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음악사

19세기 오페라 5/5(2022.11.14)

작은대학교 2022. 11. 14.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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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작은대학교입니다.

 

오늘은 19세기 오페라의 마지막 시간으로 독일의 유명한 오페라 작곡가 중 한 사람인 바그너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2) 리하르트 바그너

 

출처 : 리하르트 바그너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리스트의 친구이자 이후에 사위가 된 리하르트 바그너(Richard Wagner, 1813년 ~ 1883년)는 대표적인 독일의 오페라 작곡자이자 19세기 문화 및 예술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인물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음악만큼 문학적인 배경도 탄탄해 오페라 뿐만 아니라 저술 활동에서도 미래의 독일 예술을 이끌어 나갈 철학적인 지표를 제시하였습니다.

 

출처 : (23) Liszt transcriptions from Wagner Opera - YouTube/왼쪽부터 코지마 바그너, 바그너, 리스트, 한스 본 볼초켄(독일의 문학가, 출판업자이며 바그너와 각별한 친분을 유지함)

 

리하르트 바그너의 첫 성공작인 《리엔치》(Rienzi, 1837년 ~ 1840년)는 죠아키노 로시니와 지아코모 마이어베어의 영향으로 작곡된 5막의 그랑 오페라입니다. 그는 연이어 칼 마리아 폰베버의 낭만 오페라의 전통을 이은 《방랑하는 네덜란드인》(Der fligende Hollander, 1840년 ~ 1841년), 《탄호이저》(Tannhauser, 1842년), 《로엔그린》(Lohengrin, 1845년 ~ 1848년)을 작곡했는데, 이는 모두 1840년대에 작곡된 작품입니다. 1848년에 그는 정치적인 봉기에 연루되어 스위스로 망명하게 되었습니다.

 

리하르트 바그너
1813년 5월 22일 라이프치히 출생
1830년 성 토마스 학교 입학
1831년 라이프치히 대학 입학
1834년 막데부르크 극단의 음악감독
1836년 《금지된 사랑》(Liebesverbot) 공연, 플라너(Minna Planer)와 결혼
1837년 리가 극단 음악감독
1839년 파리에서 마이어베어와 계약
1842년 ~ 1843년 드레스덴에서 《리엔치》, 《방랑하는 네덜란드인》 성황리 공연 드레스덴 작센의 궁정 악장
1848년 ~ 1849년 정치적 이유로 바이마르, 스위스, 파리 등으로 이주, 취리히 정착
1864년 바이에른 왕 루드비히 2세의 초청으로 뮌헨으로 이주, 리스트의 딸 코지마(Cosima von Bulow)와의 운명적인 만남
1865년 뮌헨에서 《트리스탄과 이졸데》(Tristan und Isolde) 공연
1866년 아내 플라너와 사별
1870년 코지마와 결혼
1871년 바이로이트 근교로 이주
1874년 《니벨룽의 반지》(Der Ring des Nibelungen)
1876년 바이로이트 극장에서 《니벨룽의 반지》 초연
1882년 《파르지팔》(Parsifal) 공연
1883년 2월 13일 베니스에서 심장마비로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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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하르트 바그너는 1830년 초, 칼 마리아 폰 베버의 낭만주의, 이탈리아의 서정주의, 프랑스의 그랑 오페라 양식을 실험하는 오페라 작곡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앞서 말씀드린 종합예술형식을 추구했는데, 이로 인해 음악을 비롯한 다른 모든 요소들은 극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또한 그는 극이 음악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음악이 극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고 하며, 기존의 용어였던 오페라 대신 음악극(Musikdrama)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며 새로운 장르를 탄생시켰습니다.

