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작은대학교입니다.
지난 시간에는 르네상스 시대의 악기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그럼 오늘은 르네상스 시대의 기악음악은 어떤 종류가 있었는지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겠습니다.
2. 기악음악의 종류
이전 시간에도 언급했듯이, 기악음악은 성악과 함께 사용되었는데, 성악의 성부를 중복해 연주하거나 대치하여 연주되었습니다. 그러나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러 악기를 위한 독립된 음악들이 작곡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기악음악은 대체로 성악음악으로부터 유래된 곡들이나 춤곡, 변주곡, 그리고 즉흥곡의 네 가지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1) 성악음악에서 유래된 곡
르네상스 시대에 기악곡의 초기 단계는 주로 마드리갈이나 샹송, 모테트와 같은 노래선율에다가 트릴이나 빠른 음계, 꾸밈음을 첨가하는 정도의 형태였습니다. 이런 윤색(coloration)작업들은 대체로 악기를 연주하는 연주자가 즉흥적으로 처리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작곡가들이 직접 첨가음들을 기보하기 시작했고, 이런 움직임은 결국 이들을 모방한 기악곡의 탄생까지 이어지게 됩니다. 아래의 악보는 토마 크레키용(Thomas Crecquillon, 1505, 1515년 이전 ~ 1557년)의 샹송 《기쁨을 위해서》(Pour ung Plaisir)와 이 곡을 윤색한 안드레아 가브리엘리(Andrea Gabrieli, 1532, 1533년 ~ 1585년)의 칸초나의 일부분입니다.
① 칸초나(canzona)
칸초나는 '노래' 혹은 '샹송'을 의미하는 이탈리아어로, 다성 샹송을 악기로 편곡한 것을 말합니다. 또한 이는 프랑스 노래(canzon francese) , 악기로 연주되는 노래(canzon da sonar)라고도 부르기도 했습니다. 이 기악곡들은 이름대로 프랑스의 샹송을 모방해 작곡된 곡인데, 샹송의 특색인 빠르고 경쾌하면서 리듬감이 강한 선율과 단순한 다성적 짜임새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칸초나의 시작 부분 또한 샹송의 특징 중에 하나인 ♩♪♪리듬과 이분음표♩♩리듬으로 시작합니다.
작곡가들은 건반악기를 위한 독주 칸초나 이외에도 몇 개의 악기들을 위한 앙상블 칸초나도 작곡하기 시작했습니다. 초기의 칸초나는 대체로 한 가지의 주제나 서로 비슷한 몇 개의 주제들을 가지고 계속 모방하면서 다성적으로 발전되는 형태의 곡이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점차 지나면서 칸초나는 서로 다른 성격의 주제들로 구성된 대조되는 몇 개의 부분으로 구성되는 곡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즉 한 주제가 도입되어 모방된 후 종지가 되고, 또 다른 성격의 주제가 시작되어 모방, 종지되는 방식으로 전개됩니다. 16세기 말이 되면, 이 부분들이 점점 길이가 길어지고 더욱 대조되게 되면서 분명히 나뉘는 독립된 악장을 이루게 됩니다. 이는 17세기에 등장하는 교회소나타(sonata da chiesa)의 근간이기도 합니다.
② 리체르카레(ricercare)
칸초나가 경쾌하고 단순한 프랑스 샹송을 모방한 기악곡이라면, 리체르카레는 모테트를 모방한 기악곡입니다. 리체르카레는 샹송보다 복잡한 모방적 짜임새를 가지고 있습니다. 리체르카레라는 단어는 '찾다', '시도하다'라는 의미의 이탈리아어로 류트 연주자들이 지판에서 손가락으로 이런저런 시도를 해보다가 주제가 가지고 있는 여러 가능성을 찾아본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것으로 추측됩니다.
이런 즉흥적인 성격의 류트곡이었던 초기의 리체르카레가 건반악기 리체르카레로 발전하게 되면서 모테트와 비슷한 모방적인 곡으로 변모하게 됩니다. 건반악기 리체르카레는 몇 개의 비슷한 주제들로 구성되어 하나의 주제가 모방대위적으로 발전한 뒤에 계속해서 이와 비슷한 다른 주제가 다시 도입되고 발전됩니다. 이렇게 비슷한 주제들의 종지와 시작이 겹치면서 연속적으로 모방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 리체르카레이고, 성격이 다른 주제가 분명한 종지로 대조되고 비연속적으로 모방되는 것이 칸초나입니다.
모방적인 리체르카레는 오르간 이외에 기악 앙상블곡으로도 작곡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오르간 리체르카레는 점차 그 주제의 수가 적어지면서 한 개의 주제를 가지게 되었고, 이는 오르간 칸초나와 함께 17세기의 푸가로 발전되게 됩니다. 한편 이 당시에는 리체르카레라는 용어의 구별이 분명하지 않았기 때문에 모테트와는 관계없이 즉흥적으로 작곡되어진 류트나 오르간, 또는 비올의 곡들도 모두 리체르카레라고 불렀습니다. 또한 이와 비슷한 곡들을 카프리치오(capriccio), 판타지아(fantasia), 팬시(fancy) 등으로 부르기도 했습니다.
