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음악사

19세기 오케스트라 음악 3/4(2022.12.16)

작은대학교 2022. 12. 16.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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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작은대학교입니다.

 

지난 시간까지는 19세기 오케스트라의 음악 중 교향곡을 알아보았으며, 오늘부터는 19세기 오케스트라 음악 중 프로그램 음악에 대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교향곡과 프로그램음악이라는 개념이 조금 혼란스러울 수 있지만, 대략적으로 보수적이고 전통적인 것이 교향곡, 진취적이고 진보적인, 새로운 것이 프로그램음악이라고 생각하시고 보는 게 좋을 듯 싶습니다.


2. 19세기 프로그램음악

 

교향곡의 형식을 고수하는 전통적인 작곡가들과는 다르게 19세기 중반의 혁신적인 작곡가들은 프로그램음악을 주창하였습니다. 프로그램음악은 문학 등 음악외적인 요소에서 받은 자극에 기인해 탄생하게 된 것으로, 음악적 아이디어보다 이러한 요소들에 더 큰 비중을 둡니다. 작곡가들은 이런 작품에 제목 뿐만 아니라 프로그램의 설명까지 덧붙여 출판하는 경우가 있었고, 음악 외적인 내용의 효과적인 전달을 위해 오케스트라 매체를 주로 사용했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음악을 "미래의 음악"이라고 자칭하면서 신독일악파(Die Neudeutsche Schule)를 결성하였습니다. 이 신독일악파에서는 프란츠 리스트와 리하르트 바그너가 선두에 서서 활동을 했는데, 프란츠 리스트는 1855년 『음악신보』의 「베를리오즈와 그의 《이탈리아의 해롤드》」라는 글을 통해 헥터 베를리오즈의 프로그램 교향곡을 극찬하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그는 음악에 있어 새롭고 혁신적인 방향의 이상은 표현에 있다고 했으며, 예술가들은 자신들이 실패를 할 수도 있는 결과에 대해 두려움없이 학구적인 틀에서 벗어나 아름다움을 추구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하여 그는 음악이 발전해야 할 방향은 명백한 감정의 표현이며, 예술가는 형식보다는 감정의 표현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즉, 그는 감정의 표현이 보다 명확한 프로그램음악이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는 음악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이보다 앞서 리하르트 바그너는 1850년에 쓴 『미래의 예술작품』(Das Kunstwerk der Zukunft)에서 "베토벤은 기악음악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완성했고, 9번 교향곡에서는 음악과 문학이 결합하는, 미래의 예술작품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했다"고 언급하였습니다. 또한 그는 예술가로서의 인간은 다양한 예술이 결합된 종합예술작품 안에서만 자유롭고, 그 안에서 완전할 수 있다고 말하며 음악극을 창안하게 되었습니다. 하여 리하르트 바그너는 미래의 종합예술작품에서는 기존의 오페라와는 다르게 음악이 다른 다양한 예술들과 함께 극에 종속되어야 하기 때문에 그는 오페라라는 용어 대신에 음악극이라는용어를 사용할 것을 제안하였습니다. 따라서 음악극이란 용어는 프로그램음악의 한 장르로 제시된 교향시와 그 맥락을 같이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교향시는 '음을 표현 재료로 삼은 시'라는 의미로 문학의 한 형태임을 강조하는 것처럼, 음악극 또한 '음악을 표현의 재료로 삼은 극'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음악극에서 음악은 극을 위한 하나의 표현수단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1) 헥터 베를리오즈

 

출처 : 헥토르 베를리오즈(1803 - 1869) : 네이버 포스트 (naver.com)/헥터 베를리오즈

 

헥터 베를리오즈(Hector Berlioz, 1803년 ~ 1869년)의 아버지는 프랑스 남부의 시골 의사로, 헥터 베를리오즈에게 의학 공부를 시키기 위해 파리로 보냈으나, 그는 그곳에서 음악에 끌리게 되어 파리음악원에 입학을 하게 되었고, 음악가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1830년에 작곡된 《환상교향곡》(Symphonie fantastique, 1830년)은 프로그램 교향곡이라는 독창적인 장르를 구축하게 된 작품입니다. 이는 전통적인 교향곡의 전개방식에서 벗어나 이야기 줄거리 진행대로 음악이 전개되는 음악적 드라마입니다. 《환상교향곡》으로 로마 대상을 받아 이탈리아에 체류하게 된 헥터베를리오즈는 그곳에서 《이탈리아의 해롤드》(Harold en Italie, 1834년)를 작곡하기도 하였습니다. 이 작품 또한 해롤드를 독주 비올라를 사용해 표현하는 프로그램 교향곡입니다. 1839년에 작곡한 그의 세 번째 교향곡 《로미오와 줄리엣》(Romeo et Juliette, 1839년)도 프로그램 교향곡이지만 헥터 베를리오즈는 이 작품에서는 보다 더 나아간 새로운 실험들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작품의 표지에는  "합창, 독창, 그리고 합창에 의한 레치타티보와 프롤로그를 붙인 드라마적 교향곡"이라는 문구가 적혀있습니다. 그의 마지막 교향곡인 《장송과 승리의 대교향곡》(Grande symphonie funebre et triomphale, 1840년)은 부르봉왕조가 복귀하는 1830년 혁명의 10주년을 위해 작곡된 것입니다. 

헥터 베를리오즈
1803년 12월 12일 프랑스 알프스 지방의 라 코트-생-앙드레에서 출생
1821년 ~ 1824년 파리에서 의과대학, 작곡가 장 르쉬르(Jean Le Sueur)에게 작곡 공부
1826년 파리음악원 입학
1827년 파리에서 연극 〈햄릿〉을 보고 해리엣 스미드슨을 연모
1831년 로마음악원 대상 수상, 로마 거주
1832년 파리 귀환
1833년 해리엣 스미드슨과 결혼
1834년 ~ 1840년 《레퀴엠》(Grande messe des morts), 《로미오와 줄리엣》(Romeo et Juloette), 음악평론가로 활동
1842년 지휘자로 유럽여행
1844년 해리엣 스미드슨과 결별, 활발한 연주 및 저술 활동
1846년 파리에서 《파우스트의 저주》(Le damnation de Faust) 공연
1848년 연주 여행
1852년 바이마르에서 리스트와 〈베를리오즈 주간〉 음악회 개최
1854년 마리 레시오와 재혼
1856년 ~ 1857년 오페라 《트로이 사람들》(Les Troyens)
1862년 오페라 《베아트리체오 베네딕트》(Beatrice et Benedict)
1864년 건강 악화
1869년 3월 8일 파리에서 사망

 

헥터 베를리오즈는 《환상교향곡》에서부터 고정상념(idee fixe)을 사용했는데, 이 것은 어떤 대상을 연상시키는 악상으로, 이야기가 전개됨에 따라 이것이 다양한 형태로 다시 출현함으로써 음악적 아이디어와 음악외적인 아이디어를 연관시키는 방법입니다.

 

헥터 베를리오즈의 교향곡들은 모두 프로그램 교향곡으로 분류되어지고 있으며, 19세기 프랑스 오케스트라 음악의 주축을 이루었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독일 낭만음악 혁신주의자들의 본보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당대와 후대에 본보기가 되는 오케스트라 기법을 소개한 『오케스트라 기법』(Grand Traite d'instrumentation, 1843년)을 저술할 만큼 그는 효과적인 관현악 기법에 통달해 있었으며, 풍부한 화성과 음색, 형식으로 무든 프로그램 음악의 선구자가 되었습니다.


▶ 출처 : 새 들으며 배우는 서양음악사. 허영한 외 6명 공저. 심설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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