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음악사

초기 르네상스 음악 4/4(2022.06.11)-부르고뉴의 작곡가들

작은대학교 2022. 6. 1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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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작은대학교입니다.

 

오늘은 지난 시간에 이어 초기 르네상스의 음악에 대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부르고뉴의 음악을 알아볼 예정인데, 부르고뉴는 프랑스의 남부지역에 위치한 곳으로, 이 당시 이 지역의 작곡가들을 부르고뉴 악파라고 지칭하기도 하였습니다. 특히 부르고뉴 악파 중에서도 뛰어난 작곡가 두 명이 있는데, 바로 기욤 두파이와 질르 뱅슈와입니다. 오늘은 그들이 작곡한 양식들이 어떤 것들인지 알아보겠습니다.


4. 부르고뉴 작곡가

 

앞서 알아보았듯이, 프랑스의 실질적인 권력을 가지고 있었던 부르고뉴의 공작들은 15세기에 활동하던 유럽의 예술가들에게 최고의 후원자였습니다. 존 던스터블 이후에 활동했던 작곡가 중 뛰어난 작곡가 두 명이 바로 이 부르고뉴 지역에서 태어났으며, 그들의 생애는 부르고뉴의 궁정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이 두 작곡가는 바로 기욤 두파이(Guillaume Du Fay, 1397년 ~ 1474년)와 질르 뱅슈와(Gilles Binchois, 1400년 경 ~ 1460년)인데, 이들은 1430년부터 1470년까지 유행했던 유럽의 거의 모든 음악 장르를 양식적으로 정착을 시켰으며, 이들의 작품들만 보아도 그 시대의 흐름을 알 수 있을 정도로 당대의 대표적인 작곡가였습니다. 동시대에 활동했던 시인 마르탱 르 프랑크(Martin le Franc)의 시 중에서도 기욤 두파이와 질르 뱅슈와의 음악양식이 영국에서부터 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은(두파이, 뱅슈와) 생기 있는 아름다운 화음을

만들어 내는 새로운 방법을 알고 있네

조용한 음악에서나 장대한 음악에서나

장식하기도 하고 쉬기도 하고 변화를 주면서.

그들은 던스터블의 뒤를 이어

영국 방식을 따르니

경이로운 만족감이 그들의 음악을

아름답고 환희에 차게 하여라.

 

기욤 두파이와 질르 뱅슈와는 존 던스터블의 음악에서 잘 나타난 영국음악의 특징인 3화음적인 울림을 프랑스 특유의 섬세함과 조화를 이루게 만듦으로써 새로운 대륙의 음악 양식을 정착시킨 작곡가들입니다. 질르 뱅슈와는 주로 세속음악에 두각을 보인 반면, 기욤 두파이는 종교음악과 세속음악을 가리지 않고 모든 분야에서 중요한 작품을 남겼던 15세기 최고의 작곡가입니다.

 

출처 : 기욤 뒤파이(Guillaume Dufay, 1397~1474)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기욤 두파이와 질르 뱅슈와

 

1) 기욤 두파이

 

