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음악사

19세기 오케스트라 음악 4/4(2022.12.19)

작은대학교 2022. 12. 19. 18:00
반응형

안녕하세요. 작은대학교입니다.

 

오늘은 지난 시간에 이어 프로그램음악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뒤이어 협주곡에 대해 알아보고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2) 프란츠 리스트

 

프란츠 리스트(Franz Liszt, 1811년 ~ 1886년)의 아버지는 헝가리 귀족 에스테르하치가의 집사였습니다. 하여 그는 종종 연주에도 참여하곤 했는데, 아들의 음악적 재능을 일찍이 발견하여 6살부터 피아노를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프란츠 리스트는 비엔나에서 안토니오 살리에리에게 작곡수업을 받았고, 1823년에는 그의 가족들과 함께 파리에 정착해 살게 되었습니다. 1824년에는 오페라 극장에서 데뷔해서 점점 명성을 쌓게 되었고, 그 후에 당대의 문필가, 사상가, 그리고 헥터 베를리오즈, 니콜로 파가니니, 펠릭스 멘델스존, 프리데릭 프랑수와 쇼팽과도 친분을 쌓았습니다. 1839년부터는 피아노 비르투오소로서의 절정기를 맞게 되었지만, 연주자의 생활을 정리하고 1847년 독일의 바이마르로 이주해 진보적인 작곡가로서 활동하기 시작했습니다. 

 

바이마르에서의 그는 새로운 음악장르인 교향시를 창안하게 되었습니다. 교향시라는 것은 1849년에 괴테 기념식을 위해 작곡했던 서곡 《타쏘》(Tasso)를 1854년에 개작해 발표하면서 사용한 명칭입니다. 교향시라는 것은 문자 그대로 교향곡적(symphonic) 재료를 가지고 음악적인 시(poem)를 만든다는 것입니다. 프란츠 리스트는 이러한 교향시 13편을 남겼는데, 대표적으로 《전주곡》(Les Preludes, 1848년), 《마제파》(Mazeppa, 1848년 ~ 1951년), 《햄릿》(Hamlet, 1858년)등이 있습니다. 교향시는 단악장 오케스트라 곡으로 프로그램 내용을 수반하고 각각의 부분들은 대조되는 성격과 빠르기로 구분합니다. 여기에서 등장하는 여러 주제들은 반복, 변형 발전되며 곡을 진행시킵니다. 교향시의 형식구조는 프로그램에 의해 진행되는 사건과 줄거리에 따르게 됩니다. 때로는 이들이 소나타형식이나 교향곡의 악장구조를 따르기도 하지만, 소나타형식과 같은 고전적인 형식은 이런 종류의 음악을 이해하는 데 있어 크게 도움이 되지는 않습니다

 

프란츠 리스트
1811년 10월 22일 헝가리(현재는 오스트리아) 라이딩에서 출생
1821년 비엔나에서 칼 체르니에게 피아노, 안토니오 살리에리에게 작곡 공부
1822년 비엔나 음악회 출현
1826년 초기 주요 피아노 작품
1827년 ~ 1830년 파리에서 유명작가 및 예술가와의 친분, 베를리오즈를 알게 됨
1831년 파가니니 연주를 보고 매료되어 같은 기교를 피아노에서 시도
1833년 쇼팽과 알게됨, 첫 번째 피아노 편곡들
1835년 제네바 거주, 마리 다구 백작부인과 동거(3명의 자녀를 둠)
1839년 유럽 연주 여행, 비르투오소로 인기 정점
1844년 다구 백작부인과 결별
1847년 캐롤라인 자인-비트겐슈타인 공주와 알게 됨
1848년 ~ 1857년 바이마르 대공작의 음악감독, 오케스트라 곡과 오페라(바그너 작품 등) 지휘, 《전주곡》, 《파우스트 교향곡》, 《단테 교향곡》, 《햄릿》
1858년 바이마르 음악감독 사직
1861년 로마로 이주
1865년 성직자 칭호를 받음, 종교 음악 작곡
1869년 ~ 1885년 로마, 바이마르, 부다페스트에서 활동
1886년 7월 31일 독일 바이로이트에서 사망

