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작은대학교입니다.
오늘은 지난 시간에 이어서 후기 낭만주의의 대표적인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2) 구스타프 말러
① 교향곡
구스타프 말러(Gustav Mahler, 1860년 ~ 1911년)는 보헤미아 지방의 칼리쉬트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어릴 적부터 많은 민요를 배우면서 자랐고, 피아노와 음악이론을 배웠습니다. 10세에 피아노 연주회를 한 바가 있으며, 1875년에는 비엔나 음악원에 피아노 전공으로 입학했지만 작곡에 더 치중하게 되었습니다. 비엔나에서는 리하르트 바그너의 음악을 알게 되면서 바그너 동아리에 들어가게 되었고, 비엔나 대학을 다니면서 철학 등의 강의를 듣기도 했습니다. 1883년부터 그는 오스트리아, 헝가리, 보헤미아 도시들에서 지휘자로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라이프치히에서는 막스 베버의 손자로부터 베버의 오페라 《세 사람의 핀토》(Die drei Pintos)를 받아 이 작품을 완성시켰습니다. 1897년부터 1907년까지는 비엔나 오페라의 음악감독으로도 일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지휘자로서의 바쁜 일정 속에서도 여름과 겨울의 휴가를 이용해 대표작으로 아홉 개의 교향곡, 교향곡적 연가곡《대지의 노래》(Das Lied von der Erde, 1908년 ~ 1909년), 세 개의 오케스트라 연가곡을 작곡했습니다.
구스타프 말러 | |
1860년 | 7월 6일 보헤미아 지방 칼리쉬트에서 출생 |
1875년 ~ 1878년 | 비엔나 음악원 |
1880년 | 배드 홀 하계 극장 지휘자, 《슬픔의 노래》(Das klagende Lied) |
1881년 ~ 1883년 | 라이바흐와 올뮈츠에서 지휘자 활동 |
1883년 ~ 1885년 | 카셀 오페라 지휘자, 《방황하는 젊은이의 노래》(Lieder eines fahrenden Gesellen) |
1885년 ~ 1886년 | 프라하 독일 오페라단 지휘자 |
1886년 | 라이프치히 신 국립극장 지휘자 |
1888년 |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를 만남, 부다페스트 왕립 오페라 지휘자 |
1891년 ~ 1897년 | 부르크 국립극장 지휘자, 교향곡 2, 3, 4번 |
1897년 | 가톨릭교로 개종, 비엔나 궁정 오페라 지휘자 |
1902년 | 알마 쉰들러와 결혼 |
1907년 | 장녀 사망, 심장병 진단 받음, 교향곡 제 8번 |
1908년 |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지휘자 |
1909년 | 뉴옥 필하모니 지휘자, 《대지의 노래》(Das Lied von der Erde), 《교향곡 제 9번》 |
1910년 | 《교향곡 제 10번》(미완성) |
1911년 | 5월 18일 비엔나에서 사망 |
구스타프 말러는 일생동안 교향곡과 가곡 작곡에 전념한 작곡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의 아홉 개의 교향곡들은 베토벤과 요하네스 브람스의 전통적 교향곡의 맥을 잇는 작품들이었습니다. 초기에 작곡된 네 개의 교향곡은 그의 리트와 깊은 연관을 가지고 있고, 성악이나 다수의 합창을 포함하고 있는 악장들도 있습니다. 1900년 이후에 쓰인 《죽은 어린이를 그리는 노래》(Kindertotenlieder, 1901년)와 교향곡 5번, 6번, 7번은 당시 출판된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작품전집을 공부하면서 그의 영향을 많이 받게된 뒤에 작곡되어진 곡들로, 의도적으로 대위법적인 짜임새를 호모포닉한 짜임새와 대비시켰습니다. 이 교향곡들에서는 표제나 성악이 배제된 교향곡의 절대음악적인 성향을 고수하게 되었습니다. 구스타프 말러는 만돌린 등 비전통적인 악기를 사용하기도 했고, 새로운 악기편성이나 짜임새, 또는 성악의 도입으로 음향의 다양한 색채감을 실험하였고, 이를 통해 교향곡의 규모나 또 다른 가능성들을 키워가게 되었습니다. 특히 그의 교향곡 8번은 "천인 교향곡"이라고 불릴 만큼 기악이나 성악의 규모가 거대하여 전통적인 교향곡 형식을 극한까지 확장한 작품입니다.
《교향곡 제 8번》을 작곡한 이후인 1909년에는 중국 당시(唐詩)에다 음악을 붙인 오케스트라 리트라고 부를 수 있는 교향곡 규모의 《대지의 노래》를 완성하였는데, 이 작품의 부제는 "테너, 알토, 오케스트라를 위한 교향곡"입니다. 이후에는 다시 절대음악 성향의 《교향곡 9번》을 작곡했고, 1910년에는 《교향곡 10번》을 미완으로 남기게 되었습니다.
구스타프 말러는 자신의 교향곡에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담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그만큼 그의 교향곡은 변화무쌍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새 소리나 물 소리 등, 자연의 소리나 민요, 동요와 같은 민속적 재료 뿐만 아니라 길거리에서 들을 수 있는 행진곡이나 성가 선율, 세속 선율 등 모든 것을 교향곡에 담아내었습니다. 이러한 그의 작품들은 "잡동사니로 만들어진 음악"이라는 혹평을 받기도 했지만, 오히려 이러한 면이 오늘날의 청중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게 된 요소로 작용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구스타프 말러는 20세기 후반 음악에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게 되는 인용기법의 창시자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새로운 소재보다는 이미 존재하고 있는 재료를 가지고 자유롭게 변형, 발전시켜 대규모 형식 안에 배열시키는 것을 당대 예술이 앞으로 나아가야할 방향으로 제시했던 것입니다.
구스타프 말러의 《죽은 어린이를 그리는 노래》와 《대지의 노래》는 19세기 관현악 리트의 대표작들입니다. 그러나 이 리트 작품에서 보여주는 관현악법은 교향곡에서 보여주는 풍부한 음향과 꽉 찬 짜임새의 대규모적인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이 리트들은 실내악과 같은 소규모의 오케스트라를 위한 작품들이며, 성악과 관현악의 짜임새가 매우 듬성듬성 하기 때문에, 각 성부에서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선율들을 세세하게 들어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간결하면서도 압축된 음악어법, 그리고 거기에서 생겨나는 투명하면서도 팽팽한 긴장감은 비엔나의 신세대 작곡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게 됩니다.
민속적, 세속적인 소재의 사용, 이것의 변형과 발전, 지속음과 오스티나토를 통한 전통적인 화성진행으로부터의 탈피, 대위법적 성긴 짜임새 등과 같은 구스타프 말러 특유의 음악어법들은 19세기 말 독일어권의 작곡가들이 극단까지 확장시킨 리하르트 바그너의 반음계주의와는 다르게 구별되는 것들이었습니다.
▶ 출처 : 새 들으며 배우는 서양음악사. 허영한 외 6명 공저. 심설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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