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음악사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음악 1/(2023.03.17)

작은대학교 2023. 3. 17. 18:00
반응형

안녕하세요. 작은대학교입니다.

 

오늘부터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유행하기 시작한 음악 장르를 알아보고자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시기가 그 어떤 음악들보다 더 복잡하고 어렵게 다가와서 아직도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 좀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공부한다는 마인드로 정리를 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최대한 짧고 이해하기 쉬울 수 있도록 풀어보기로 하겠습니다. 그럼 오늘의 내용은 총렬음악으로 시작해보도록 하겠습니다.


ⅩⅩⅥ.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음악

 

제2차 세계대전은 유럽 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크나큰 영향을 준 전쟁이었습니다. 음악사로 국한시켜 본다 하더라도 이 전쟁으로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 쉽게 알 수 있을 정도입니다. 20세기 전반까지 음악사의 내용이 유럽을 중심으로 했던 역사였다면, 1945년에 전쟁이 끝난 이후부터 시작된 20세기 후반 음악사에서는 유럽뿐만 아니라 미국도 큰 위상을 차지하게 된 것이 대표적입니다.

 

유럽의 각국에서는 종전 이후에 활발한 문화재건 사업을 시작했는데 이중에서도 특히 독일은 패망 후 문화 회생의 일환으로 '신음악을 위한 다름슈타트 국제하계강좌'(Die Internationalen Ferienkurse fur Neue Musik)를 개최한 것이 중심이 되었습니다. 이 강좌에서는 20세기 후반 음악 발달의 중심이 되었고, 아놀드 쇤베르크를 비롯한 제2 비엔나악파의 음렬음악 재수용을 넘어,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의 새로운 예술음악을 소개하고 논하는 자리가 되었습니다.

 

출처 : 다름슈타트 여름 코스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칼하인츠 슈톡하우젠의 강의(1957년)

 

1933년 독일에 나치정권이 들어서면서 많은 예술가들은 자유를 상징하는 미국으로 망명하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유럽에서 이주한 많은 예술가들로 인해 미국은 문화 강대국으로 급부상하게 되었으며, 20세기 음악의 중심에 서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미국으로 망명한 작곡가들과 많은 예술가들은 '대학'이라는 새로운 음악 후원 시스템 속에서 그들의 음악어법을 강의하게 되었고, 이를 통해 미국의 현대음악은 새로운 흐름을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유럽과 동시성을 띠게 되었습니다. 또한 다문화 사회였던 미국에서의 아방가르드 예술관(특히 뉴욕을 중심으로 했던)은 역으로 유럽에 의미있는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했습니다.

 

20세기 후반의 음악을 대변하는 예술사조와 음악어법들을 1970년 전후로 나누어 본다면, 1970년 이전의 음악은 총렬주의(total serialism), 우연성음악(chance music), 구체음악(musique concrete), 전자음악(elektronische Musik), 음색작곡(Klangkomposition), 그리고 미니멀음악(minimal music) 정도로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1970년 이후의 음악적 상황은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이라는 용어로 묶어 설명할 수 있습니다. 20세기 후반의 이러한 경향들은 연대적으로 생성되거나 소멸되어진 것들이 아니라 동시적이며 지속성을 가지고 진행되었습니다.

 

1. 음렬음악과 총렬음악

 

다름슈타트를 중심으로 유럽, 특히 독일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이전의 아방가르드 음악이 부활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음렬음악, 특히 안톤 베베른 음렬음악에 대한 새로운 관심에서부터 한 걸음 더 나아가 열(列)의 개념을 모든 매개변수(음악의 요소)에 적용하고자 하는 총렬음악이 새롭게 등장하였습니다. 반면 이 시기의 미국은 음렬음악의 관심이 형성되던 시기였습니다. 

 

1) 메시앙과 총렬주의의 태동

 

출처 : 올리비에 메시앙(1908 - 1992) : 네이버 포스트 (naver.com)/올리비에 메시앙

반응형

작곡가로서 뿐만 아니라 교육자로서도 20세기의 후반 음악 발전에 큰 영향을 미친 올리비에 메시앙(Olivier Messiaen, 1908년 ~ 1992년)은 1940년대 리듬에 대한 다양한 사고를 《세상의 종말을 위한 4중주》(Quatuor pour la fin dy temps, 1940년)와 《아기 예수를 바라보는 20개의 시선》(Vingt regards sur l' Enfant Jesus, 1944년) 그리고 이론서 『나의 음악어법』(Technique de mon langage musical, 1944년)에서 제시했습니다. 그는 나치수용소에서 작곡한 《세상의 종말을 위한 4중주》에서 인도리듬의 원리를 14세기 동형리듬과 접목시키기도 했고, 새가 지저귀는 소리를 채보해 활용하기도 했습니다. 《튀랑갈릴라 교향곡》(Turangalila, 1946년 ~ 1948년)에서는 리듬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 뿐만 아니라 옹드 마르트노(Ondes Martenot)라는 전자악기를 사용하면서 새로운 음색을 추구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출처 : 옹드 마르트노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옹드 마르트노

 

그가 1950년에 완성한 《4개의 리듬연습》(Quatre etudes de Rythme) 가운데 네 번째 곡인 <음가와 강세를 위한 모드>(Mode de valeurs et d' intensites)는 리듬의 다양성을 형성하는 리듬론에 기초해 짧은 음가를 첨가하거나 삭제해 '음가의 반음계'를 구체화시킨 작품입니다. 이것은 음을 반음단위로 해 열의 법칙을 적용할 수 있게된 것과 같이 리듬을 최소 단위로 쪼개 활용할 수 있는 기초를 마련한 것이기도 합니다. 올리비에 메시앙의 이런 음악적 아이디어는 그의 제자인 피에르 불레즈(Pierre Boulez, 1925년 ~ 2016년)와 칼하인츠 슈톡하우젠(Karlheinz Stockhausen, 1928년 ~ 2007년)에게 계승되었고, 이를 통해 총렬주의 기법의 토대가 마련되었습니다.

 

https://youtu.be/S3xEnDpM1mU

출처 : youtube/피에르 불레즈 <음가와 강세를 위한 모드>(Mode de valeurs et d' intensites)
올리비에 메시앙
1908년 아비뇽에서 출생
1918년 화성악 선생이었던 기봉(Jehan de Gibon)이 건네준 클로드 드뷔시의 《펠레아스와 멜리상드》 악보를 계기로 작곡가 되기를 결심
1919년 파리 콘서바토리에 입학
1936년 젊은 4인조 그룹 결성(D. Lesur, Y. Baudrier,  A. Jolivet)
1940년 포로 수용소에서 《세상의 종말을 위한 4중주》 작곡
1942년 파리 콘서바토리 화성학 교수로 임명
1943년 ~ 1947년 피에르 불레즈를 포함한 젊은 작곡가들에게 개인지도
1918년 ~ 1944년 신앙의 내용을 담은 작품들 창작 시기
1950년 ~ 1953년 다름슈타트 강좌에서 강의
1953년 ~ 1958년 《새들의 기상》(Reveil des Oiseaux)을 시작으로 새들의 노래를 자료로 한 일련의 작품들 창작
1971년 에라스무스 상 수상
1992년 파리에서 사망

▶출처 : 새 들으며 배우는 서양음악사. 허영한 외 6명 공저. 심설당.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