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음악사

바로크시대 음악양식 5/5(2022.07.11)-바로크 작곡가

작은대학교 2022. 7. 1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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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작은대학교입니다.

 

오늘은 바로크 시대의 작곡가와 그들이 어떻게 음악생활을 하기 위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겠습니다.


2. 바로크 작곡가의 삶과 후원체계

 

1) 바로크 작곡가

 

다음은 바로크 시대에 활동했던 주요 작곡가들의 명단입니다.

 

줄리오 카치니(Giulio Caccini, 1545년 ~ 1618년)

야코포 페리(Jacopo Peri, 1561년 ~ 1633년)

클라우디오 몬테베르디(Claudio Monteverdi, 1567년 ~ 1643년)

지롤라모 프레스코발디(Girolamo Frescobaldi, 1583년 ~ 1643년)

하인리히 쉿츠(Heinrich Schutz, 1585년 ~ 1672년)

야콥 프로베르거(Jakob Froberger, 1616년 ~ 1667년)

쟝-밥티스트 륄리(Jean-Baptiste Lully, 1632년 ~1687년)

디트리히 북스테후데(Dietrich Buxtehude, 1637년 ~ 1707년)

아르칸젤로 코렐리(Arcangelo Corelli, 1653년 ~ 1713년)

헨리 퍼셀(Henry Purcell, 1659년 ~ 1695년)

알렛산드로 스카를라티(Alessandro Scarlatti, 1660년 ~ 1725년)

프랑소와 쿠프랭(Francoir Couperin, 1668년 ~ 1733년)

안토니오 비발디(Antonio Vivaldi, 1675년 ~ 1741년)

게오르그 필립 텔레만(Georg Philipp Telemann, 1681년 ~ 1767년)

쟝-필립 라모(Jean-Philippe Rameau, 1683년 ~ 1764년)

요한 세바스찬 바흐(Johann Sebastian Bach, 1685년 ~ 1750년)

도메니코 스카를라티(Domenico Scarlatti, 1685년 ~ 1757년)

조지 프리데릭 헨델(George Frideric Handel, 1685년 ~ 1759년)

 

2) 바로크 작곡가의 삶

 

바로크 시대에 활동했던 작곡가들의 작품들은, 특히 후기의 바로크 시대 작곡가들의 작품들은 지금 연주회를 통해 자주 연주되고 있고, 음반이나 Youtube르 통해서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어떤 환경에서 작품을 만들었는지를 이해하기 위해선 먼저 그 시대를 알 필요가 있습니다.

 

바로크 시대의 작곡가들은 절대왕권이나 중소 봉건지주들을 위해 작품을 만들었고, 안정적이면서 더 나은 직위와 보수를 받기 위해 끊임없이 경쟁하는 환경 속에서 살았습니다. 바로크 시대 작곡가의 전기를 보면 대부분 그들이 태어난 도시와 일했던 도시, 작품이 쓰이거나 초연되었던 도시 등에서 놀라울 정도로 국제적인 범위인 경우를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프랑스의 절대군주이며 태양왕이라고 불렸던 루이 14세(재위기간, 1643년 ~ 1715년)에게 평생 고용되었던 쟝-밥티스트 륄리는 이탈리아에서 출생한 작곡가로 프랑스 궁정의 현악단 감독으로 부와 권력을 동시에 누렸습니다. 그리고 하인리히 쉿츠는 독일의 카셀과 베네치아에서 수학을 한 뒤에 다시 독일로 돌아와 헤세의 백작, 드레스덴의 선제후를 위해 일하였습니다.

 

출처 : [뮤즈의 클래식 여행] 바로크 음악의 중요한 문화 - 이코노믹매거진 (economicsmagazine.kr)/바로크시대 궁정 연주회

3) 후원체계

 

바로크 시대에 지배계급은 엄청난 부와 권력을 누렸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화려한 궁정이나 장대한 오락물들을 통해 그들이 지닌 권력과 재력들을 과시하려고 했기 때문에 음악은 매우 중요한 자원이었습니다. 이 시기에는 하나의 궁정에 오케스트라, 교회 합창대, 오페라단 등을 함께 소유하기도 했는데, 이 규모는 부의 크기에 비례했습니다. 요한 세바스찬 바흐는 1717년에 한 작은 독일 궁정에서 18명의 오케스트라 단원을 지휘했는데, 이 당시 큰 궁정에서는 약 80여 명을 상주시키기도 했습니다.

