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작은대학교입니다.
오늘 소개해드릴 바로크 시대의 두 번째 대가는 바로 장 필립 라모입니다.
3. 장 필립 라모(Jean-Philippe Rameau, 1683년 ~ 1764년)
장 필립 라모는 18세기 프랑스에서 가장 중요한 음악가로 꼽힙니다. 그는 어렸을 때 부터 디종(Dijon)에 있는 교회의 오르간 주자로활동했던 아버지께 음악을 배웠습니다. 그가 젊었을 때에는 여러 도시에서 건반악기주자로 활동하면서 작곡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40세가 될 때까지 작곡가로서 잘 알려지지 않았고, 오히려 이론가로 잘 알려져 있었습니다. 작곡가로서 입지를 다지게 된 것은 그가 50세 이후에 쓴 작품들 때문이었는데, 그 이유는 그가 1731년에 프랑스의 대부호 라 푸플리니에르(La Poupliniere)를 만나 후원을 받기 시작하면서 부터였습니다.
이렇게 엄청난 후원을 받게 된 그는 자신의 저택에 관현악단을 두었고, 오페라 공연과 음악회들을 자주 열어 프랑스에서 가장 좋은 음악적 환경을 제공받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집은 예술에 관심이 많았던 귀족들과 문인, 화가, 음악가 등 각종 예술가들의 모임장소가 되었고, 많은 예술작품들이 파리 시민들에게 소개되기도 전에 그곳에서 초연되기도 하였습니다. 오페라 공연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고, 적절한 대본을 얻게 되면서 장 필립 라모가 쓴 첫 오페라 《이폴리트와 아리시》(Hippolyte et Arici)가 1733년에 그의 저택에서 초연되기도 하였습니다. 이 오페라가 파리에서 공연되고 난 뒤에 시민들의 반응은 극찬과 혹평, 둘 중 하나로 극단적이게 나뉘었는데, 혹평을 받았던 이유는 장 필립 라모가 쟝 밥티스트 륄리의 전통을 벗어난 혁신주의자라고 보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19년이 지난 뒤, 본의 아니게 휘몰렸던 '부퐁논쟁'(Querelle des bouffons)에서 당시 수입되고 유행했던 이탈리아의 오페라를 상대로 한 싸움에서 쟝 필립 라모의 오페라는 쟝 밥티스트 륄리를 계승한 프랑스의 전통주의자로 평가받았습니다. 그는 30여 편의 오페라 뿐만 아니라 60여 편의 건반 음악, 약간의 모테트, 세속 칸타타를 남겼습니다.
장 필립 라모 | |
1683년 | 디종에서 출생 |
1702년 | 아비뇽 성당의 음악감독, 클레르몽 성당으로 이적 |
1706년 | 파리 예수회 대학의 오르간주자, 디종의 노트르담 성당의 오르간 주자 |
1715년 | 클레르몽의 오르간주자 |
1722년 ~ 1726년 | 파리에 정착, 하프시코드 작품집 출간; 『화성론』, 『음악이론의 신체계』 발간 |
1733년 | 첫 오페라 《이폴리트와 아리시》 발표 |
1745년 | 궁정 실내악단의 작곡가 |
1764년 | 파리에서 사망 |
음악이론가로서 라모는 중요한 학술적 저술들을 남겼습니다. 그의 이론은 화성이(음이나 선율 또는 음정에 앞서는) 모든 음악의 근본이라는 믿음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는 화성의 보편적인 원리를 음향학의 법칙에 근거해 설명해주었습니다. 장 필립 라모가 규명했던 음악적 지식들은 동시대 작곡의 실제를 정리한 것이었고, 이 이론은 후세 이론가들의 연구에 명확한 기초가 되주었습니다. 그는 음을 5도씩 쌓아 올려(C-G-D'-A' 등) 온음계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제시했고, 배음열에서 장 3도 화음을 유도해내기도 했습니다. 또한 화음을 3도씩 아래에서 위로 쌓으면서 3화음, 7화음, 9화음으로 확장시킬 수 있다는 점, 한 화음의 원래 가지고 있던 성격은 전위형태에서도 변하지 않는다는 점, 근음진행이 화성 연결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 등을 이론화시켰습니다. 이 외에도 으뜸화음, 딸림화음, 버금딸림화음의 세 화음을 조성의 중심으로 확립시켰고, 이를 중심으로 다른 화음들이 세 가지 화음들과의 관련성을 통해 정체성이 확립된다는 '기능화성'의 관념을 형성시키기도 했습니다. 또한 이것에 의해 하나의 화음이 기능이 바뀌었을 때, 새로운 조성으로 움직인다는, 즉 전조가 이루어진다는 논리를 정립하기도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장 필립 라모는 한 조의 음들은 하나의 '근원이 되는 음'(으뜸음)으로부터 나온 것이라는 개념을 만들었고, 이는 르네 데카르트(Rene Descartes, 1596년 ~ 1650년)의 방법, 즉 "하나의 자명한 원리를 근거로 자연법칙의 체계"를 만드는 방법에 입각해 음과 화성을 하나의 체계로 해석해내는 작업이었습니다. 이 중에서 장 필립 라모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1722년에 출판한 『화성론』(Traite de l'harmonie)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이론들은 당시 그의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상당한 비판을 면치 못하였습니다.
