이 작곡가가 만든 선율도 사용됩니다.

 

⑥ 샹송

죠스켕 데 프레의 세속음악들은 몇 개의 프로톨라를 제외하면 대부분이 샹송입니다. 샹송들 중에 약 2/3은 3~4성부로 구성된 곡이고, 나머지 1/3은 5~6성부로 구성된 샹송입니다. 이 샹송들은 초기의 샹송이라고 생각되는 몇 곡만이 정형시 형식으로 작곡된 샹송이고, 나머지는 자유로운 형식으로 작곡된 곡들입니다. 죠스켕 데 프레는 샹송을 작곡할 당시에 유행했던 기법을 사용하였는데, 주요 선율이 최상성부에 있는 '칸틸레나'(cantilena)양식을 따르지 않고 모든 성부가 거의 동등하게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모방대위적인 짜임새를 사용하였습니다.

그의 4성부 샹송들은 미사와 마찬가지로 두 성부씩 짝찌어서 서로 모방하고 대화하듯이 진행됩니다. 죠스켕은 모방과 반복이 특징인 카논기법을 가지고 샹송을 많이 작곡했는데, 그의 5성부 샹송 《돈 없으면》(Faulte d' argent)이 카논과 모방기법이 융합된 대표적인 예시라 할 수 있는 곡입니다. 그의 샹송에도 역시 당대 유행하던 선율이 장식되거나 수정되어 사용되었습니다.


죠스켕 데 프레는 미사와 모테트, 샹송, 프로톨라, 기악곡을 포함한 그 당시 작곡되던 모든 장르에서 뛰어난 역량을 드러낸 작곡가입니다. 그는 당시에 사용되는 모든 기법들을 사용하였고, 더 나아가 새로운 기법들을 대담하게 시도하기도 하였으며, 이러한 시도들이 이후 작곡가들의 새로운 길을 안내해주기도 하였습니다. 당시의 음악이론가로 활동했던 글라레아누스(Heinrich Glareanus)를 비롯해 수많은 음악학자들이 죠스켕 데 프레를 르네상스 시대의 가장 중요한 작곡가로 간주했고, 마틴 루터가 "많은 작곡가들이 음의 지배를 받지만 그는 음을 지배하는 주인이다"라고 격찬한 것도 바로 이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 패러디미사 : 선율 뿐만 아니라 다양한 것들을 빌려와 작곡하는 미사
▶ 변용미사 : 정선율이 다른 성부로 옮겨 다니고, 선율이 원형되로 사용되지 않으며, 변형되고 장식되어 사용되는 미사


출처 : 새 들으며 배우는 서양음악사. 허영한 외 6명 공저. 심설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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