 

궁정의 음악감독은 연주회를 주관하기도 했지만, 오페라나 교회음악, 연회음악 등 궁정 연주에 필요한 작품들을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업무 외에도 고용된 음악감독들에게는 궁정의 젊은이들의 음악교육과 음악장서, 악기 관리의 책임도 부여받았습니다. 즉 음악감독은 명예가 높고 자신이 작곡한 곡들이 궁정 연주를 통해 항상 연주된다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었지만, 고용주들의 의지에 따라서 활동해야 한다는 부정적인 측면도 있었습니다.

 

특히 후원자에게 고용된 작곡가는 상당히 규제가 심한 삶을 살았습니다. 잠시라도 여행을 가고자 한다면 반드시 고용주의 허락을 받아야 했으며, 다른 곳으로 이직을 하기 위해서도 허락을 받아야 했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당시에 작성된 기록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후원자들에게 고용되어 음악가로서 경쟁력 있는 삶을 살 수 있던 이 시대 음악가들은 고용되기 위해 어려운 시험을 치르기도 하고 희사금을 내거나 전임자의 딸과 결혼해야한다는 조건 등에 응해야만 했습니다.

 

궁정 뿐만 아니라 교회에서도 음악을 필요로 하였습니다. 따라서 바로크 시대의 많은 교회들이 예배를 이끄는 오르간과 합창단 이외에도 오케스트라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비록 바로스 시대에 등장하기 시작했던 공공음악회라는 체제를 통해 또는 음악 인쇄기술의 발달로 생긴 악보유통을 통해 귀족이 아닌 일반인들이 음악이라는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기회가 열렸지만, 실상 당시에는 교회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유일한 장소였습니다. 아직까지는 대중을 위한 연주회가 많지 않았고, 있었다 하더라도 관람할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가 없거나, 살고 있는 지역이 궁정이나 도시와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에 보통의 사람들은 교회가 연주하는 음악 이외에는 접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따라서 교회의 음악 감독은 끊임없이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야 했고, 교회학교에서는 소년 합창을 지도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교회의 정규적인 의무 이외에 결혼이나 장례와 같은 행사에도 음악을 제공해야 했습니다. 

 

시 당국도 교회와 대학, 귀빈 접대, 기념 행사 등에서 음악을 담당하는 음악가들을 고용하고 연주회를 후원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고용된 도시의 악사들은 아마추어들과 함께 음악 클럽이나 아카데미, 가정, 찻집, 술집 등에서 연주하였습니다. 바로크 시대의 후기 작곡가로서 당대 최대의 명성을 누렸던 게오르그 필립 텔레만은 라이프치히와 프랑크푸르트, 함부르크와 같은 도시에서 대학생 동아리로 구성된  콜레기움 무지쿰(collegium musicum)을 지도했고, 그들과 함께 공개 연주회를 정기적으로 열었습니다. 이 연주회에서는 당시 유행했던 모든 장르의 음악들이 연주되었고, 종교음악과 세속음악의 구분 없이 자유롭게 편성되었습니다. 게오르그 필립 텔레만은 가정연주회도 주선하였을 뿐만 아니라 여흥과 유희용 음악이었던 식탁음악(Tafelmusik)과 아마추어들을 위한 음악을 작곡하는 등 음악의 대중화를 위해 노력한 사람입니다.

