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음악사

새로운 양식의 조성음악 8/8(2023.03.15)

작은대학교 2023. 3. 15.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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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작은대학교입니다.

 

오늘은 20세기 조성음악의 마지막 시간입니다. 지난 시간에는 여러 유명 작곡가들을 통해 민족주의와 신자유주의 음악양식을 알아보았는데, 오늘은 이들 외에 활동했던 유명 작곡가들을 알아보고 다음으로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5. 그 밖의 작곡가들

 

1) 프랑스

 

① 모리스 라벨

 

출처 : 모리스 라벨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모리스 라벨

클로드 드뷔시와 동시대를 살았던 모리스 라벨(Maurice Ravel, 1875년 ~ 1937년)은 프랑스 사람으로 많은 부분을 클로드 드뷔시와 공유했고, 작곡상의 재료 또한 유사한 점이 많았습니다. 특히 작곡하는 과정에서 두 작곡가 모두 장단음계보다는 선법이나 온음음계를 사용했습니다. 일반인들이 피상적으로 들어도 금세 느낄 수 있는 클로드 드뷔시와 모리스 라벨의 음향적 유사성, 흔히 우리가 인상주의 음향이라고 말하는 독특한 소리의 울림은 당시에도 커다란 논란을 불러일으키곤 했습니다. 그가 클로드 드뷔시의 영향을 얼마나 받았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이런 음향을 처음 사용했던 작곡가는 클로드 드뷔시이기 때문에 모리스 라벨은 그보다 10살이 어리다는 이유로 한때 표절 작곡가로 몰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면 모리스 라벨은 클로드 드뷔시와 정 반대 입장에 있습니다. 모리스 라벨은 클로드 드뷔시가 회피해왔던 형식구조를 명확하게 표현했을 뿐만 아니라 모든 면에서 분명하고 명료한 것들을 추구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그의 작품들은 서양음악의 역사 속에서 독특한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의 작품은 인상주의의 음향과 신고전주의 정신을 두 개의 축으로 하고 있습니다. 가령 그의 《소나티네》(1905년)는 고전주의 형식에 정확하게 들어맞지만, 선율과 화성은 장단음계 체제와는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작곡가로서 그의 업적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오케스트라를 다루는 솜씨가 뛰어나 자기 자신의 작품 속에서 큰 효과를 보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작품이 오케스트레이션의 발달사에 크게 공헌했다는 점입니다. 대표적으로 유명한 춤음악 《볼레로》(Bolero, 1928년)에서 시종일관 반복되는 선율과 볼레로 리듬에 음색이 계속 변화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의 오케스트레이션 솜씨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또한 그는 당시 오케스트레이션의 대가로 불리던 림스키-코르사코프로부터 배울 점을 찾기 위해 그가 편곡했던 모데스트 무소로크스키의 《전람회의 그림》(Pictures at an Exhibition)을 다시 한 번 편곡했는데, 요즘에는 오히려 모리스 라벨의 편곡으로 더 자주 연주되고 있습니다. 둘째로는 예술가곡의 대가로서의 모습입니다. 그는 연가곡 《세헤라자데》(Sheherazade, 1897년), 《스테판 말라르메의 세 편의 시》 등을 작곡했는데 이 작품들은 프랑스 가곡 역사에 길이 남게 된 작품이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는 자기 자신이 피아니스트로서 연주활동을 한 만큼 피아노라는 악기의 기법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이 점을 잘 활용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Pavane pour une infante defunte, 1899년), 《물의 희롱》(Jeux d' eau, 1901년) 《소나티네》 등과 같은 작품은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의 피아노 음악 문헌 중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특히 두 개의 피아노협주곡은 성숙기의 작품에 나타나는 면모들을 아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② 프랑스 6인조

출처 : [제니의 음악이야기 2탄] 신고전주의 프랑스 6인조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프랑스 6인조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에 장 콕토(Jean Cocteau, 1889년 ~ 1963년)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구름, 파도, 수족관, 물의 요정, 밤의 향기를 이제 집어치우자.

우리는 지상에 뿌리하고 있는 일상의 음악을 필요로 한다.(중략)

청중들에게 분명한 의식을 허락하는, 개인과는 상관없는 객관적 예술이 필요하다."

 

장 콕토의 『수탉과 어릿광대』(Le Coq et I'Arlequin, 1918년)라는 책이 1920년대에 들어서면서 널리 읽혀지기 시작하자, 이 영향을 받은 일군의 작곡가들이 이른바 '프랑스 6인조'를 탄생시키게 되었습니다. 본래 이 '6인조(Les six)'라는 말은 앙리 꼴레가 한 잡지에 쓴 "러시아 5인조, 프랑스 6인조와 사티"라는 글로부터 유래되었습니다. 그래서 프랑스 6인조라는 것은 러시아 5인조와 마찬가지로 프랑스 동년배 작곡가 6명을 가리켜 하는 말입니다. 이 '프랑스 6인조'는 에릭 사티(Erik Satie, 1866년 ~ 1925년)의 영향을 받은 여섯 명의 작곡가, 즉 아르튀르 오네게르(Arthur Honegger, 1892년 ~ 1955년), 다리우스 미요(Darius Milhaud, 1892년 ~ 1974년), 프랑시스 풀랑(Francis Poulenc, 1899년 ~ 1963년), 조르주 오릭(Georges Auric, 1899년 ~ 1983), 루이스 뒤레(Louis Durey, 1888년 ~ 1979년), 그리고 유일한 여성 작곡가인 제르맹 타유페르(Germaine Taillegerre, 1892년 ~ 1983년)를 말합니다.