장 필립 라모의 오페라 작품들은 쟝 밥티스트 륄리가 바로크 시대 초기에 완성시킨 프랑스의 서정적 비극(tragedie lyrique) 구성을 따라 만들었습니다. 서정적 비극은 주로 레치타티보로 극을 진행하고, 다양한 노래와 춤의 여흥이 각 막 속에 들어가 있는 짜임새를 가지고 있었는데, 쟝 밥티스트 륄리 이후에 시간이 흐르면서 이 장르는 점점 더 무대 장치의 장대함과 장식적인 요소들이 증가되었던 반면 구성력은 약화되었습니다. 그래서 장 필립 라모는 음악적인 표현력과 구성력을 강화시킨 오페라를 작곡했는데, 레치타티보는 좀 더 선율적이어서 아리아와는 큰 대비가 없었지만, 거기에 반주를 곁들여 감정적인 효과를 가미시켰고, 합창과 춤이 극적인 진행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오페라에서 장 필립 라모의 가장 큰 공헌은 바로 오페라의 기악부분, 즉 서곡과 춤 반주곡, 그리고 무대의 사건을 묘사하는 데 사용되었던 관현악곡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 곡들에서 보여주는 그의 묘사력은 선율진행과 화성처리, 그리고 주제의 전개 등에서 다양하게 독창적으로 나타납니다. 그의 관현악 처리는 천둥소리 효과를 내는 악구처럼 회화적인 특질을 부각시키기도 합니다. 이런 모든 개성적인 요소들은 이론가로서의 장 필립 라모가 작품에 뚜렷하게 반영시킨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장 필립 라모의 첫 서정적 비극인 《이폴리트와 아리시》에 이어, 2년 뒤 새로운 장르의 오페라-발레 《멋진 인도인》(Les Ineds galantes, 1735년)이 발표되었는데, 이것은 거대한 규모의 발레와 장대한 장면의 연결이기 때문에 극적인 요소가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성공을 했던 작품입니다. 이 작품에서는 네 개의 앙트레(entre, 막)가 있는데, 각자 독자적인 줄거리를 가지고 있으며, 각 앙트레는 터키와 페루, 페르시아, 미국 등 지구상의 각기 다른 장소들을 무대로 삼아 이국적인 장소와 사람들을 보고싶어 하는 18세기 초 프랑스의 청중들에게 색다른 공연을 제공해주었습니다. 1737년에는 두 번째 서정적 비극인 《카스토와 폴뤼》(Castor et Pollux)를 초연하게 되었는데, 이 작품을 많은 사람들이 장 필립 라모의 대표작으로 꼽습니다.
네 권의 모음집 형태로 출판되었던(1706년, 1724년, 1728년, 1741년) 장 필립 라모의 클라브생 소품 65곡들은 그가 이 악기에 얼마나 숙달되었는가를 잘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 작품들은 섬세한 짜임새와 활달한 리듬, 우아한 세부처리, 그리고 기교적 실험과 익살스러움이 담겨있는데, 이는 과거의 양식들과 동시대의 양식, 그리고 그 후에 발전되는 양식을 예시하는 거대한 하나의 파노라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장 필립 라모의 기악합주 음악으로 출판되었던 것은 『연주회용 클라브생 작품』(Pieces de clavecin en concerts, 1741년)으로 유일한 기악합주 음악 모음집입니다. 이 모음집은 클라브생을 위한 소나타로 이탈리아 방식의 트리오 소나타가 아닌 점이 특징입니다. 주로 클라브생과 함께 바이올린(혹은 플루트)과 비올이 두 선율성부를 담당하는 트리오 짜임새로 구성되어 있지만, 클라브생은 점점 계속저음의 기능으로부터 벗어나 독립적인 선율악기로서 주제적인 소재를 제시하고 발전시켜 나갑니다.
장 필립 라모는 81세가 되기 몇일 전에 사망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생애 말기에 프랑스 궁정의 총애를 받아 작위를 받았으며, 상당히 부유한 삶을 살았지만, 언제나 엄격하고 말이 없는 비사교적인 인물이었습니다. 장 필립 라모는 그의 오페라 작품들을 통해 바로크 말기에 중요한 공헌을 했지만, 무엇보다 그는 이론가로서의 공헌이 더욱 빛났습니다. 그는 음악을 '과학'으로 바라보면서 보편적인 화성의 법칙들을 자연적인 원인을 토대로 설명했고, 그렇게 풀어낸 이론적인 법칙들을 철저하게 그의 작품 속에 적용시켜 독창적이면서도 앞서가는 표현 양식들을 개발하였습니다. 그가 쓴 이론적인 저서들은 자신의 음악은 물론, 그 후 여러 세대에 걸쳐 적용되었던 화성과 조성의 새로운 개념들을 발전시켰습니다. 다른 작곡가에 비해 늦은 나이에 명성을 얻었지만, 그는 18세기에 가장 창조적이면서도 영향력 있었던 프랑스의 작곡자이자 사상가이기도 했습니다.
▶출처 : 새 들으며 배우는 서양음악사. 허영한 외 6명 공저. 심설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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