기욤 두파이는 1387년에  부르고뉴 공국의 영토에 속해있던 브뤼셀 근처에서 태어난 것으로 추정되고, 1409년에는 캉브레 대성당의 합창단원으로 활동하였습니다. 1420년 여름에는 이탈리아 중동부에 위치한 도시 페자로(Pesaro)의 말라테스타(Malatesta) 가문의 궁정에 고용되어 활동하였으며, 1426년에 볼로냐를 거쳐 1428년에는 로마에 정착하게 됩니다. 이때부터 1437년까지 잠깐의 공백기간이 존재하긴 하지만, 그래도 로마의 교황청 성가대의 일원으로써 활동하였습니다. 1439년에 캉브레로 돌아온 그는 그곳에서 1452년까지 머물렀으며, 이후에는 현재의 이탈리아와 프랑스 국경 지역인 사브와(Savoie)로 옮겨 1458년까지 활동을 했고, 다시 캉브레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그는 캉브레에서 1474년에 사망할 때 까지 작곡가로서 뿐만 아니라 성직자로서 일하였습니다. 기욤 두파이가 임종 직전에 작성한 유언장에 따르면 자신의 작품인 《마리아 여왕을 환호하라》(Ave Maria Regina)를 자신의 장례식에서 불러달라고 부탁하기도 했습니다. 기욤 두파이의 다음 세대 작곡가인 앙트안느 뷔누와와 요하네스 오케겜은 기욤 두파이의 죽음을 추모하는 작품을 작곡했다고 했지만, 그 악보는 안타깝게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기욤 두파이
1397년 경 브뤼셀 근처에서 태어남
1409년 캉브레 대성당의 합창단 단원
1420 ~ 1426 이탈리아 말라테스타 궁정에 고용
1426 ~ 1427 이탈리아 볼로냐 거주
1428 ~ 1437 로마 교황청 성가대를 중심으로 활동
1439 ~ 1452 캉브레 거주
1452 ~ 1458 사브와 궁정에 고용
1458 ~ 1474 캉브레에서 활동하다 11월 17일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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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정선율 미사곡

어느 시대의 작곡가나 당시 시대의 음악 중 자신의 창작 능력을 가장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하나의 장르를 작곡하게 됩니다. 이 장르를 통해 작곡가들은 새로운 기법이나 미학을 접목하는 등의 실험들을 하게 되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 그 장르가 한 시대의 가장 진보적인 경향을 담아낼 수 있게 됩니다. 쉽게 말해 당시 시대의 중심 장르가 된다는 의미입니다. 진정한 의미의 다성음악이 처음 등장한 12세기부터 14세기까지 그런 중심 장르의 역할을 했던 것은 바로 모테트였습니다. 앞의 내용들을 통해서도 잘 볼 수 있듯이, 당대 유명한 작곡가들이 모테트 작곡을 어떻게 해왔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15세기에 들어서면, 유럽의 작곡가들이 모테트가 아닌 점점 미사곡을 중심 장르로서 선택을 하게 되었고, 마치 경쟁하듯이 미사곡 작곡에 가장 큰 노력을 기울이기 시작하였습니다.

 

미사곡이 이런 중심 장르로서 선택받을 수 있었던 계기는 바로 기욤 두파이입니다. 종교음악인 미사 중 통상문을 따로 모아서 한 명의 작곡가가 통상문 전체를 작곡했던 것은 기욤 드 마쇼가 처음이었지만, 그의  《미사 노트르담》은 모든 악장을 하나의 일관된 음악적 아이디어로 통일시킨 작품이라고는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기욤 두파이가 나온 이후부터는 통상문의 각 부분을 음악적인 요소로 연결시켜 미사곡 전체에 통일감을 줄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했고, 그 방법을 바로 기욤 두파이가 정착시킨 사람이었습니다. 기욤 두파이가 주로 사용한 작곡 방법은 통상문 전체에 정해진 하나의 선율을 테노르 성부에 사용하는 것입니다. 이 때 정해진 하나의 선율을 정선율(cantus firmus)이라고 하는데, 이 정선율을 활용하여 작곡한 미사곡을 '정선율 미사곡'이라고 부릅니다. 정선율 미사곡은 기욤 두파이 이전에 활동했던 레오넬 파워와 같은 영국 출신의 작곡가들이 먼저 시도한 방법이었지만, 이 작곡 방식을 미사곡을 작곡하는 일반적인 방식으로 정착시킨 작곡가는 기욤 두파이입니다. 기욤 두파이가 처음 시도한 방법이 있다면, 바로 단성성가 대신에 세속음악의 선율을 가지고 정선율로 사용했다는 것입니다. 그의 미사곡 중에서 정선율 기법을 사용한 미사는 1450년 이후부터 작곡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다성으로 된 미사곡이 15세기에 들어서 많이 작곡된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고유문을 포함한 미사 전체를 다성으로 노래한 것은 아닙니다. 또한 통상문도 항상 다성음악으로 부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15세기에 단성성가는 아직도 전례음악으로서의 위치를 유지하였지만, 다성으로 된 미사곡들은 큰 규모의 축일과 같은 특별한 일이 있을 때에 불려졌을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다성음악은 점점 더 복잡해져서 특별히 훈련이 된 성가대가 필요했기 때문에 유럽의 모든 지역에서 전례 시 다성음악이 불리기에는 어려움이 있었을 것입니다. 지금도 외국에서는 노래 없이 미사를 진행하기도 하며, 이런 관습들은 중세시대부터 이어져 온 것으로 보입니다..

