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작은대학교입니다.
오늘은 바로크 시대 기악음악의 장르 중 하나인 소나타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겠습니다.
2. 소나타
성악음악의 뿌리로부터 기악음악이 점점 발달해온 과정은 소나타를 통해 잘 알 수 있습니다. 바로크 시대의 소나타는 '연주되는 노래'(canzon da sonar)로, 르네상스 시대의 기악적 노래인 칸초나입니다. 더 이전까지 간다면 프랑스의 세속노래인 샹송까지도 거슬러 올라갈 수 있습니다. 초기 칸초나는 샹송의 대위적인 짜임새를 단순하게 모방한 것이었습니다. 이후 등장한 다성음악적 칸초나는 10개 이상의 단락으로 나뉘어 있었고, 이 부분들은 주제의 연관이 없었고, 다양한 길이나 양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또한 이들은 일반적으로 대조되는 양식으로 짜여 있었는데, 주로 길이가 긴 모방대위적인 단락이 길이가 짧은 화성적 단락과 교대되며 진행되었습니다.
바로크 시대에 등장한 새로운 모노디 양식의 영향으로 인해 칸초나의 성부는 그 수가 점점 줄어들었고, 각각의 단락들 또한 독자적인 성격을 가지게 되면서 길이가 길어졌으며, 단락 수도 줄어들게 되었습니다. 이후에 이 칸초나는 단락구성의 칸초나로부터 벗어나게 되었고, 다악장 규모의 성격을 가지게 되면서 '소나타'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소나타라는 단어는 원래 이탈리아어 'sonare'(소리나다)로부터 파생된 단어이며, 기악곡이라는 의미를 가지며, 성악곡 칸타타와 대비되는 용어이기도 합니다. 초기의 소나타는 각 성부를 한 사람의 주자가 연주한다는 기악 앙상블 음악을 의미했고, 그 대표적인 것으로 '트리오 소나타'(trio sonata)가 있습니다. 이 트리오 소나타에 나타나는 삼중주 짜임새'(trio texture) 형태는 바로크 시대 작곡가들이 즐겨 사용했던 기악 앙상블 형태입니다. 이 기악 앙상블 형태에서는 주로 두 가지의 독주악기와 계속저음 악기들이 연주하는 형태입니다. 하지만 트리오라는 이름과는 조금 다르게 트리오 소나타는 4명 또는 그 이상의 악기 연주자가 연주를 하는 형태입니다(2개의 선율악기, 1개의 화음 제공 악기 혹은 그 이상의 저음선율 보강악기로 구성).
독주악기에 계속저음 반주가 붙는 소나타는 1700년대 이후부터 대중화되기 시작했으며, 이 때 무반주 바이올린을 위한 소나타도 등장했습니다. 독주악기인 클라비어를 위한 소나타는 1690년 경 독일의 요한 쿠나우(Johan Kuhnau, 1660년 ~ 1722년)가 곡을 작곡하면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바로크 시대의 소나타는 트리오 소나타 형태가 가장 많이 등장하는 형태이지만, 하나 또는 셋, 또는 그 이상의 악기에 계속저음을 포함한 형태로도 작곡되었으며, 건반악기 독주소나타처럼 계속저음 악기가 편성되지 않은 작품들도 있었습니다.
소나타의 초기 발전에 도움을 주었던 바로크 시대 작곡가들은 소나타의 음악적인 내용이나 연주되는 장소에 따라 두 가지 종류로 구분하였습니다. 그것은 바로 '교회소나타'(sonata da chiesa)와 '실내소나타'(sonata da camera)로 곡의 성격을 구분해 작품을 출판하였습니다.