 

프란츠 리스트는 교향시 이외에도 《파우스트 교향곡》(Eine Faust-Symphonie in drei Charakterbildern, 1854년 ~ 1857년), 《단테 교향곡》(Eine Symphonie zu Dantes Divina Commedia, 1855년 ~ 1856년)과 같은 프로그램 교향곡들도 작곡하였습니다. 그는 《파우스트 교향곡》에 "괴테에 의한 세 개의 성격적 묘사"라는 부제를 달았는데, 3악장으로 구성된 이 곡은 각각 파우스트-그레첸-메피스토펠레스를 의미합니다. 《단테 교향곡》은 2악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어린이 합창단의 '마그니피카트'(Magnificat)로 곡을 마무리합니다. 즉 프란츠 리스트의 프로그램 교향곡은 여러 악장으로 구성되었다는 점 이외에 내용적인 면으로 보면 교향시와는 크게 다른 점이 없습니다.

 

프란츠 리스트가 시작한 교향시는 19세기 후반의 민족주의 작곡가들에 의해서 더욱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그 중에서는 민족주의 작곡가인 베드르지흐 스메타나(Bedrich Smetana, 1824년 ~ 1884년)의 대표작 《나의 조국》(Ma Vlast, 1872년 ~ 1880년)은 6개의 교향시들이 모여 하나의 작품을 이룬 것입니다.

 

3. 협주곡

 

19세기 협주곡은 비르투오소적 협주곡과 교향악적 협주곡으로 구분지을 수 있습니다. 교향악적 협주곡이 과거 협주곡이 독주자의 연주에만 중점을 두었다고 한다면, 19세기에는 오케스트라와 독주가 동등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 때문에 비르투오소적 협주곡이라는 용어를 사용합니다. 하여 19세기에는 오케스트라에서 현악기뿐만 아니라 관악기도 섬세하게 주요 주제, 동기들을 담당하고 이들의 진행과 발전에 독주 악기만큼 주도적인 역할도 맡게 되었습니다. 로베르트 슈만은 세 악장 구성의 협주곡 구조에 교향곡처럼 스케르초 악장을 더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대부분의 19세기 협주곡 작곡가들은 독주자의 즉흥연주가 요구되었던 카덴차를 허용하지 않고 자신이 직접 기보하여 연주하도록 하였습니다.

 

펠릭스 멘델스존은 7개의 협주곡을 작곡했는데, 그 중 피아노 독주를 위한 곡이 세 곡,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곡이 두 곡, 바이올린 독주를 위한 곡이 두 곡입니다. 이 협주곡들 중 가장 많이 연주되었고 가장 많은 청중들의 사랑을 받았던 작품은 1844년에 작곡된 e단조 바이올린협주곡입니다. 그는 스스로 훌륭한 바이올리니스트였던 만큼 이 바이올린협주곡은 베토벤과 요하네스 브람스, 장 시벨리우스, 표토르 차이콥스키의 바이올린협주곡과 견줄 만한 걸작으로 꼽힙니다. 이 협주곡은 전통적인 세 악장 구조로 되어있긴 하지만, 세 악장이 하나의 곡으로 인식될 수 있도록 각 악장을 이어서 연주하게 되어 있습니다.