 

리하르트 바그너는 음악극에 대한 자신의 소신을 따라 1848년부터 1852년까지 4개의 연작 음악극 《니벨룽의 반지》(Der Ring des Nibelungen)의 대본을 쓰게 됩니다. 그는 이 대본을 바탕으로 1853년부터 오페라 연작을 쓰기 시작했고, 1857년까지 첫 세 작품인 《라인의 황금》(Das Rheingold), 《발퀴레》(Die Walkure), 《지그프리트》(Sigfried)를 작곡하게 됩니다. 1874년에는 마지막 작품인 《신들의 황혼》(Die Gotterdammerung)으로 완결을 지었습니다. 2년 후 《니벨룽의 반지》 연작은 리하르트 바그너의 오페라 전용극장인 바이로이트 극장에서 초연되었습니다.

 

이 오페라의 등장인물과 줄거리는 북유럽 신화와 게르만 신화에서 가지고 왔는데, 황금과 권력에의 욕망과 끝없는 복수는 인간이나 신 모두에게 파멸을 가져올 뿐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있습니다(이 주제는 마찬가지로 북유럽과 게르만 신화를 다룬 존 로널드 루엘 톨키엔(John Ronald Reuel Tolkien, 1892년 ~ 1973년)의 『반지의 제왕』(The Lord of the Rings, 1954년 ~ 1955년) 주제와 유사합니다). 《니벨룽의 반지》의 연작에 등장하는 신과 여신, 인간, 난쟁이, 거인 등의 대부분은 훔친 라인의 황금으로 만든 반지의 힘과 재물에 모두 눈이 어두워져 있습니다. 이 반지를 만든 알베리히는 반지를 빼앗기자 이것을 차지하는 자는 모두 멸망할 것이라는 저주를 내립니다. 반지를 차지하는 이들이 모두 죽고, 영웅인 지그프리트 또한 죽음을 면치 못하며, 신들 또한 함께 멸망하게 됩니다. 결국 이 반지는 정의의 수호 요정인 라인의 딸들에게 되돌아가게 됩니다. 이 작품들은 같은 등장인물과 음악적 동기를 통해 서로 긴밀하게 연관됩니다. 이야기와 연관 지어 어떤 것을 회상하거나 상징하는 동기를 라이트모티브(Leitmotiv)라고 하는데, 리하르트 바그너는 이 라이트모티브를 사용해 유기적인 이야기 전개를 이끌어 나갔을 뿐만 아니라 이를 통해서 작품 전체에 통일성을 부여하기도 했습니다.

 

