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작은대학교입니다.
오늘은 바로크 시대의 대가 중 마지막 대가, 조지 프리데릭 헨델의 생애와 업적에 대해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4. 조지 프리데릭 헨델
바로크 시대 말에 요한 세바스찬 바흐와 쌍벽을 이룰만한 작곡가가 독일에서 태어났습니다. 바로 그는 조지 프리데릭 헨델(George Frideric Handel, 1685년 ~ 1759년)입니다. 그는 요한 세바스찬 바흐와 같은 해에 할레(Halle)에서 태어났고, 소년시절부터 오르간과 하프시코드 주자가 되었으며, 바이올린과 오보에를 배우고 대위법의 기초를 쌓기도 했습니다. 당시 활동하던 작곡가들과 마찬가지로 조지 프리데릭 헨델도 다른 뛰어난 작곡가들의 작품들을 사보하는 방식을 통해 작곡을 배웠습니다. 1703년, 그는 독일에서 상설 오페라단을 소유하고 있는 유일한 도시인 함부르크에서 바이올린과 건반악기 주자로 일했고, 여기서 자신의 첫 오페라인 《알미라》(Almira, 1705년)를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1706년부터 1710년까지 로마와 피렌체, 나폴리, 베네치아 등에서 촉망받는 젊은 작곡가로 인정받기 시작하면서 다양한 음악가와 후원자들과 친분을 쌓았습니다. 1710년 그는 하노버(Hanover) 선거후(선제후라고도 함)의 궁정음악감독으로 임명되었지만, 곧 런던으로 옮겨갔고, 1713년부터는 런던에 정착하여 작곡가이면서 오페라단 경영인으로 경력을 쌓았습니다. 그러다가 조지 프리데릭 헨델은 1726년에 귀화를 하여 영국의 시민이 되었습니다. 그는 40여 편의 오페라를 작곡했고, 20여 편의 오라토리오도 작곡했으며, 그 외에도 건반악기를 위한 음악들과 성악과 기악 앙상블을 위한 작품들을 썼습니다.

조지 프리데릭 헨델 | |
1685년 | 할레에서 2월 23일 출생 |
1694년 | 차코우(Zachow)에게 사사 |
1702년 | 할레대학의 법률전공입학, 칼빈성당의 오르간주자 |
1703년 | 함부르크 오페라악단의 바이올린과 하프시코드주자 |
1705년 | 《알미라》(함부르크) |
1706년 ~ 1709년 | 피렌체, 로마, 베네치아, 스카를라티와 코렐리와 만남 |
1710년 | 하노버 선거후의 음악감독, 런던 첫 방문 |
1711년 | 《리날도》(런던) 하노버에서 공연 |
1712년 | 런던에 정착 |
1717년 | 《수상음악》, 캐논에서 음악감독 |
1718년 | 《아시스의 갈라테아》 |
1719년 | 궁정음악학교의 지휘자, 가수 모집 위해 독일 방문 |
1723년 | 궁정교회의 작곡가 |
1726년 | 영국 귀화 |
1727년 | 조지 2세의 대관식을 위한 앤썸 |
1729년 | 두 번째 궁정음악학교 확립, 가수 모집 위해 이탈리아 방문 |
1733년 | 첫 오르간 협주곡 |
1735년 | 런던에서 사순절(Lent)을 위한 일련의 오라토리오, 《알치나》 |
1737년 | 헨델의 오페라회사 붕괴 |
1739년 | 《사울》, 《이집트의 이스라엘인》, 12개의 《대협주곡》 작품 6 |
1742년 | 《메시아》, 더블린에서 공연 |
1752년 | 《입다》, 시력약화, 2년을 경과하면서 완전히 실명 |
1759년 | 런던에서 4월 13일 사망 |
① 기악작품
조지 프리데릭 헨델이 작곡한 건반악기를 위한 작품들 중에서 대표적인 작품은 하프시코드나 오르간을 위한 협주곡 세 벌(각 6곡씩 모여있음, 1738년, 1740년, 1761년)과 하프시코드를 위한 모음곡집 두 벌(1720년, 1733년)입니다. 이 모음곡들은 통상적인 춤악장은 물론이고, 당시에 사용되던 건반음악의 형식 대부분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 외에 그의 기악작품으로는 독주 소나타와 여러 가지 실내음악 편성에 의한 트리오 소나타 40여 곡이 있습니다. 