 

② 15세기 모테트

15세기에 들어오면서 성무일도를 위한 전례음악에 작곡가들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성무일도 중 독서기도와 저녁기도는 음악적으로 중요했기 때문에 이 부분이 다성화되었고, 그중에서도 큰 부분을 차지하는 안티폰과 시편, 그리고 찬미가들이 주로 다성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15세기에는 이런 전례음악들을 포함해 비전례적인 것이여도 라틴어 가사를 가지고 있으면 모테트라고 지칭하였습니다. 그래서 프랑스어나 라틴어로 된 이중 가사를 가지고 있고, 동형리듬 기법이 사용된 테노르 성부를 포함한 14세기의 3성 모테트는 15세기에 들어 완전히 탈바꿈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먼저 가사의 내용이 전례적인 내용이든 아니든 가사가 라틴어로 되었고, 모든 성부가 같은 가사를 부르는 형태였습니다. 음악의 양식면에서는 포부르동의 영향에 의해 각 성부간의 리듬 차이가 많이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단성성가 선율을 차용할 때에도 14세기와 같이 테노르에 위치한 뒤에 상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차용된 선율이 가장 높은 성부인 수페리우스에서 변형된 형태이지만, 그 선율을 알아들을 수 있도록 작곡되었습니다.

 

1420년 이후에도 14세기 동형리듬 모테트가 작곡되긴 했지만, 특별히 정치적인 행사 또는 그 밖의 공적이거나 사적인 행사들을 위해서 작곡된 행사음악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기욤 두파이의 동형리듬 모테트 《이제 장미꽃이 피었네》(Nuper rosarum flores)는 지금 봐도 그 위용이 당당한 돔을 지닌 피렌체 대성당 축성식을 위한 곡이었습니다. 15세기에는 특별히 마리아를 찬양하는 모테트가 많이 작곡되었고, 4개의 마리아 안티폰을 비롯해 찬미가와 마그니피카트는 이 당시 작곡가라면 누구나 몇 개씩 다성음악으로 작곡했을 정도로 유행이었습니다. 연주 방식의 관점에서 보면, 찬미가와 마그니피카트는 가사의 한 행을 단성성가로 불렀으면, 그 다음의 행은 새롭게 작곡된 다성음악으로 부르는 관습이 생겨났고, 이 관습으로 인해 보통 짝수 행만을 다성음악으로 작곡하게 되었습니다. 기욤 두파이 시대의 찬미가와 마그니피카트는 작곡가들이 비교적 단순하게 작곡하는 것들이 일반적이기 때문에 음악사적인 흥미나 예술적 가치면에서는 조금 떨어질 수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 곡들은 르네상스 시대의 전례음악에서 양적인 면에서 아주 큰 부분을 차지하는 중요한 장르이기도 하였습니다.