오페라 《지그프리트》와 《신들의 황혼》 사이의 공백기 동안에 리하르트 바그너는 비극적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Tristan und Isole, 1857년 ~ 1859년)와 희극적 오페라 《뉘른베르크의 마이스터징어》(Die Meistersinger von Nurnberg, 1861년 ~ 1867년)를 작곡하였습니다. 또한 그의 마지막 오페라 《파르지팔》(Parsifal, 1865년 ~ 1882년)은 성배의 전설을 다룬 이야기로, 인간의 비극은 자기희생과 사랑의 힘으로써 구원될 수 있다는 주제입니다.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이룰 수 없는 사랑으로 인해 두 주인공이 죽음에 이르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그 줄거리를 보면, 콘월의 왕 마르케는 트리스탄에게 자신의 신부가 될 이졸데를 데리고 오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이미 복수심과 사랑으로 얽힌 사이이기 때문에 콘월로 돌아가는 둘의 심경은 매우 복잡하게 나타납니다. 그 이유는 트리스탄은 이졸데의 약혼자를 죽인 자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둘 사이에서 사랑이 싹텄기 때문입니다. 하여 이들은 배를 타고 가는 동안 독약을 마시고 죽을 것을 결심하지만, 하녀는 이들에게 독약 대신에 사랑의 묘약을 가져와 이들은 더욱 열정적인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마르케의 왕비가 된 이후에도 낮에는 왕비, 밤에는 비밀스러운 연인으로 이중생활을 했던 이졸데는 결국 들키게 되고, 트리스탄은 추방되게 됩니다. 먼 이방으로 추방된 트리스탄은 병이 들게 되고, 그를 잊지 못한 이졸데는 그를 찾아 나서게 됩니다. 하지만 그녀가 도착하기도 전에 트리스탄은 숨을 거두고, 이졸데 또한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이 오페라의 줄거리는 복잡하고 해결되지 않는 다양한 감정들의 연속이며, 음악은 이런 분위기를 유례없는 힘과 생동감으로 잘 표현해줍니다.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서곡은 19세기 말의 화성어법을 설명하는데 가장 자주 사용되는 음악이기도 합니다. 확실한 조성의 확립 없이 시작하는 선율은 마디 2에서 목관악기들과 화음을 이루게 됩니다. 이 화음은 일명 트리스탄 화음이라고도 불리우는데, F-B-D#-G#으로 구성된 감7화음의 변화화음은 준비와 해결 없이 갑자기 나타납니다. 선율은 첼로에서 오보에로 옮겨가면서 각 마디가 반음계적 전타음으로 시작해 비화성음의 해결을 기대하다가 결국 마디 2에서 으뜸조인 a단조의 딸림화음이 나타납니다. 이 화성진행은 동형진행으로반복되 해결을 계속 연기시키고, 기껏해야 반종지만 나타나며, 정격종지는 이 서곡의 끝까지 보류됩니다. 이 서곡의 마디 1-17(아래 그림 참고)에서 보듯이 처음 도입된 선율은 쉼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동형진행이나 선율의 확장을 통해 종지감 없이 마디 17까지 계속 이어지다가 Ⅴ7-Ⅳ으로 속임종지하는 하나의 악구로 감지됩니다. 종지의 연장을 통해 이렇게 길게 이어지는 선율을 무한선율(endless melody)이라고 부릅니다. 또한 다음의 그림은 이 오페라의 서곡에 나오는 라이트모티브들을 소개해줍니다. 이들은 묘약 모티브, 갈망 모티브, 트리스탄 모티브, 그리고 또 다른 무한 선율로 이루어진 사랑의 주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리하르트 바그너가 사용하는 화성은 극도의 반음계주의인 트리스탄 화금처럼 모호한 변화화음과 대담하게 강박을 장식하는 전타음을 사용하고, 기능화성에서의 필수적인 해결을 뒤로 미루면서 극적인 긴장감을 유발시키는 방식입니다. 이 긴장감은 좀처럼 해소되지 않고 동형진행으로 오히려 더 그 에너지가 증가하게 됩니다. 기능화성에 의한 조성은 점점 모호해지고, 가능한 한 끝까지 가야만 으뜸조성의 실체를 알 수 있습니다.

 

이 서곡은 오페라의 분위기를 암시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 작품 전체에서 사용될 라이트모티브들을 미리 소개하기도 합니다. 이 모티브들은 점점 변형되고 다양하게 조합되고, 이야기 줄거리와 연관이 되면서 전곡에 나타납니다.

 

리하르트 바그너는 극예술에서 그 누구와도 비견할 바 없이 탁월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전통적인 것들을 거부하기도 했지만 극의 표현을 위해서라면 모든 수단을 동원하기도 했습니다. 하여 그레고리오 성가부터 마이스터징어의 노래, 바흐, 모차르트, 베토벤, 칼 마리아 폰 베버 등이 사용했던 어떤 기법들도 놓치지 않고 자신의 음악극을 위해 사용했습니다. 그 결과 그의 음악들은 새로운 모습으로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탄생한 그의 음악의 음색적인 관현악법, 동기 취급법 등은 후대의 오페라 작곡가들과 교향곡 작곡가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주었습니다.