이 작품들에서 아르칸젤로 코렐리의 영향을 받은 느낌이 확연히 드러나지만, 화려한 화성과 자연스러우면서 유연하게 흘러가는 음악적 흐름은 그 장르들을 다루는 조지 프리데릭 헨델의 뛰어난 역량을 뚜렷하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조지 프리데릭 헨델의 기악 작품들보다 더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은 규모가 큰 관현악을 위한 작품들입니다. 대중적으로 잘 알려져 있는 《왕궁의 불꽃놀이 음악》(Music for Royal Fireworks, 1749년)과 《수상음악》(Water Music, 1717년)이 바로 그런 작품들로, 관현악 작품 모음곡입니다. 《수상음악》은 50명의 연주자를 위한 작품으로 다양한 종류의 춤곡과 팡파르로 구성되어 있으며, 호른과 트럼펫, 플루트 등 관악기들의 효과적인 처리가 인상적인 작품입니다. 이 곡은 세 벌의 모음곡(각각 F, D, G장조)으로 짜여 있고 각각 악기구성이 다르게 되어 있습니다. 조지 프리데릭 헨델의 현을 위한 12개의 《대협주곡》(Grand Concertos 작품 6, 1739년)은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브란덴부르크 협주곡에 비견되는 작품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곡들에서 그는 표준적인 느림-빠름-느림-빠름의 형태에 한 두개의 춤곡을 추가해 확장을 시켰습니다. 1734년에 출판되었던 그의 6개의 《합주협주곡》(작품 3, 1734년)도 기악작품에서 중요한 것으로 꼽힙니다.
② 오페라
조지 프리데릭 헨델은 오늘날까지 거의 오라토리오의 작곡가로, 특히 《메시아》(Messiah)의 작곡자로 널리 알려져 있는 인물입니다. 하지만 그의 경력을 보았을 때, 오라토리오보다는 오페라에서 그의 기량을 볼 수 있습니다. 그는 36년이라는 시간동안(1705년 ~ 1741년) 오페라를 작곡했고, 이 작품들을 지휘하는 일에 몰두하였습니다. 그가 작곡한 오페라 작품 40여 개 중 대표적인 것은 《줄리오 체자레》(Giulio Cesare), 《로델린다》(Rodelinda), 《타메르라노》(Tamerlano) 입니다. 그의 오페라 작품들은 그가 생전했을 때 런던에서 뿐만 아니라 독일, 이탈리아에서도 상당히 자주 상연되곤 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사망 몇 년 전인 1755년 이후부터 그의 오페라에 새로운 관심이 시작된 1920년까지는 그의 오페라가 공연된 기록은 없습니다.
그의 오페라에서 그는 당시 흔하게 통용되던 역사적, 신화적, 낭만적인 소재들을 작품에 사용하였습니다. 또한 마술이나 신기한 모험, 고대 영웅의 생애, 초자연적인 요소 등을 다룬 이야기들이 강렬한 극적상황들을 좀 더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도록 변형을 주었고, 이를 바로크 시대에 쓰이던 무대장치의 다양한 기술들을 최대한 활용하여 표현하였습니다. 음악의 뼈대 또한 전형적인 바로크 시대의 것으로 사건은 레치타티보 세코로 전개되며, 일정한 부분에 다카포 독창 아리아가 들어갑니다. 오페라 전체가 아리아의 연속이긴 하지만, 아리아마다 어떤 특정한 분위기나 효과들을 음악적으로 표현할 수 있도록 창의적인 구도로 짜놓았습니다.
그의 아리아들은 그 유형이 다양했는데, 화려한 기교와 콜로라투라 기법을 요구했던 노래부터 긴 숨을 필요하는 숭고하고 표현이 풍부한 노래까지 포함되어 있습니다. 유려한 대위법적인 반주가 붙는 장대한 바로크식 아리아가 있는가 하면, 민요스러운 간단한 선율을 현악이 유니슨으로 줄곧 따라가는 아리아도 있습니다. 또한 춤리듬으로 되어있거나 가볍고 멋진 선율형을 가지고 있는 것도 있습니다. 어떤 아리아는 레치타티보-아리오소를 거쳐 분위기가 고조되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아리아가 항상 레치타티보에 이어 나오지는 않습니다. 어떤 때는 아리아가 연이어 나오기도 하는데, 두 아리아가 이어져 두 개의 대조되는 감정을 나란히 보여주기도 합니다. 아리아를 통한 그의 이런 다양한 표현 능력들은 그의 오페라 전개에 시적인 깊이와 암시성을 심어주고 있습니다.
