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작은대학교입니다.
오늘부터는 르네상스 시대 이후 시대, 즉 바로크 시대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겠습니다. 바로크 시대에 들어서면서 새로운 특색이 생기기 시작했고, 그 특색들은 거의 현대에 가까워지면서 인정받기 시작하였습니다. 때문에 바로크 시대의 시대적 배경을 먼저 알아보고 음악양식들을 세 번에 이르러 나누어 다루고자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바로크 시대의 작곡가들과 그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겠습니다.
Ⅹ.바로크시대의 음악양식과 작곡가
바로크(Baroque)라는 용어는 1600년부터 1750년까지 시대와 사용되었던 음악양식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이 '바로크'라는 용어가 어디서 나왔는지는 확실하게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다만 한 가지 추측되고 있는 것으로는 포르투갈어의 'barroco(일그러진 진주)'에서 파생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는 음악보다 먼저 미술분야에서 바로크 시대의 움직임이 있었고, 처음 적용되기 시작했는데, 이 시대와 양식을 르네상스 이후에 온 예술적 퇴폐로 보는 부정적인 시각 때문에 일그러진 진주라 말했던 것입니다.
19세기 말에 이르러서야 예술비평가들이 점점 바로크 시대를 괴상하고 과장되며 불규칙함을 함축한 것으로 여기는 것으로 부터 벗어나, 한 시대의 표현 방식으로서 이해되기 시작하였습니다. 하지만 음악사학자들은 오랫동안 그 개념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이 때문에 바로크 시대가 아닌 계속저음의 시대, 콘체르타토 양식의 시대, 봉건 절대주의의 시대 등으로 지칭하기도 하였습니다.
1) 17세기 유럽의 사회환경
절대주의란 중세시대의 지방 분권적 봉건체제가 무너지면서 16세기 후반부터 18세기 즈음에 걸쳐 유럽에 나타났던 강력한 왕권 중심 정치 체제를 의미합니다. 왕권 중심의 중앙집권체제 하에 통일이 되면서 여러 갈등이 발발했고, 이에 17세기 유럽은 거의 매일 전쟁을 치뤘습니다. 17세기 내내 어느 한 지역에서도 전쟁이 없었던 시기는 단 7년 정도였을 정도였습니다. 또한 심각한 종교적 분쟁들이 정치적인 요인들에 의해 일어났습니다. 16세기에 일어난 종교개혁은 유럽 사회에 정치적, 사회적, 지적인 면 등등에서 다양한 변화를 불러일으켰습니다. 사실 이 시기에 일어난 전쟁과 갈등은 종교개혁으로 인한 교회와 국가 사이에서 일어난 오랜 갈등의 절정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1700년대 전후 유럽은 절대왕권을 형성하기 시작했던 프랑스나 스페인, 영국 이외에 서로가 뚜렷한 국경이 없는 중소 봉건지주(왕자, 공작, 백작, 영주, 후작, 선거후, 대주교, 주교, 그리고 자유도시 등)의 나라들이 무수히 난립해 있었습니다. 지금의 독일 지역에는 약 300여 개의 나라들이 있었고, 지금의 이탈리아 지역에는 약 12개 이상의 나라가 있었습니다. 절대국가나 힘이 있던 중소 국가의 지배계급들은 교회에 있던 다양한 성직자 계급과 함께 엄청난 부와 권력을 누렸고, 예술을 보호, 장려하면서 지배권의 팽창이나 유지를 위한 힘을 과시하기도 했습니다.