 

③ 샹송(Chanson, 프랑스어로 노래라는 의미)

샹송은 프랑스어로 다양한 종류의 노래를 의미하며, 현대의 프랑스 대중가요도 이 샹송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떤 노래든 간에 공통적인 것은 바로 프랑스어로 된 가사가 사용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서 지칭하는 샹송이란 중세시대 말과 르네상스 시대의 프랑스어로 된 가사를 사용한 다성노래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보아야 합니다. 이 당시의 샹송은 음악 짜임새로 보았을 때 기욤 드 마쇼의 작품들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았습니다. 즉, 최상성부에는 주선율이 있고, 나머지 두 성부는 최상성부를 받쳐주는 반주처럼 작곡된 3성부의 곡이 대부분입니다.

 

거의 모든 곡들의 가사 내용은 사랑을 주된 소재로 삼고 있고, 세 종류의 정형시 형식(비를레, 발라드, 롱도)이 사용되었지만, 그 중에서도 롱도가 절대적으로 많이 작곡되었습니다. 기욤 두파이는 약 90여 개의 샹송을 작곡하였는데, 그 중에서도 2/3이 롱도로 작곡되었고, 10곡 정도를 제외하면 모두 3성부를 위한 작품입니다. 기욤 두파이의 샹송은 14세기의 샹송보다는 리듬이 단순해졌지만, 리듬의 흐름은 박자라는 말로 표현하기에는 불규칙적인 면이 있습니다.

출처 : [들배 서양음악사] 부르고뉴 악파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두파이, 롱도 《안녕, 나의 사랑이여》의 첫 부분

다음의 곡은 기욤 두파이의 후기에 작곡된 롱도로 추측되고 있는 《안녕,나의 사랑이여》(Adieu m' amour)의 첫 부분입니다. 이 곡을 마디를 그린 후 현대식으로 옮겨놓으면, 붙임줄이 자주 사용될 수 밖에 없고, 박자표로 사용된 2/2박자의 느낌을 가지기에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기욤 두파이는 전 생애에 걸쳐 샹송을 작곡했고, 샹송은 음악적으로 볼 때 그의 종교 음악에 못지 않게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대체로 기욤 두파이가 직접 쓴 것으로 생각되는 가사는 14세기의 작품보다는 문학적인 가치가 많이 떨어집니다. 이 점은 15세기 샹송의 전반적인 경향이었고, 작곡가들은 샹송의 음악적인 내용에만 노력을 기울였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2) 질르 뱅슈와

 

질르 뱅슈와는 기욤 두파이에 비하면 잘 알려지지 않은 작곡가이기도 합니다. 질르 뱅슈와는 1400년 경에 기욤 두파이가 태어났던 캉브레에서 멀지 않은 부르고뉴의 영토, 몽(Mons, 현재는 벨기에)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기욤 두파이처럼 유럽의 중요한 음악의 중심지들을 돌아다니지 않았으며, 부르고뉴 공작이었던 필리프 3세(Philippe Ⅲ le Bon, 재위기간, 1419년 ~ 1467년)의궁정 음악가로서 평생을 살았던 것으로 추측되고 있습니다. 

 

질르 뱅슈와의 작품들은 미사곡과 모테트, 그리고 샹송으로 나눌 수 있고, 이 중에서 그의 음악성을 가장 잘 표현된 장르는 바로 샹송입니다. 질르 뱅슈와의 샹송은 약 60여 개에 이르며, 10곡을 제외하면 모두 롱도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질르 뱅슈와의 샹송은 주션율의 아름다움이 강점이고, 그의 선율은 3도 음정이 주된 구성 요소입니다. 전반적으로 리듬에 있어서는 기욤 두파이보다는 더 단순해 현대식으로 옮겨놓아도 마디를 넘는 붙임줄이 많이 사용되지는 않습니다.


▶ 정선율 : 정해진 하나의 선율

▶ 15세기 모테트 : 라틴어 가사를 가지고 있는 전례음악, 비전례음악

▶ 샹송 : 프랑스어로 다양한 종류의 노래


출처 : 새 들으며 배우는 서양음악사. 허영한 외 6명 공저. 심설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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