모테트와 샹송 이외에도 종교의 성악곡들이 오르간 곡의 근원이 되었는데, 이들은 미사에서 성가대와 오르간이 교대로 연주하는 오르간 미사(organ Missa)와 시편낭송에서 한 절씩 노래와 교대로 연주하는 오르간 베르셋(organ verset)입니다. 또한 영국에서만 유행했던 《인 노미네》(In nomine)는 "[주(主)의]이름으로"라는 의미로 존 태버너(John Taverner, 1490년 경 ~ 1545년)가 그의 《미사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Gloria tibi Trinitas)의 가사 중 "In nomine Domine"부분을 기악으로 편곡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그 이후에 약 100여 년 간 영국의 작곡가들은 이 곡에 사용된 정선율을 베이스에 놓고 변주하는 《인 노미네》를 즐겨 작곡하기도 하였습니다.
2) 춤곡
16세기 중엽부터 17세기 중엽까지 춤은 사교장 뿐만 아니라 극장에서도 유행하게 되었는데, 이로 인해 상류사회의 사람들은 대다수가 춤을 즐겨 추었습니다. 이에 따라 춤곡도 함께 성행하게 되었고, 그 결과 류트와 건반 악기 및 기악 앙상블을 위한 춤곡들이 16세기 기악음악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이 곡들은 이제는 중세시대처럼 즉흥적으로 연주되는 게 아니라 타불라튜어나 악보로 기보되어 페트루치나 아테냥이 출판하는 책에 수록되기도 하였습니다.
춤곡은 춤곡이라는 기능을 하기 위해 정확한 리듬과 규칙적이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모방적인 짜임새는 보이지 않고 주선율이 장식되어 나타나는 것이 보통이고 분명하게 구분되어지는 몇 개의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춤곡들은 성악곡과는 관계없이 독자적으로 발생되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기약곡 양식으로 발전되었고, 이후에는 완전히 독립되어 춤을 동반하지 않는 연주용 기악곡으로도 작곡되었습니다. 하지만 춤곡의 특징적인 리듬과 짜임새는 그대로 유지되어 작곡되었습니다.
춤곡은 중세시대부터 관습대로 2 ~ 3개씩 짝지어 작곡되었는데, 가장 흔한 짝은 파반느(pavane)와 갈리아르(galliard), 또는 파사메초(passamezzo)와 살타렐로(saltarello)입니다. 이런 구조는 대개 첫 곡은 위엄있고 느린 2박자로 구성된 반면, 두 번째 곡은 경쾌하고 빠른 3박자로 되어 있지만 첫 곡의 변주로 되어 있습니다. 즉 이들은 춤곡인 동시에 변주곡의 일종이기도 합니다.
16세기 중엽에는 알르망드(allemande) 혹은 알망(alman)이라고 불리는 보통 빠르기의 2박자 춤곡이 유행하기 시작했고, 빠른 3박자의 쿠랑트(courante)도 유행에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이후에 이 두 유형의 춤곡은 춤모음곡의 기본 악장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서로 대조되는 춤곡들을 짝지어 작곡하는 르네상스 시대의 춤곡들은 바로크시대의 다악장형식인 춤모음곡(dance suite)과 실내소나타(sonata da camera)의 발전에 기여하게 됩니다.
3) 즉흥곡
기악음악은 즉흥 연주를 통해 많이 발전될 수 있었고, 각 악기들의 독특한 연주기법들도 함께 개발되었습니다. 르네상스 시대에 유행했던 즉흥연주의 방법은 첫째, 원래 있던 선율을 정선율로 두고, 여기에 다른 성부를 첨가하는 방식입니다. 둘째, 원래 선율을 장식하거나 변형하는 방식입니다. 셋째, 선율, 형식, 화성 등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연주하는 방식입니다.
초기에 작곡된 독주악기를 위한 기악곡들은 세 번째 유형에 해당하는 즉흥양식의 곡으로써, 일정한 박자나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다양한 짜임새를 보여주고 자유롭게 전개되는 곡입니다. 이러한 곡들을 프렐류드(prelude), 프레앰불룸(preambulum), 판타지아, 토카타, 또는 리체르카레라고 불렀습니다.
① 토카타(toccata)
16세기 후반에 이르면 오르간을 위한 즉흥곡이었던 토카타라는 장르가 유행했습니다. 토카타는 '만지다'라는 뜻의 이탈리아어로 토카레(toccare)에서 유래되었으며, 이는 오르간 주자가 건반 위에서 즉흥연주를 하는 것으로부터 유래되었습니다.