 

프랑스 6인조 작곡가들은 리하르트 바그너로 대표되는 후기낭만주의 음악과 클로드 드뷔시로 대표되는 인상주의 음악이 한결 같이 솔직하지 않고 냉철하지 못하며, 재치와 현대적인 감각도 결여되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에릭 사티를 귀감으로 삼게 되었는데, 에릭 사티는 제1차 세계대전의 참상과 낭만주의의 쇠퇴를 재치와 풍자를 활용해 역설적인 표현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렇게 그의 음악에 담겨있는 재치와 풍자는 인상주의 음악의 애매모호함과 낭만주의 음악의 과장된 표현 두 가지 모두를 해소하기 위해 사용했던 방법으로 보여지고 있습니다.

 

프랑스 6인조 작곡가들은 청중들이 가볍게 즐길 수 있도록 명료하고 산뜻한 짜임새를 가지고 있는 작품을 만들고자 노력했습니다. 그들 중 일부는 과거에 유명했던 작품들에 새로운 불협화음적인 요소를 첨가해 재치 있는 모방을 시도하곤 했습니다. 이들이 사용한 풍자적 작품은 두 가지 기능을 가졌는데, 먼저 구시대의 진부함을 청산하는 기능, 둘째는 새로운 시대에 대한 좌절감과 불만을 표출하는 기능입니다. 이들의 작품은 콕토, 사티, 라디게가 주도했던 잡지 『수탉』(Le Coq)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이들 6인조는 오래가지는 못했지만, 그들 중에 아르튀르 오네게르, 다리우스 미요, 프랑시스 풀랑은 지속적으로 독자적인 음악세계를 구축해 나갔습니다. 특히 프랑시스 풀랑은 협주곡 가운데 대중노래가 나타나기도 하고, 바로크적 성격의 기념비적 종교음악 작품 속에 후기 구노풍의 소품이 끼어들기도 하는 부조화를 좋아했습니다.

 

2) 러시아

 

출처 :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세르게이 프로코피에프

신고전주의를 말하면 빼놓을 수 없는 작곡가가 바로 세르게이 프로코피에프입니다. 그는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와 마찬가지로 러시아인이며 림스키-코르사코프에게 작곡을 배웠습니다. 그의 대표작이면서 또 신고전주의의 전형적인 작품인 《고전교향곡》(Classical Symphony), 《3개의 오렌지에 대한 사랑》(The Love for Three Oranges), 《로미오와 줄리엣》(Romeo and Juliet), 《피터와 늑대》(Peter and the wolf) 등은 모두 조성을 가지고 있으며, 주제를 발전시키는 방법을 고전주의 기법으로 진행시켰습니다.

 

1930년대 이후 러시아의 예술가들은 스탈린의 예술정책에 부응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에 세르게이 프로코피에프와 디미트리 쇼스타코비치(Dmitry Shostakovich, 1906년 ~ 1975년) 등은 서유럽의 작곡가들과는 다르게 진취적인 태도를 보일 수 없었습니다. 즉, 소수의 청중만을 위한 '난해한'음악은 사회주의 이념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것이었으므로 작곡가들은 음악양식을 이런 노선에 어느 정도 맞추어야만 했습니다. 따라서 무조성 음악은 환경으로 인해 작곡하기가 어려웠으며, 교향곡이나 협주곡, 소나타 등과 같은 순수한 음악형식을 갖춘 작품을 만드는 것조차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새로운 양식의 조성음악 요약

 

20세기 초반의 작곡가들 중에는 조성을 완전히 져버리지 않으면서도 기존의 음악과는 다른 '새로운 양식의 조성음악'을 추구하는 작곡가가 많았습니다. 이들은 장단 음계 이외의 다양한 선법을 채택해 작곡을 했으며, 3화음 중심의 기능적 화성진행을 지양함으로써 청중에게 신선하게 들릴 수 있는 음악을 작곡했습니다. 또한 자신이 살던 민요선율을 사용해 작곡한다던지, 서양의 전통적인 리듬체계에 변형을 가하기도 했습니다. 대표적으로 러시아 출신의 작곡가인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헝가리 출신의 작곡가 벨라 바르톡 등이 있습니다. 이 밖에도 독일의 파울 힌데미트, 프랑스의 모리스 라벨, 러시아의 세르게이 프로코피에프 등이 '새로운 조성음악'을 작곡했던 대표적인 인물로 꼽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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