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음악사

19세기 말의 음악적 양상 5/9(2023.01.13)

작은대학교 2023. 1. 1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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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작은대학교입니다.

 

오늘은 지난 시간에 이어 미국의 작곡가들에 대해 알아보고 스페인의 민족주의 음악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참고로 미국은 서유럽에서 개척을 통해 생겨난 나라이기 때문에 민족주의라고 할 만한 특징적인 음악이 만들어지기에는 시간상으로 역부족이었습니다. 하여 인디언의 선율이나 새로 생겨난 특유의 음악들을 가지고 민족주의적인 선율로 발전되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그 점을 감안하고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① 루이스 모로 고트초크

 

출처 : 루이스 모로 고트샬크 - 나무위키 (namu.wiki)/루이스 모로 고트초크

 

루이스 모로 고트초크(Louis Moreau Gottschalk, 1829년 ~ 1869년)는 런던에서 이주한 상인의 아들로, 뉴올리언스의 부유한 제과업자의 딸과 결혼하였습니다. 뉴올리언스 성당의 오르간 주자로 활동했던 그는 파리에서 음악을 공부하게 되었는데, 이 때 그는 미국의 대중음악과 민요를 주제로 한 피아노곡으로 파리에서 데뷔를 했으며, 이 연주는 프랑스인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게 되었습니다.

 

유럽에서 성공한 그는 1853년이 되어 미국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민요나 대중적인 소재를 사용하는 것 외에 그는 《밴조: 아메리칸 스케치》(The Banjo: An American Sketch Op. 15, 1855년)처럼 미국 악기인 밴조 소리를 피아노로 흉내 내기도 했습니다. 그 작품에는 현의 지속음과 끊이지 않는 반복음, 그리고 음유시인인 밴조주자들이 하는 반복적인 리듬치기 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루이스 모로 고트초크는 미주에서나 유럽에서 진정한 미국의 음악가로 인정받았던 첫 번째 미국 태생의 작곡가였습니다.

 

② 에드워드 맥도웰

출처 : 에드워드 맥다월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드워드 맥도웰

 

유럽 음악의 영향을 받은 대표적인 미국의 작곡가로는 에드워드 맥도웰(Edward MacDowell, 1860년 ~ 1908년)을 들 수 있습니다. 그는 프랑스와 독일에서 피아노와 음악이론, 작곡 등을 배웠으며, 유럽에서 작곡가와 피아니스트로서 활약하게 되었습니다. 1888년 미국에 돌아온 그는, 콜롬비아 대학에 재직하면서 음악활동을 이어나갔습니다. 그의 초기 작품은 에드가 소온(Edgar Thorn)이라는 가명으로 출판되었으며, 2개의 협주곡과 16개의 성격소품, 소나타 등 피아노를 위한 작품들이 있고, 4개의 교향시, 2개의 오케스트라 모음곡, 그 외는 가곡과 합창곡들이 있습니다. 그의 음악은 로베르트 슈만과 에드워드 그리그, 리하르트 바그너 등의 영향을 많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히 그의 《영웅 소나타》(Sonata Eroica, 1894년 ~ 1895년)는 리스트의 b단조 피아노 소나타를 모델로 한 것입니다. 에드워드 맥도웰의 기악음악은 대부분 낭만주의의 표제음악입니다.

 

에드워드 맥도웰은 뉴잉글랜드의 풍경을 묘사하는 음악을 작곡하기는 했지만, 거의 미국적 요소를 작품의 소재로 사용하지는 않았습니다. 그가 미국적인 소재를 사용헀던 작품은 오케스트라 《모음곡 제 2번》 "인디언"(Indian, 1897년)인데 이 작품은 <전설>(Legend), <연가>(Love Song), <전쟁시>(In War-time), <장송가>(Dirge), <마을 축제>(Village Festival)의 다섯 악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여기에서 그는 북아메리카 인디언의 선율을 재료로 사용하고는 있지만, 반음계적인 화성과 두터운 성부 짜임새에 가려져 이 인디언의 선율이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루이스 모로 고트초크와 마찬가지로 그는 피아노 비르투오소였으며, 그의 가장 잘 알려진 작품들도 역시 피아노 작품들이었습니다. 이 작품들에는 《숲 속의 스케치》(Woodland Sketches, 1896년), 《바다 소품》(Sea Pieces, 1898년), 《뉴 잉글랜드 풍경》(New England Idylls, 1901년 ~ 1902년) 등이 있으며, 모두 슈만풍의 성격소품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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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에이미 체니 비치

 

출처 : 5월23일 에이미 비치'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로망스' : 네이버 포스트 (naver.com)/에이미 체니 비치