③ 오라토리오
조지 프리데릭 헨델이 1730년대에 활동하기 전까지는 영국에 오라토리오라는 장르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적인 요소를 모두 종합한, 유럽 대륙의 오라토리오와는 다른 새로운 종류의 오라토리오를 영국에서 탄생시키며 인기를 끌게 되었습니다. 조지 프리데릭 헨델의 오라토리오는 3막극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종교와 관련된 주제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메시아》(Messiah, 1742년)나 《이집트의 이스라엘인》(Israel in Egypt, 1739년)과 같은 작품처럼 극적인 대본을 사용하지 않은 것들과, 《세멜레》(Semele, 1743년)나 《시간과 진리의 승리》(The Triumph of Time and Truth, 1757년)와 같은 작품처럼 세속 오페라의 성격을 지닌 작품들도 있습니다. 이 작품에 담긴 음악들은 이탈리아 오페라, 프랑스 고전극, 영국 가면극이나 종교 합창음악적인 요소들을 두루 포함하고 있으며, 극장이나 연주홀에서 주로 연주되었습니다.
조지 프리데릭 헨델은 오라토리오가 가지고 있는 몇 가지의 이점들을 깨달았습니다. 바로 그것은 오라토리오가 의상이나 무대장치가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비용이 적게 들고, 입장이나 퇴장이 있는 장면의 전환이 없다는 것입니다. 또한 여기에는 기교가 뛰어난 가수가 필요하지도 않았고, 단지 작은 그룹의 전문 합창단만 있으면 공연을 할 수 있었습니다. 조지 프리데릭 헨델의 영국 오라토리오가 이탈리아 오라토리오와 구별되는 가장 큰 이유는 작품의 아리아에 집중하기보다는 영국의 종교합창음악에 기초한 합창 양식을 오라토리오에 대거 유입했던 것입니다. 독일 코랄음악 전통을 토대로 한 그의 합창음악은 개인적인 감정보다는 공동체적인 감정을 표현하기에 적합한 매체였고, 그는 이 합창음악을 효과적이면서도 변화무쌍하게 활용해 오라토리오의 극적인 요소를 더욱 강화시켰습니다. 조지 프리데릭 헨델은 합창을 사건에 대한 설명이나 반응, 장면과 감정을 음악적으로 표현하는 것에 사용했으며, 그의 합창에 나타나는 대위법적인 짜임새와 화성적 짜임새의 적절한 균형과 배열은 이런 표현을 더욱 효과적으로 전달하기에 좋았습니다.
조지 프리데릭 헨델의 오라토리오는 인간의 경험과 윤리를 주제로 역사적, 극적 전개를 펼치고 있습니다. 오라토리오의 대부분 줄거리는 주인공의 고난뿐만 아니라 국가나 인류의 운명까지 연결시켜 청중의 애국심을 유발시키기도 하였습니다. 초기에 흥행에 성공했던 《사울》(Saul, 1739년)이나 《이집트의 이스라엘인》에 이어 《메시아》는 성서의 내용을 토대로 만든 그의 가장 유명한 오라토리오입니다. 《메시아》는 프랑스 서곡으로부터 이탈리아 레치타티보와 다카포 아리아, 효과적인 합창 등의 음악적인 요소들을 한데 모아 성서에 기초한 예수의 생애를 연쇄적으로 명상하는 방법으로 전개하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구약성서에 기초한 오라토리오 《솔로몬》(Solomon, 1749년)에서는 합창을 다루는 그의 솜씨와 섬세한 표현의 절정을 볼 수 있습니다.
조지 프리데릭 헨델의 위대함과 역사적인 중요성은 두 가지 업적으로부터 기인한다는 평을 받습니다. 하나는 바로크 시대 말의 대중들에게 음악을 보급하는 것에 적극적인 기여를 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그의 작품들을 통해 18세기 중엽의 새로운 양식에서 중요한 요소가 되는 많은 것들을 제시해주었다는 점입니다. 앞서 말했듯이, 조지 프리데릭 헨델은 합창의 작곡가로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자였습니다.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엄격한 대위법적 양식과 비교를 해보면, 그는 선율과 화성에 중점을 두었지만, 이 두 양식의 대비를 하나의 작품 안에 탁월한 솜씨로 이루어 낸 작곡가입니다.
