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음악사

무조성과 음렬기법 1/7(2023.02.10)

작은대학교 2023. 2. 10.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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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작은대학교입니다.

 

몇 일 개인적인  일이 있어 일주일 정도 글을 올리지 못한 점 양해바랍니다.

그럼 오늘부터는 20세기의 대표적인 음악이라고 할 수 있는 무조성 음악과 음렬기법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겠습니다. 조금 어렵고 복잡한 내용일 수 있으니 천천히 읽으면서 이해하고 넘어가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ⅩⅩⅣ. 무조성과 음렬기법

 

아놀드 쇤베르크의 《달에 홀린 삐에로》처럼 20세기 음악이 많은 사람에게 생소하게 들리는 이유는 바로 조성이 없기 때문인데, 이렇게 조성이 없는 음악을 무조성 음악이라고 부릅니다. 무조성 음악이 등장하기 이전에는 흔히 작품에 조이름을 넣어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b단조 미사》라든지, 모차르트의 《교향곡 제40번 g단조》처럼 명명했었는데, 이것은 B음과 G음을 으뜸음으로 설정하고 그것에 맞는 음계로 작곡했다는 의미였습니다. 하지만 무조성 음악은 조성이 없는 음악이기 때문에 으뜸음이 없고 그에 따른 딸림음이나 버금딸림음, 또 그와 관계된 화음들도 있을 수 없게 됩니다.

 

이 무조성 음악은 오스트리아의 비엔나를 중심으로 발달했는데, 20세기 초에 활동했던 몇몇 작곡가들이 시도하면서 시작되었고, 이 길을 따르는 작곡가들이 점차 증가함에 따라 결국 20세기의 큰 양식적 조류를 형성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20세기의 음악이 모두 무조성 음악이 아니었기 때문에 20세기 전반의 음악 중 조성이 없는 음악에 대해서는 이번 화에 다루도록 하고, 다음에 조성의 흔적을 지닌 음악들을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돌아와, 왜 많은 유럽의 도시 중 왈츠의 도시인 비엔나에서 무조성 음악이 발현했는지에 대해서는 비엔나의 역사적

·사회문화적 배경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이에 오늘은 먼저 그 당시의 시대적 배경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1) 『세기말 비엔나』

 

『세기말 비엔나』는 미국의 역사학자 카를 쇼르스케(Carl E. Schorske, 1915년 ~2015년)가 1961년 출간한 책 제목입니다(Fin-de-siecle Vienna: Politics and Culture). 카를 쇼르스케는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비엔나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던 정치적·문화적 변동 상황을 집중적으로 연구한 뒤 그것을 바탕으로 방대한 저서를 출판하게 되었는데, 이 저서를 통해 이후에 퓰리처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비엔나는 이 기간동안 격변의 시절을 거쳤는데, 이 당시 비엔나에서 일어나는 변화는 거의 모든 예술 분야에 실로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20세기 문화의 주류를 탄생시킨 이 흐름을 우리는 흔히 '모더니즘'이라고 부릅니다. 즉, 수백 년 동안 합스부르크 제국의 수도로 정치권력의 중심지이자, 풍요로운 부르주아 지식인들의 사치스런 도시였던 비엔나가 19세기 말과 20세기 초를 거치면서 새로운 정신적 문화의 상징인 '모더니즘'을 태동시키는 중심지로 변모하게 된 것입니다.

 

