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음악사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음악 2/(2023.03.20)

작은대학교 2023. 3. 20.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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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작은대학교입니다.

 

오늘은 지난 시간에 이어 총렬음악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지난 시간은 올리비에 메시앙의 작품과 제자들을 기반으로 총렬음악의 기반이 다져진 것을 확인했다면, 오늘은 그의 자제였던 불레즈와 슈톡하우젠의 일생과 함께 총렬음악이 어떻게 더 발전했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2. 불레즈와 슈톡하우젠의 총렬음악

 

출처 : 피에르 불레즈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피에르 불레즈

 

피에르 불레즈는 올리비에 메시앙과 르네 라이보비츠(Rene Leibowitz, 1913년 ~ 1972년)에게 작곡 수업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1951년 발표한 《폴리포니 Ⅹ》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1952년에는 카를하인츠 슈톡하우젠, 루이지 노노(Luigi Nono, 1924년 ~ 1990년) 등과 함께 다름슈타트에서 총렬주의 음악을 이끌었고, 그곳에서 그는 《플루트와 피아노를 위한 소나티네》, 《현악사중주》와 같은 1950년 이전의 작품들에서 느낀 음렬음악의 경험과 올리비에 메시앙의  <음가와 강세의 모드>에서 자극을 받아 총렬음악을 구체화시키게 되었습니다. 음악을 구성하는 모든 매개변수에 순열적 사고를 결합한 작품은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구조 Ⅰ》(Structures pour deux pianos, premier livre, 1942년)입니다. 그는 이 작품을 통해 안톤 베베른의 음렬기법과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의 비박절적인 리듬구조를 결합시키고자 시도했고, 그 결과 총렬주의의 전형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이 되었습니다.

 

https://youtu.be/FIo15gWMheA

출처 : youtube/피에르 불레즈 《구조 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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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르 불레즈
1925년 3월 26일 프랑스 르와르(Loire)의 작은 농촌에서 출생
1932년 몽브리종 신학교 다님(신학교 합창단에서 노래, 죠스캥, 바흐, 랏수스 등의 음악을 접함)
1941년 파리의 이공계학교에 입학
1943년 파리음악원 작곡과에 입학(메시앙을 만남)
1944년 올리비에 메시앙의 개인주택에서 음악분석과 작곡 과외교습을 받음
1945년 음렬음악 추종자 르네 라이보비츠를 만남
1950년 음렬기법에 의한 《피아노소타나 제2번》으로 명성 얻음
1952년 구체음악 《두 개의 에튀드》와 총렬음악을 대변하는 《구조 Ⅰ》을 발표
1953년 ~ 1955년 총렬기법을 벗어난 《주인 없는 망치》 작곡
1950년대 후반 《피아노소나타 제3번》과 같은 알레아음악 작곡
1960년대 후반 공간적 음향을 고려한 악기들의 무대배치에 관심

엄격히 통제된 그의 총렬주의 경향은 이 작품 이후에 지속적으로 변화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는 존 케이지(John Cage, 1912년 ~ 1992년)를 통해 접할 수 있었던 우연성, 성악음악의 한계를 넘는 텍스트 작곡, 그리고 전자적 수단을 통한 공간적 음향 구성과 총렬적 사고를 결합해 새로운 방향을 제시할 수 있었습니다.

 

카를하인츠 슈톡하우젠은 고유번호를 부여해 총렬음악을 창작했던 피에르 불레즈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총렬음악 창작을 보여주었던 작곡가입니다. 그의 총렬적 사고가 처음으로 작품에 녹아든 작품은 《교차연주》(Kreuzspiel, 1951년)입니다. 이 작품에서 그는 한 음이 울린 다음 음이 연주될 때까지의 시차로 기본 리듬열을 구성했고, 음렬과의 관계를 벗어난 변형 리듬열을 형성했습니다. 그는 피에르 불레즈의 방법에서의 차이 뿐만 아니라, 제2 비엔나악파의 음렬음악에 기인한 점묘적 수법을 넘어 몇 개의 음들, 리듬들을 묶은 그룹에 열의 개념을 적용해 '그룹작곡'으로 확장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확장된 열의 개념은 《대위점들》(Kontrapunkte, 1952년 ~ 1953년)과 《시간의 속도》(Zeitmasse, 1956년)의 템포에 적용되어 나타났습니다. 음렬을 구성하는 하나 하나의 음과 같이 어느 일정 부분들의 속도를 결정하는 매트로놈 숫자에 순열적 사고를 확대 적용한 것이 그룹작곡의 시작입니다. 그룹으로 확대 적용된 카를하인츠 슈톡하우젠의 총렬적 사고는 3명의 지휘자가 U자형으로 배치된 세 개의 관현악단을 지휘하는 《그룹들》(Gruppen, 1955년 ~ 1957년)과 네 개의 관현악단과 네 개의 합창단을 위한 《네모》(Carre, 1959년 ~ 1960년)와 같은 대형화된 작품에서 그 진면목을 볼 수 있습니다.

 

https://youtu.be/tImv2Oxls58

출처 : youtube/카를하인츠 슈톡하우젠 《교차연주》(Kreuzspiel, 1951년)

 

출처 :&nbsp;카를하인츠 슈토크하우젠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카하인츠 슈톡하우젠
1928년 8월 22일 독일 쾰른 근교에서 출생
1941년 고아원에서 학교를 다님
1947년 쾰른 음대에 입학
1950년 마르탱(F. Martin)에게서 처음 작곡 수업을 받음
1951년 《교차연주》가 '다름슈타트 하계 음악제'에서 초연 됨
1953년 북서독일 방송국 전자음악 스튜디오에 근무, 《습작 Ⅰ & Ⅱ》 발표
1954년 케이지와 교류를 시작, 음악과 공간에 대해 관심가짐
1958년 이후 《피아노소품 ⅩⅠ》을 비롯한 알레아 음악 작곡
1961년 해프닝 작품이라 할 수 있는 무대극 《원작》(Originale)을 발표
1963년 쾰른의 전자음악 스튜디오 소장으로 부임
1966년 ~ 1967년 《국가》(Hymen),  콜라쥬 음악인 《텔레뮤직》(Telemusik)을 작곡
1970년 《만트라》(Mantra)로 자신의 새로운 '음형작곡'(Formel Komposition) 기법을 구체화 함
1977년 ~ 2003년 오페라 《빛》 시리즈 작곡
2007년 12월 5일 사망

▶출처 : 새 들으며 배우는 서양음악사. 허영한 외 6명 공저. 심설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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