토카타는 음을 길게 유지할 수 있는 오르간의 특징을 이용해 한 손으로는 음을 지속시키면서 다른 손으로 빠른 음들을 즉흥적으로 연주하는 곡입니다.
초기의 토카타 곡들은 지속되는 화음 위에서 빠른 음을 연주하는 것으로 그쳤지만, 이후에 베네치아 성 마르코 성당의 오르간 주자였던 클라우디오 메룰로(Claudio Merulo, 1533년 ~ 1604년)가 중간 부분에 모방적 부분을 삽입함에 따라 토카타가 예술적으로 향상되었으며, 그 성격 또한 넓어지게 되었습니다. 클라우디오 메룰로는 즉흥적인 토카타 부분 뒤에 모방적으로 전개되는 리체르카레같은 부분을 삽입하고 다시 처음의 토카타적인 양식으로 돌아오는 세 가지 부분(T-R-T)으로 구별되는 토카타를 작곡하였습니다.
하지만 토카타라는 장르가 모두 리체르카레적인 부분들을 포함하고 있는 것은 아니며, 이 곡들은 판타지아, 인토나치오네(intonazione), 프렐류드와 같은 명칭으로 다양하게 불리기도 했습니다.
4) 변주곡
다성성악곡들을 건반악기나 류트 독주로 연주할 때, 가장 윗성부를 장식해서 원래의 선율을 변형시키는 변주기법 방식은 중세시대에서도 잘 알려진 방법입니다. 그러나 16세기 스페인과 영국에서는 새로운 양식의 변주곡들이 발달되었는데, 이는 짧고 단조로운 노래나 춤곡들이 베이스에서 계속 반복되는 동안 다른 성부에서 변주되는 방식입니다. 여기서 사용된 베이스 선율은 파반느에서 유래된 것이며, 이는 아래의 악보에 보이는 파사메초 안티코(passamezzo antico)와 파사메초 모데르노(passamezzo moderno), 그리고 로마네스카(Romanesca)와 폴리아(folia) 선율들입니다.
16세기 후반 영국에서는 윌리엄 버드(William Byrd, 1540년 ~ 1623년), 존 불(John Bull, 1562, 1563년 경 ~ 1628년), 길스 파나비(Giles Farnaby, 1563년 경 ~ 1640년), 오를란도 기본스(Orlando Gibbons, 1583년 ~ 1625년), 토마스 톰킨스(Thomas Tomkins, 1572년 ~ 1656년) 등 버지날 작곡가들이 활발하게 활동하기 시작하면서 변주곡은 전성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특히 『핏츠윌리엄 버지날 책』(The Fitzwilliam Virginal Book, 1609년 ~ 1619년)에 수록된 300여 곡 중 2/3 이상이 변주곡 기법을 사용해 작곡한 곡들로, 16세기에 사용된 변주 기법들이 모두 들어있습니다.
여기에 들어있는 변주곡들의 주제는 일반적으로 짧고 단순하며 악절이 분명하고 명확한 종지에 의해 2부분이나 3부분으로 나뉘는 선율들이 사용됩니다. 보통 12 ~ 20여 개의 변주들이 계속 이어져 나오는데, 주제 선율은 주로 변하지 않거나 변형이 되더라도 주제의 종지나 화성의 진행처럼 중요한 골격은 그대로 유지하여 진행됩니다. 영국의 버지날 작곡가들은 스벨링크와 같은 북유럽의 건반악기 작곡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기도 했습니다.
스페인에서는 비우엘라와 오르간을 위한 디페렌시아(diferencia, '다른 것')라고 부르는 변주곡들이 오르간 주자였던 안토니오 데 카베존(Antonio de Cabezon, 1510년 경 ~ 1566년)에 의해 다수가 작곡되었습니다. 그는 어릴 적부터 장님이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대에 가장 훌륭한 건반악기 연주자 중 하나로 꼽혔으며, 그의 디페렌시아 작품에서는 주제가 되는 선율이 다른 성부로 옮겨 다니며 변주되면서 진행되는데, 이 변주들은 현대의 변주곡들처럼 구분되지 않고 계속 이어져 연주됩니다.
▶ 칸초나 : 노래, 샹송을 뜻하는 이탈리아어, 다성 샹송을 악기로 편곡한 곡, 경쾌하고 단순, 프랑스 샹송 모방
▶ 리체르카레 : 샹송보다 복잡한 모방적 짜임새, 모테트 모방, 즉흥적 성격의 류트곡
▶ 알르망드, 알망 : 보통 빠르기의 2박자 춤곡
▶ 쿠랑트 : 빠른 3박자 춤곡
▶ 토카타 : 한 손으로 음을 지속시키면서 다른 손으로 빠른 음들을 즉흥적으로 연주하는 곡
▶ 디페렌시아 : 스페인의 변주곡
출처 : 새 들으며 배우는 서양음악사. 허영한 외 6명 공저. 심설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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