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음악사

초기 르네상스 음악 2/4(2022.06.07)-르네상스 음악의 특징

작은대학교 2022. 6. 7. 18:00
반응형

안녕하세요. 작은대학교입니다.

 

지난 시간에는 르네상스의 시대적인 흐름들을 보는 시간을 가져보았습니다. 음악적인 이야기가 아니어도 이런 것이 중요한 이유는 시대적인 상황과 흐름들에 따라 예술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음악의 양식이나 가사, 장르 등에 변화가 일어나게 됩니다. 특히 르네상스는 인본주의의 시작으로 그 점이 음악에는 어떻게 녹아들었을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바로 오늘부터 그 초기의 르네상스의 음악은 어떤 형식들을 취했는지, 어떤 기법들이 사용되었는지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겠습니다.


2. 르네상스 음악의 일반적 특징

 

1) 4성부 다성음악

 

르네상스 시대에 들어서면 이전보다는 기악음악이 점점 중요해지는 시기가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르네상스 시대도 성악 음악이 중심이 되어 작곡 또는 연주되던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르네상스 시대의 대표적인 연주 방식은 '교회에서' 또는 '합창으로' 노래한다는 의미를 지닌 라틴어 '아 카펠라'(A Cappella)였습니다. 지금 현재에도 혼성 4부를 기본으로 하는데, 바로 이 구성이 르네상스 시대부터 내려오는 전통입니다. 물론 지금처럼 여성과 남성이 함께 부르는 혼성의 개념은 아니었고, 여성 대신 소년 합창단이 노래를 부르는 구조였습니다. 

 

중세시대의 다성음악은 기본적으로 3성부의 구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여기서 가장 낮은 음역은 테노르였는데, 이 테노르에 더 낮은 음역을 하나 추가하면서 르네상스 시대의 4성부 짜임새가 만들어졌고, 이 구조가 일반화되게 되었습니다. 일반화된 4성부 구조는 각각의 성부로 구분되어 불려지게 되었는데, 먼저 가장 높은 음역을 수페리우스(superius, 소프라노), 알토에는 콘트라테노르 알투스(contratenor altus), 테노르는(tenor) 기존의 테노르를 유지하고, 가장 낮은 음역을 콘트라테노르 바수스(contratenor bassus)라고 지칭하였습니다. 

 

성부의 수는 1500년 경을 기점으로 점점 증가하여 5성부나 6성부의 다성음악도 등장하였으며, 그 이상의 합창음악들도 작곡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음악이론에서는 항상 4성부를 기준으로 보고, 그 전통을 지금도 지키고 있습니다. 그 전통은 18세기부터 출발했다고 볼 수 있는데, 이는 18세기에 체계화된 화성법 이론에서 4성부를 기준으로 설명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2) 대위법과 모방기법

 

르네상스 시대는 중세시대에 비해 협화음을 중시하는 음악이었습니다. 불협화음은 항상 협화음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고안되었고, 불협화음의 음가는 협화음에 비해서 짧은 경우가 많았습니다. '대위법'(conuterpoint)은 협화음과 불협화음의 사용에 대한 규칙을 정한 음악 이론으로 15세기 초부터 점차 발달되기 시작하였습니다. 르네상스 시대 초기에는 각 성부의 선율보다는 동시에 울릴 때 나는 음정에 좀 더 관심을 가졌기 때문에 초기의 대위법 이론은 협화음정과 불협화음정의 처리를 중요시하였습니다. 이런 흐름이 지속되어지다가 15세기의 말 부터는 동시에 울리는 음정과 함께 각 성부의 선율을 중시하는 경향이 나타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때부터 각 성부의 선율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된 기법이 바로 '모방기법'입니다. 모방기법은 한 성부가 선율을 시작하면, 일정한 간격이나 시간이 지난 후에 다른 성부가 그 전에 연주되었던 선율을 그대로 모방해서 따라 부르는 기법입니다.

 

모방기법이 등장하면서 작곡 방식에는 크나큰 변화들이 생겨나기 시작하였습니다. 중세시대까지는 테노르 성부를 중심으로 하고 그 위로 다른 성부들을 추가하는 형태의 작곡이 이루어졌는데, 이러한 작곡의 결과로 두 성부는 테노르 성부와의 관계는 고려되어 작곡되었지만, 나머지 두 성부간의 음정은 고려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모방기법이 등장하면서부터 성부 추가 방식은 더 이상 불가능해졌으며, 하나의 모방 선율을 중심으로 작곡되기 시작했습니다. 다시 말해 한 성부의 선율이 시작되면 다른 성부에서 차례대로 모방을 시작한 다음 악곡의 한 단락을 마무리하고, 또 다른 선율이 한 성부에서 시작되면 다시 다른 성부에서 이를 모방하게 됩니다. 이런 방식으로 작곡한 단락들이 모여서 하나의 악곡을 이루게 됩니다.

 

반응형

3) 호모포니와 다성음악 짜임새

 

단어의 어원적인 의미와는 상관없이 호모포니(homophony)는 보통 '다성음악'(polyphony)과 대비되는 의미로 사용됩니다. 호모포니적이라는 것은 하나의 선율이 강조되며 다른 성부는 주선율에 화음을 채우는 역할을 하고 있는 음악적인 짜임새를 가진 것을 말합니다. 반면 다성음악적이라는 것은 여러 개의 선율이 각각 서로 다른 성부에서 중요성을 가지고 유지될 경우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다성음악이라는 용어는 중세시대처럼 단순하게 성부가 여러개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이 시기부터는 음악의 짜임새를 표현하는 의미로도 사용되는 말입니다.