에드워드 맥도웰과 동시대에 활동했던 작곡가 에이미 체니 비치(Amy Cheney Beach, 1867년 ~ 1944년)는 19세기 말의 대표적인 미국의 여성 작곡가입니다. 뉴잉글랜드 지방 출신의 그녀는 보스턴에서 피아노를 공부하면서 음악적인 재능을 나타내기 시작했습니다. 피아니스트로서 많은 활동을 한 뒤, 의사였던 헨리 비치와 결혼하면서 연주자의 길을 접고 작곡에 몰두하기 시작했습니다. 바흐, 프란츠 리스트, 안토닌 드보르작, 리하르트 바그너의 작품들을 사보하고 면밀하게 검토함으로써 자신의 피아노 곡과 가곡, 합창음악, 《피아노협주곡 c#단조》(1899년)과 《게일 교향곡》(Gaelic Symphony, 1897년)을 완성하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미국적 음악을 작곡하지는 않았지만, 지방색 있는 요소들을 사용한 작곡가입니다. '게일(Gael)'이란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를 일컫는 말인데, 《게일 교향곡》의 1, 4악장은 자신의 가곡 <밤은 어둡도다!>(Dark is he Night!)를 소재로 한 반면, 2, 3악장은 아일랜드 민요를 소재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에이미 체니 비치와 에드워드 맥도웰 등 유럽의 음악교육과 그 영향을 받았던 미국 작곡가들의 음악어법은 가장 대표적인 20세기 미국 작곡가라고 할 수 있는 찰스 아이브스(Charles Ives, 1874년 ~ 1954년)의 작품들에서 그 맥을 이어가게 됩니다. 19세기 후반 유럽 음악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던 고전음악 경향을 띤 미국음악과 함께 미국 특유의 다문화적 음악이 밴드 음악과 재즈를 중심으로 대중음악의 경향을 띠며 발전해 나갔습니다.

 

④ 스콧 조플린

출처 : 스콧 조플린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스콧 조플린

 

스콧 조플린(Scott Joplin, 1867년 ~ 1917년)은 대부분 피아노를 위한 흑인 음악인 래그타임(ragtime)의 대표적인 작곡가입니다. 그는 노예의 아들로, 텍사스에서 음악 공부를 했으며, 1907년에 뉴욕으로 이주하였습니다. 뉴올리언스 대중음악의 리듬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던 래그타임은 유럽과 아프리카의 요소가 한 세기 이상 혼합된 결과물이었습니다. '래그(rag)'의 의미는 리듬이 들쭉날쭉하다(The rhythm is ragged)는 것으로, 피아노를 칠 때 왼손의 규칙적인 박에 오른손이 당김음형을 연출하는 데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스콧 조플린의 대표적인 피아노 래그타임은 《단풍잎 래그》(Maple Leaf Rag, 1899년)는 2박의 행진곡풍으로 왼손에서는 규칙적인 쿵짝 베이스, 오른손에서는 약박에서 시작하는 당김음형의 선율이 나옵니다. 선율과 반주의 패턴이 바뀌더라도 이들은 거의 2마디 단위로 이루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오른손의 규칙적인 박과 왼손의 당김음형이 대치되면서 아프리카의 복합리듬적인 특징이 작품에 반영되어집니다.

 

유럽, 아프리카, 쿠바 등의 다양한 인종 문화가 조합되어 특색있는 문화를 이루게 된 뉴올리언스에서는 음악활동이 매우 활발하게 이루어졌는데, 1900년대 초에 래그타임의 인기가 치솟게 됩니다. 1910년대에는 래그타임과 댄스음악인 블루스가 혼합된, 지금까지와는 다른 형태의 음악이 유행하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바로 재즈(Jazz)라는 새로운 음악장르의 시초입니다.

 

6) 스페인

 

16~17세기 스페인은 지방색이 두드러진 음악을 잘 보존해 오다가 이탈리아의 도메니코 스카를라티, 루이지 보케리니, 유명한 카스트라토 카를로 브로스키(파리넬리)가 스페인의 궁정과 교회에서 크게 인기를 끌면서 18세기부터 이탈리아 음악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기 시작하였습니다. 19세기에는 스페인이 소요와 혼돈에 휩싸이게 된 시기였습니다. 이 시기에는 나폴레옹 전쟁 동안 영국과 프랑스의 전쟁터가 되었으며, 그 후에도 전제정치와 무정부상태가 이어짐에 따라 나라의 정ㅇ세가 내리막을 치닫고 있었습니다. 그 결과 19세기 말이 되자, 스페인에서도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이 다시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운동의 선봉에 섰던 가장 중요한 작곡가는 바로 이사악 알베니츠(Isaac Albeniz, 1860년 ~ 1909년)입니다. 그는 본래 낭만주의 어법으로 소품을 쓰는 작곡가였는데, 파리에 한 동안 머무는 동안 갑작스럽게 고국 스페인 전통음악에 대한 향수를 느끼게 되면서 민족주의적 음악을 작곡하게 되었습니다. 1906년부터 1909년 사이, 그는 12곡의 피아노 소품이 담긴 《이베리아 모음곡》(Suite Iberia, 1906년)을 작곡하는데 바로 이 작품이 전통적인 스페인 춤에 잘 어울리는 이상적인 음악으로 각광을 받게 됩니다. 이러한 스페인 고유의 음악에 대한 관심은 곧 마누엘 데 파야(Manuel de Falla, 1876년 ~ 1946년)에게 이어져 피아노 협주곡 《스페인 정원의 밤》(Nights in the Gardens of Spain, 1916년), 발레음악인 《삼각모자》(The Three-cornered Hat, 1919년) 등과 같은 민속적 소재를 사용한 음악을 탄생시켰습니다.


▶ 출처 : 새 들으며 배우는 서양음악사. 허영한 외 6명 공저. 심설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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