바로크 시대의 사회에서는 작곡가들은 자신이 고용된 궁정이나 교회를 위해서, 혹은 상업적인 오페라단을 위해서 어떤 구체적인 필요성과 목적들을 위해 작곡을 했지만, 그러한 작품들의 음악적인 가치는 지금까지도 빛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18세기 전반의 수많은 바로크 시대의 걸작품들은 지금 시대까지 수월하게 전해져왔던 것은 아닙니다. 요한 세바스찬 바흐나 알렛산드로 스카를라티의 자녀들은 부모 세대가 주도했던 시대에 활동을 시작하면서 그 세대와 같은 양식의 음악을 작곡하지 않았습니다. 칼 필립 에마뉴엘 바흐(Carl Philipp Emanuel Bach, 1714년 ~ 1788년)나 요한 크리스찬 바흐(Johann Christian Bach, 1735년 ~ 1782년)는 18세기 후반의 고전시대 음악양식의 도래를 예감하는 작품들을 많이 작곡하곤 했습니다. 많은 바로크 시대의 걸작들은 동시대 사람들의 취향의 변화와 함께 금세 잊혀졌지만, 그 진가를 20세기 이후 많은 음악학자들이 이를 발굴해냈고, 재조명하는 작업을 통해 다시금 뚜렷하게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마태 수난곡》이 1829년 펠릭스 멘델스존에 의해 청중들에게 연주되어 강한 반향을 일으켰는데, 이 계기는 1809년 요한 니콜라우스 포르켈(Johann Nikolaus Forkel, 1749년 ~ 1818년)의 바흐 전기 집필에서 이미 형성되었던 것입니다.
18세기의 대가들 요약
이번에는 주로 바로크 시대의 말에 활동했던 대가, 즉 안토니오 비발디, 쟝 필립 라모, 요한 세바스찬 바흐, 조지 프리데릭 헨델에 대해 다루었습니다. 그들은 바로크 시대의 양식을 완숙한 경지로 끌어 올리면서 각자의 독특한 작곡 세계를 펼친 작곡가들입니다. 이들은 유럽 예술음악의 선진국이었던 이탈리아와 프랑스, 독일, 영국에서 각각 활동했습니다. 모두 당시의 대위법적인 양식과 화성법적인 양식의 조화를 보여주었습니다. 안토니오 비발디는 협주곡 분야에서, 쟝 필립 라모는 이론적인 분야에서 지대한 공언을 했고, 조지 프리데릭 헨델은 오라토리오의 대가였습니다. 이 세 작곡가와는 다르게 오페라를 작곡하지 않았던 요한 세바스찬 바흐는 바로크 시대의 주요 음악장르들을 절정으로 끌어올렸던 작곡가였습니다. 이들은 서로 만남을 거의 하지 않았지만, 서로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또한 이들은 모두 같은 시기에 있었던 새로운 경향(고전시대의 초기 음악양식들에 나타났던)도 인식하고 있었지만, 그 방향을 적극적으로 추구하진 않고 각자의 고용주가 요구하는 대로 음악을 작곡했습니다. 바로크 시대의 음악 양식을 최고의 기술로 종합하고 있었던 이들의 음악 작품들은 동시대인들 뿐만 아니라 현대인들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어 지금도 음악회의 주요 레퍼토리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18세기 전반에는 여러 음악 양식이 뚜렷하게 병존했던 시대입니다. 이 시기에는 바로크 양식 중 가장 위대한 작품들이 쏟아져 나온 시기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프랑스에서는 가벼운 짜임새로 된 새로운 갈랑(어떤 역사가들은 로코코라고 칭하기도 함) 양식이 유행하기 시작했고, 이후 독일에서는 감정과다적인 표현양식이 성행하기 시작했습니다. 1730년 이후에는 이런 전고전적인 요소들이 이후 세기에서 나타날 경향이라는 것을 예시할 수 있었습니다. 18세기 전반의 작곡가들은 주로 하나의 양식에 집착하여 활동을 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어떤 사람들은 둘 또는 그 이상의 양식을 융합해 만들기도 했습니다.
▶출처 : 새 들으며 배우는 서양음악사. 허영한 외 6명 공저. 심설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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