 

이 두 용어는 다른 성부에 귀속되지 않는 독립적인 선율이 하나인지, 여럿인지에 따라서 적용이 다르게 됩니다. 또한 선율에는 음정만 있는 것이 아니고 리듬의 흐름 또한 중요한 선율의 요소로 작용하기 때문에 이 용어는 각 성부의 리듬 독자성까지 함께 고려해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다성음악적인 짜임새 속에서 각 성부가 독립적인 선율을 갖기 위해서 각 성부는 독자적인 리듬의 진행을 해야 합니다. 반면 호모포니적 짜임새 속에서는 하나의 주선율을 강조하기 위해 최대한 다른 성부의 리듬 독자성은 포기해야 하고, 주선율의 리듬을 따라가야 합니다. 

 

예를 들면 중세시대의 병행오르가눔이 호모포니적 짜임새의 극단적인 예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 13세기 말에 등장한 모테트는 다성음악적인 짜임새의 좋은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모든 음악이 이 두 가지의 짜임새로만 명확하게 구분되지는 않습니다. 어떤 음악은 한 곡 안에서 두 짜임새를 모두 섞어 사용할 수도 있고, 다른 어떤 음악은 두 짜임새의 중간 형태를 가지기도 합니다. 르네상스 시대의 음악은 초기에 호모포니적인 짜임새가 중시되는 흐름이었지만, 15세기 말부터는 다성음악적 짜임새로 점점 바뀌게 됩니다.

 

4) 가사그리기

 

르네상스 시대와 함께 인문주의가 성행하면서 음악이 시와 수사학의 관점에서 다루어지기 시작하면서 작곡가들은 자연스레 시의 내용을 어떻게 음악에 표현할 수 있을지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하나의 방안으로 가사의 단어 의미를 그림 그리듯이 음악적으로 처리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하늘에서 내려오는'이라는 가사 부분이 있으면, 악보에 높은 음에서 낮은 음으로 내려가는 모습으로 보이도록 선율을 그려 넣는 것입니다. 이러한 방식을  '가사그리기'(word-painting)라고 부르며, 이 방식은 16세기 이탈리아 세속음악이나 모테트에서 자주 볼 수 있습니다.

 

 

가사그리기는 위의 예시처럼 단어의 의미를 직접적인 방식으로 묘사하는 방법이 있기도 하고, 가사의 의미와 분위기를 음악적으로 표현하는 주관적인 표현 방식도 있습니다. 마렌치오의 마드리갈은 16세기 이탈리아 세속음악으로 "홀로 생각에 잠겨"라는 가사의 의미를 표현하기 위해서 가장 높은 성부의 선율을 다른 성부들과 극적으로 대비시켰고, 대비된 선율은 '홀로' 진행하며, 리듬의 움직임 또한 매우 느리게 하여 "생각에 잠겨"있는 모습을 그려놓았습니다. 가사그리기는 작곡가 개인의 매우 사적인, 그리고 개인적 주관이 음악의 표현에 깊이 개입되어 있기 때문에 인문주의의 영향을 받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5) 악보 인쇄술의 발달

 

이탈리아에서는 음악 교육이 인문학의 일부분으로 정착되어 퍼져나갔고, 유럽의 각국들도 점점 음악교육을 '교양 필수'처럼 여기게 되었습니다. 특히 귀족들 뿐만 아니라 상업을 통해 지위를 향상시켰던 중산층들도 음악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음악적인 수요가 확장되면서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출판업자 오타비아노 페트루치(Ottaviano Petrucci)는 활자를 활용해 악보를 찍어내는 악보 인쇄술을 개발하여 이전까지 손으로 그렸던 값비싼 악보들을 대량으로 출판하게 되었습니다. 페트루치가 1501년에 출판한 악보집 『오데카톤』(Odhecaton, 그리스어로 100개라는 의미)은 다성음악을 활자로 인쇄한 최초의 악보로, 그리스어로 제목을 붙여 당시의 유행하던 음악을 보급하였습니다.

 

페트루치의 인쇄 기법은 두 가지의 단계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먼저 오선을 인쇄한 후에 다음 활자로 된 음을 적절한 위치에 나열하고, 오선 위에 다시 그것을 인쇄하는 방식입니다. 페트루치는 스스로가 음 활자를 개발한 것을 자랑스럽게 여겼지만, 이 방식은 음표와 오선을 이중으로 인쇄하는 문제로 비용이 많이 든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후 약 30년이 지난 뒤 프랑스 파리에서 아테냥(Pierre Attaingnant)이 오선과 음표가 함께 새겨진 활자를 발명하게 되었고, 한 번의 인쇄로 악보를 완성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만 악보의 질이 페트루치에 비해서 떨어졌습니다.


▶ 아카펠라 : 르네상스 시대의 대표적인 연주 방식, 교회에서, 합창으로 노래한다는 뜻

▶ 르네상스 시대의 4성부 : 수페리우스, 콘트라테노르 알투스, 테노르, 콘트라테노르 바수스

▶ 호모포니 : 하나의 선율이 강조, 다른 성부는 주선율에 화음을 채우는 역할

▶ 다성음악 : 여러 개의 선율이 각각 서로 다른 성부에서 중요성을 가지고 유지됨


출처 : 새 들으며 배우는 서양음악사. 허영한 외 6명 공저. 심설당.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