 

출처 : 서양음악사의 시민혁명이 소리를 내다 : 책&생각 : 문화 : 뉴스 : 한겨레 (hani.co.kr)/1740년대 예나대학의 콜레기움 무지쿰이 연주하는 야외 음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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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궁정과 교회, 시 당국 등이 바로크 시대에 활동했던 음악가들을 정규적으로 고용함으로써 어떠한 후원 체계를 형성하게 되었지만, 그들의 활동을 포괄적으로 보면, 점점 부를 쌓게 되는 중산층이 또 하나의 중요한 후원계급으로 등장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로크시대의 음악가들은 입장권을 사서 들어오는 대중들에게 열린 오페라 극장을 위해 작품을 쓰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18세기 전반기에 베네치아에서는 다수의 오페라 극장이 있었으며, 베네치아의 시민들은 매해 10개 이상의 새로운 오페라를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영국의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 또한 1728년에는 자신의 오페라단을 만들어 지휘자와 경영인, 흥행사 등의 여러 기능을 수행함으로써 자유음악인(freelancer)의 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공공음악회나 아카데미, 가정 연주회들을 비롯해 도시민의 생활 주변에서 음악을 쉽게 향유할 수 있는 현장이 점점 늘어났으며, 그 음악을 공급하던 사람이 바로 바로크 시대에 활동하던 작곡가들이었으며, 그들에게 중요한 업무였습니다. 또한 그들은 건반악기나 류트 등 일반인들이 연주할 수 있는 작품들을 썼고, 악보인쇄를 통한 수입의 가능성도 열기 시작했습니다.


바로크 시대에는 어떻게 작곡가가 탄생되었고 교육을 받았을까요? 바로크 시대의 음악가들은 음악가 집안의 혈통에서 나오는 경우가 대다수였고, 대부분 음악적인 교육을 아버지나 친척으로부터 받았습니다. 교육 방식은 도제 방식이 가장 흔했습니다. 대부분 많은 아이들이 교회의 합창단 또는 음악 학교에 입학하거나 고아원에서 성장하면서 전문 음악인으로 성장하기 위한 교육을 받았습니다. 안토니오 비발디가 일생동안 일했던 베네치아의 피에타 오스페달레(Pieta Ospedale)는 고아나 사생아들을 보호하기 위해 설립된 일종의 종교기관이었습니다. 이 곳은 정식음악원은 아니었지만 그게 가능할 수 있을 정도로 음악교육의 수준이 높았습니다. 안토니오 비발디는 이곳에서 지휘자와 작곡가, 교사, 음악감독을 하였고, 이 곳에서 교육을 받은 젊은 음악인들이 교회나 도시의 음악회에서 연주하기도 하였습니다. 

 

바로크 시대에는 음악 교육을 담당했던 음악 협회나 대학도 점차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르네상스 시대에 이미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는 시와 음악을 장려하기 위한 아카데미들이 설립되었는데, 특히 파리와 피렌체, 베네치아, 볼로냐 등의 지역에 있는 아카데미들이 유명합니다. 


<르네상스 음악과 바로크 음악의 비교>

  르네상스시대 음악
15세기 ~ 16세기
바로크시대 음악
17세기 ~ 18세기 전반
선율 일반적으로 순차적
노래스러움
순차적, 도약, 잦은 장식
동형진행사용
리듬 일정한 리듬의 흐름
박자형태는 종교음악에서 무시됨
세속음악에서 강조됨
레치타티보에는 자유리듬
많은 다른 작품에서 일정하고 몰아가는 리듬
뚜렷한 박자관념
화성 12개의 교회선법에 의거
세심한 불협화음 처리
장단조에 기초
불협화음의 더 많은 사용
짜임새 대위법, 주로 4성부이상에서 모방
약간의 화성적 짜임새
모노디양식 이후 화성적 짜임새
대위법, 주로 모방
기악 성악음악에 다 중요
음색 기보된 음악은 주로 성악곡
약간의기악곡도 있음
작은 합창단
작은 기악 앙상블
이전보다 기악음악이 더 중요
작은 합창단, 현 관 계속저음을 위한 관현악단
기악 성악곡에서 독주자 중요
주요형식 모방양식들
유절형식노래와 찬미가
2부분, 3부분, 리토르넬로, 푸가
다악장형식의 작품 발전
주요장르 미사, 모테트, 세속노래, 춤곡, 리체르카레같은 기악곡 오페라, 칸타타, 오라토리오, 소나타, 협주곡, 푸가, 춤모음곡, 미사, 모테트-종종 기악반주를 가짐

출처 : 새 들으며 배우는 서양음악사. 허영한 외 6명 공저. 심설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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