 

독일 오페라에서의 주인공은 처절한 운명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고, 이것은 사랑이나 희생을 통한 속죄와 구원으로 결말을 맞이하게 됩니다. 이렇게 철학적, 신화적, 종교적인 사고에 바탕을 두었던 독일 오페라의 주제는 동시대 인간사 중심의 이탈리아 오페라나 역사적 사건에 대한 시각을 제시했던 프랑스 오페라와 전적으로 구별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19세기 오페라 요약

 

19세기 이탈리아에서는 17세기부터 이어져왔던 오페라 왕국답게 모든 음악 중심에 늘 오페라가 있었습니다. 오페라 세리아와 오페라 부파의 명백한 구분이 19세기 초까지 이어졌으며, 이후에 낭만주의적 요소가 점차 유입됨에 따라 변화가 일어나긴 했지만, 독일이나 프랑스의 오페라만큼 낭만주의에 접근하지는 못하였습니다. 죠아키노 로시니, 빈첸조 벨리니, 쥬세페 베르디로 이어지는 이탈리아의 오페라는 복잡하게 얽힌 사랑 이야기들을 주로 다루었으며, 그 중에서도 청중을 사로잡는 벨칸토 창법의 서정적 아리아가 단연 돋보였습니다. 그러나 가에타노 도니체티나 빈첸조 벨리니와 같은 작곡가들은 극의 전개와 음악적 서정주의 사이에 균형을 잡기 위해 오페라의 연속성을 고려했고, 회상동기를 사용해 통일성을 부여하였습니다.

 

19세기 중반, 프랑스에서는 신흥 중산층의 수가 증가했고, 이들의 사회적인 비중이 점차 확장되면서 이들의 취향에 맞는 오페라가 요구되었는데, 그 결과 프랑스의 그랑 오페라가 등장하였습니다. 여가시간에 오페라 극장을 방문하는 중산층의 청중들은 음악적인 소양이 그렇게 세련되지 못했고, 그 대신 오페라 내에서 화려하게 볼 수 있는 것들을 원했습니다. 이러한 것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지아코모 마이어베어와 대본가 위젠 스크리브는 과거에 있었던 커다란 역사적 사건이나 실재했던 인물을 가지고 그랑 오페라의 주제로 다루었고, 5막의 장대한 규모로 기획하였습니다. 화려한 무대효과와 오케스트라, 대규모 합창, 발레와 다양한 볼거리들이 어우러져 이들의 합작 오페라는 파리에서 뿐만 아니라 프랑스 전역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고, 더 나아가 다른 나라의 오페라에도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되었습니다.

 

다른 예술분야에서 낭만주의가 가장 성행했던 독일에서는 오페라에서도 그 짙은 낭만성이 추구되었습니다. 최초의 낭만주의 오페라라고 꼽히는 작품은 칼 마리아 폰 베버의 《마탄의 사수》입니다. 이 오페라는 초자연적이면서 마법적인 요소를 다루는 낭만적인 주제, 효과적인 오케스트라 음악, 이탈리아적인 음악의 아름다움, 전원을 배경으로 하는 주제와 음악에서 오는 민족적 특성들 때문에 커다란 성공을 거둘 수 있었으며, 19세기 독일 오페라의 지침을 마련하기도 하였습니다. 리하르트 바그너는 오페라에서 음악과 다른 요소들이 극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오페라가 아닌 음악극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습니다. 그의 작품인 《니벨룽의 반지》나 《트리스탄과 이졸데》등은 오페라의 극적인 전개를 위한 음악적 표현을 확장시켜 반음계주의, 변화화음, 종지의 연장, 무한 선율, 음색적 관현악법들을 사용했고, 전곡을 통해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라이트모티브로 음악의 연속성이나 유기체적인 통일성을 꾀했으며, 이는 대규모 오페라에서 필수적인 요소로 작용하게 되었습니다.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오페라의 이런 차이점들은 각 나라의 오페라가 고유의 특색을 지니게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민요의 사용과 지방색 짙은 장면들의 도입 등과 같은 것들은 19세기 유럽 오페라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이기도 합니다.


▶ 출처 : 새 들으며 배우는 서양음악사. 허영한 외 6명 공저. 심설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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