교회소나타는 느림과 빠름이 교대하는 4악장으로 구성된 소나타고, 미사의 특정부분에서 연주되었습니다. 실내소나타는 서주적 악장에 세 개 또는 네 개의 춤곡을 붙여 만들어진 소나타로, 교회소나타와 마찬가지로 느림과 빠름이 교대로 나오는 춤모음곡입니다. 당시에 '실내의'(da camera)라고 말했던 의미는 궁정 또는 학술모임에서 연주되었던 사적 연주회 음악(교회나 극장과 관련된 음악이 아닌)을 의미하였습니다. 따라서 '실내의'라는 음악은 공공회장보다는 개인의 가정에서 연주되는 것이 더 일반적이었고, 가정에서 연주되다보니 작은 규모의 앙상블 형태로 연주되었습니다. 하여 이런 과정을 거쳐 현재의 실내악적 의미가 적용된 것이 실내소나타입니다.
이 두 가지의 소나타는 17세기 후반이 되어 크게 성행하였고, 대부분 바로크 작곡가들에 의해 작곡되었습니다. 영국의 헨리 퍼셀, 프랑스의 프랑소와 쿠프랭, 독일의 게오르그 필립 텔레만과 디트리히 북스테후데, 이탈리아의 아르칸젤로 코렐리는 모두 소나타의 중요한 작곡가였습니다.
아르칸젤로 코렐리(Arcangelo Corelli, 1653년 ~ 1713년)는 이탈리아 라벤나 근교의 푸시냐노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바이올린 주자이면서 작곡가로 활동했는데, 초기에는 다양한 형태의 악기 조합을 위한 소나타를 주로 작곡했고, 특히 바이올린 주법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아르칸젤로 코렐리는 이탈리아의 기악음악 발전에도 많은 영향력을 발휘했습니다. 그는 총 60곡의 소나타를 교회소나타와 실내소나타 형태로 구분해 5개의 작품집으로 출판하기도 하였습니다. 그 중 48개의 작품이 2대의 바이올린과 계속저음을 위한 트리오 소나타이고, 나머지 12개는 바이올린과 계속저음을 위한 독주소나타입니다. 작품 전체가 트리오 소나타로만 구성되어있는 작품1과 작품3은 두 개 모두 교회소나타로, 각각 12곡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반면 작품2와 작품4는 두 개 모두 실내소나타로, 역시 12곡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8세기에 활동했던 비평가들에 의해 동시대 최고의 작곡가로 여겨졌고, 동시대 이론가들에게도 모범적인 작품들을 만든다고 인정받았던 게오르그 필립 텔레만은 작품을 많이 만든 작곡가임과 동시에(약 3,000여 개의 작품 주제가 목록화 되어있음) 예리한 문필가였습니다. 그는 1718년, 1729년, 1740년의 기록을 담은 자서전을 남겼으며, 자신의 성악 작품 중 상당수는 그 가사를 본인이 직접 썼다고 밝혔습니다. 그가 남긴 글들은 동시대의 음악과 연행 관습들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자료이기도 합니다. 게오르그 필립 텔레만은 100여 개의 트리오 소나타 작품을 남겼고, 이 작품들을 통해 계속저음 위에서 연주하는 두 선율악기의 짜임새를 다양한 조합으로 실험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1740년에 출판된 『연습곡집』(Essercizii musici)은 그가 1720년대에 작곡했던 12개의 독주소나타와 12개의 트리오 소나타를 모아 놓은 것인데, 여기서 다양한 악기의 조합을 위한 바로크 시대의 소나타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건반악기를 위한 독주 소나타를 가장 많이 남긴 작곡가는 도메니코 스카를라티(Domenico Scarlatti, 1685년 ~ 1757년)입니다. 그는 600여 개에 달하는 하프시코드를 위한 곡을 작곡했고, 남다른 창의력을 보여주었습니다. 계속저음이 포함되어 있지 않은 그의 하프시코드 독주 소나타는 다양한 종류의 기술들을 차례로 연마할 수 있는 연습곡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대부분 한 악장으로 되어있지만, 짝지어서 연습할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그의 소나타는 다악장 구조 위에 다양한 양식과 감정들을 결합시키면서 조성적, 주제적 처리 등의 기법들을 발전시켰고, 그 결과 고전시대의 교향곡, 현악 사중주 등의 새로운 장르들이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출처 : 새 들으며 배우는 서양음악사. 허영한 외 6명 공저. 심설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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