이런 변화의 시작은 1860년 경입니다. 이 시기는 오스트라의 자유주의자들이 합스부르크 제국의 서부에서 점점 정치적 권력을 키워갔고, 결국 합스부르크 제국의 수도 비엔나를 장악한 시기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중산층의 문화적 가치에 따라 국가 제도를 바꾸고 도시를 재개발했는데, 그 핵심은 비엔나 중심지를 에워싸는 원형의 순환도로를 건설하는 것이었습니다. 원형 도로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링슈트라세(Ringstrasse)의 내부에 살고있던 당시 비엔나의 지식인들 중에는 아마추어 음악가나 화가들이 많았는데, 그들은 단순한 장인이 아니라 다방면에 걸쳐 조예가 깊은 지식인이었습니다. 문인으로서 대표할 수 있었던 사람으로는 아르투어 슈니츨러(Arthur Schnitzler, 1862년 ~ 1931년), 휴고 호프만슈탈(Hugo von Hofmansthal, 1874년 ~ 1929년), 오스카 코코슈카(Oskar Kokoschka, 1886년 ~ 1980년)가 있고, 심리학자였던 지그문트 프로이트 역시 이 시절 링슈트라세 내부에서 활동했던 사람이자 비엔나 시민이었습니다. 19세기 비엔나에서 살고있던 지식인들과 예술가들은 서로 긴밀한 교류를 가지고 있었고, 그런 흐름으로 인해 비엔나는 정치와 경제의 수도임과 동시에 지성과 문화의 중심지로 바뀌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피렌체가 르네상스의 찬란한 문화를 이끌었던 것처럼, 비엔나도 20세기의 과학적 사고와 지성, 문학과 조성예술, 공연예술 등 거의 모든 분야의 예술을 이끌어 '모더니즘'을 탄생시키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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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비엔나의 음악적 환경

 

음악의 역사를 다루는 교과서들은 주로 대부분의 지면을 '작곡의 역사'에 대해 서술합니다. 하지만 19세기 말 비엔나에서는 작곡 이외에도 음악비평, 음악학, 음악분석 분야에 여러 가지 주요한 변화가 일어났기 때문에, 이런 배경 또한 알아둘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비엔나의 유력한 평론가로 활동했던 에두아르트 한슬릭(Eduard Hanslick, 1825년 ~ 1904년)은 1854년 『음악의 아름다움에 관하여』(Vom Musikalisch-Schonen)라는 책을 집필했는데, 이 책은 음악미학 분야의 고전이 되어 지금까지도 널리 읽히고 있습니다. 그는 1856년에 이 저서를 교수자격 청구논문(Habilitationsschrift)으로 제출했는데, 이것을 통해 대학교수로 임용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1861년, 음악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음악학자로서 최초로 대학교수가 되었으며, 1880년대 후반까지 비엔나 대학교에서 음악사와 음악미학을 강의하게 되었습니다.

 

출처 : Eduard Hanslick - Wikipedia/에두아르트 한슬릭

 

비엔나 대학교의 음악학 전통은 1888년에 그의 자리를 물려받은 귀도 아들러(Guido Adler, 1855년 ~ 1941년)에 의해 계승되었습니다. 그는 최초의 음악학 학술지를 창간하고, 국제음악학회를 창립하는 데 중심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그리고 비엔나 대학교 내에 음악학연구소를 설립하고, 음악학을 전공하는 프로그램까지 개설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무조성과 음렬기법을 다루면서 언급할 안톤 베베른(Anton Webern, 1883년 ~ 1945년)이 바로 이 음악학 프로그램에서 공부를 했고, 귀도 아들러의 지도 하에 박사학위 논문을 쓰게 되었습니다.

 

출처 : 귀도 아들러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귀도 아들러

 

에두아르트 한슬릭과 귀도 아들러 이외에도 잘 알려진 사람이 있는데, 소위 쉔커식 분석(Schenkerian Analysis)으로 조성음악 분석의 독특한 시각을 제시한 하인리히 쉔커(Heinrich Schenker, 1868년 ~ 1935년)가 있습니다. 그도 1880년대 비엔나 대학교에서 법학을 전공한 뒤, 비엔나 음악원에서 안톤 브루크너에게 화성학을 배웠고, 그 길로 음악이론가로 전향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음악계의 상황만 보아도 그 당시 비엔나는 요한 슈트라우스의 왈츠가 울려 퍼지는 화려한 도시에서 부터 음악의 역사, 미학, 이론 등을 심도 있게 연구하는 지성의 중심지로 점점 바뀌어가고 있었고, 그 결과로 무조성 음악이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출처 : 하인리히 쉔커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하인리히 쉔커

 


▶출처 : 새 들으며 배우는 서양음악사. 허영한 외 6명 공저. 심설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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