각 나라의 군주들은 종교적인 권위에 방해를 받지 않고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함과 동시에 귀족이나 자유도시의 전통적인 '자유'를 제거하기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특히 작은 나라의 군주들은 프랑스를 본보기로 삼았는데, 프랑스는 국민생활을 전례 없이 잘 통제하고 있던 가장 성공적인 절대국가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따라서 프랑스는 절대주의 국가의 표본이 되었고,프랑스를 통치하던 루이 14세(Louis ⅩⅣ, 재위기간 1643년 ~ 1715년)는 왕권신수설 사상에 근거한 군주권을 상징하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또한 프랑스어는 문화와 외교의 언어가 되었고, 베르사유 궁전은 유럽의 문학과 예술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2) 17세기 유럽의 문화환경
17세기는 르네상스 시대부터 점차 시작되었던 과학적인 탐구가 절정에 이른 시기이기도 합니다. 또한 이 시기에는 새로운 발견이나 발전이 많이 이뤄진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첸체 운행의 법칙을 발견해 지동설을 보다 더 정확하게 제시한 요하네스 케플러(Johannes Kepler, 1571년 ~ 1630년)와 자기가 발명한 망원경을 통해 천체를 관찰하고, 그 결과를 가지고 지동설의 정당성을 증명했던 갈릴레오 갈릴레이(Galileo Galilei, 1564년 ~ 1642년)는 천문학의 발전에 크게 공헌함과 동시에 신세계를 발견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를 제공하였습니다. 또한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함으로써, 이전에 발견된 법칙들을 하나로 통합했던 아이작 뉴턴(Sir Isaac Newton, 1642년 ~ 1727년)은 우주가 하나의 통일된 법칙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는 새로운 근대적 우주관과 기계론적 자연관을 확립했습니다. 반면 안톤 판 리우벤호크(Anton van Leeuwenhoek, 1632년 ~ 1723년)는 맨 눈으로 볼 수 없는 아주 작은 세계를 현미경으로 탐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과학의 발달은 나침반의 발명과 항해술, 조선술같은 기술들을 발전시켰으며, 대서양을 접하고 있는 서유럽의 절대주의 국가인 포르투갈, 스페인, 프랑스, 영국 등이 이슬람에 의해 막혀있던 기존의 지중해 항로 대신에 새로운 항로를 개척함으로써 신세계를 경쟁적으로 탐험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과학의 발달은 17세기에 시대정신을 이끌었던 철학자들의 활동과 맥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영국의 베이컨(Francis Bacon, 1561년 ~ 1626년)은 모든 지식이 경험으로부터 나온다는 경험주의 철학을 주장하였고, 프랑스의 데카르트(Rene Descartes, 1596년 ~ 1650년)는 경험보다는 이성을 더욱 중시한 합리주의 철학을 주장하였습니다. 이런 대립적인 사상은 18세기에 이르러 독일의 칸트(Immanuel Kant, 1724년 ~ 1804년)가 저술한 '순수 이성 비판'에서 합쳐지게 되었습니다. 영국의 로크(John Locke, 1632년 ~ 1704년)는 생명, 자유, 재산권을 인간의 자연권이라고 주장함으로써 근대의 자유주의 원리를 제시하였고, 이는 프랑스와 미국 혁명의 기본 정신이 되었습니다.
예술 분야 또한 학문과 지식에서 나타났던 이러한 탐구적 정신, 열정이 반영되었습니다. 움직임과 색, 감각을 강조한 그림을 그렸던 피터 파울 루벤스(Peter Paul Rubens, 1577년 ~ 1640년)나 렘브란트 반 레인(Rembrandt van Rijn, 1606년 ~ 1669년), 그리고 극적이면서 역동성 있는 조각을 만들었던 지오반니 로렌초 베르니니(Giovanni Lorenzo Bernini, 1598년 ~ 1680년)는 새로운 시대를 여는 대표적인 화가이면서 조각가, 건축가이기도 했습니다. 이들은 고대와 르네상스 시대의 요소를 새로우면서도 놀라운 방식으로 표현하기 시작했으며, 나아가 일상적인 세계들을 극적으로 그려내는 일에도 집중하였습니다. 건축가들은 르네상스 시대의 조화롭고 직선적인 선으로부터 벗어나 육중하면서도 다면적인 세부를 갖는 곡선의 모양을 구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외에도 영국의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1564년 ~ 1616년), 프랑스의 코르네유(Pierre Corneille, 1604년 ~ 1684년)와 몰리에르(Moliere, 1622년 ~ 1673년)는 연극이라는 장르를 새로운 시대의 중심 장르로 이끌었던 극작가들이었습니다.
바로크 시대의 예술 양식은 지나치게 단순화시켰던 묘사이긴 하지만, 미술이나 건축, 음악이든지 주어진 공간을 활동과 움직임으로 가득 채우는 특징이 있습니다. 미술에서는 색과 세부사항, 장식 등의 가능성을 확대시켰고, 음악에서는 르네상스 시대의 선율과 짜임새의 동질성 추구보다는 다양성을 중심으로 다루게 되는 새로운 양식들이 창조되었습니다.
출처 : 새 들으며 배우는 서양음악사. 허영한 외 6명 공저. 심설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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