 

교향곡을 작곡했던 절대음악 작곡가들은 협주곡 또한 많이 작곡하였는데, 프리데릭 프랑수와 쇼팽(Friedrich Chopin, 1810년 ~ 1849년)은 두 개의 피아노협주곡을, 로베르트 슈만은 각각 한 개씩의 피아노협주곡과 바이올린 협주곡, 첼로협주곡을, 요하네스 브람스는 두 개의 피아노협주곡과 한 개의 바이올린협주곡, 그리고 바이올린과 첼로를 위한 이중협주곡(double concerto)을 작곡하였습니다. 프로그램음악을 작곡했던 프란츠 리스트도 세 개의 피아노협주곡을 작곡하였습니다. 이 외에도 대표적인 협주곡 작곡가로는 표트르 차이콥스키(Peter Ilyich Tchaikovsky, 1840년 ~ 1893년)의 피아노협주곡, 바이올린협주곡이 있고, 에드바르 그리그(Edvard Grieg, 1843년 ~ 1907년)의 피아노협주곡, 그리고 안토닌 드보르작(Antonin Dvorak 1841년 ~ 1904년)의 첼로협주곡이 있습니다.


19세기 오케스트라 음악 요약

 

베토벤으로부터 전수되어진 오케스트라의 음악 전통은 19세기에 이르러 절대음악과 프로그램음악으로 나뉘어지게 되었습니다. 절대음악을 고수했던 작곡가들은 교향곡을 고전 교향곡의 구조와 같게 순수한 교향곡을 작곡하였고, 문학 등 음악외적인 요소로부터 영감을 받은 감정을 음악으로 표현했던 작곡가들은 프로그램음악을 작곡하였습니다.

 

주로 19세기 전반에 활동했던 프란츠 슈베르트, 펠릭스 멘델스존, 로베르트 슈만은 교향곡의 전통을 고수하면서 자신들의 작품에 제목을 붙이기도 했습니다. 허나 그 형식은 고전 소나타형식을 따랐으며, 교향곡의 큰 틀 또한 고전주의 교향곡의 것을 고수하였습니다. 이 교향곡들은 제목에 내포되어있는 음악외적인 요소들보다 형식구조, 주제, 화성, 오케스트라 기법에 의한 음악적 내용에 훨씬 더 큰 비중을 두고 있었기 때문에 이 작곡가들은 주로 보수적인 작곡가로 분류됩니다. 이에 반해 헥터 베를리오즈는 음악적인 아이디어보다는 문학적인 줄거리의 전개를 가지고 음악적인 내용을 통제했던 프로그램음악의 대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절대음악과 프로그램음악이 음악적 대립은 19세기 후반이 되어 더욱 더 양극화되었습니다. 1850년대에 이르러 프란츠 리스트와 리하르트 바그너는 미래음악이 지향해야 할 방향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면서 프로그램음악을 옹호하고, 자신들을 신독일악파라 명명하였습니다. 신독일악파였던 프란츠 리스트는 음악작품에서 감정표현이 무엇보다 우선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를 기반으로 교향시라는 새로운 장르를 창안하게 됩니다. 리하르트 바그너는 시와 음악, 무대, 장면, 춤 등을 하나로 결합하는 종합예술작품을 구상했는데, 음악이 하나의 극을 만들기 위해 다른 예술에 종속되어야만 한다는 의미에서 자신의 작품을 음악이 주가 되는 오페라와 구별해 음악극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습니다.

 

펠릭스 멘델스존이 죽은 뒤 1850년 ~ 1870년에는 교향곡의 전통이 프로그램음악의 급격한 성장으로 인해 잠시 주춤세를 보였지만, 요하네스 브람스와 함께 다시 보수적인 성향의 보수악파들이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교향곡의 전통은 안톤 브루크너와 구스타프 말러에 의해 이어지게 됩니다.

 

음악에 대한 이 두 악파의 미학적 견해는 대립되는 모습을 띄었지만, 이들의 음악은 새로운 악기의 탄생, 새로운 주법의 개발들로 인해 음량적으로도 확대되었고, 음색적으로도 매우 풍부해졌으며 그만큼 표현의 영역도 더욱 넓어지게 되었습니다. 이 두 종류의 음악은 다음 세기에도 공존하면서 더욱 다양해지는 새로운 음악 양식의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 출처 : 새 들으며 배우는 서양음악사. 허영한 외 6명 공저. 심설당.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