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음악사

20세기 말의 음악적 상황과 최근의 음악 3/6 (2023.04.24)

작은대학교 2023. 4. 24.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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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작은대학교입니다.

 

오늘은 지난 시간에 이어 '연장, '의 입장에 있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음악양식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2) 퍼포먼스

 

퍼포먼스(Performance)는 새로운 자극, 가령 전자매체, 실험적인 극장 그리고 음악 외의 예술인 현대무용, 연극, 비디오예술의 수용을 통한 실험적 음악극과 함께 1970년대 이후의 오페라 또는 음악극의 방향에서 빼놓을 수 없는 위치를 차지한 장르입니다.

 

퍼포먼스는 작곡가 스스로가 자기 작품을 직접 연주하는 장르입니다. 특히 역사의 배후에 머물러 있었던 여성 작곡가들은 자신들의 신체, 그리고 목소리를 본연의 악기로 사용했습니다. 존 케이지를 선두주자로 확대된 퍼포먼스는 로리 앤더슨과 폴린 올리브로스(Pauline Oliveros, 1932년 ~ 2016년), 그리고 메레디스 몽크(Meredith Monk, 1942년 ~ )등과 같은 대표적인 작곡가들이 있으며, 이들은 퍼포먼스를 통해 무대에 적합한 표현영역을 발견했습니다. 또 그들은 존 케이지의 영향 아래 움직임, 동작, 음악, 대본 그리고 다양한 전자적 매개체들이 무대 위에서 조합되는 작품들을 창작하기도 하였습니다.

 

로리 앤더슨의 《미합중국》(United States of America, 1983년)은 2일에 걸쳐 6시간 동안 공연되는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78개로 이루어져있는 모자이크 모양의 초현실적인 무대, 슬라이드와 영화를 통한 장면들, 텍스트, 음악 그리고 전자매체는 연합국의 정치적인 문화생활에 대한 인상을 전달합니다. 또한 말하고, 낭송하고, 노래하고,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서사시와 같은 대작이기도 합니다. 이 작품에서 퍼포먼스는 전자적 매체를 통한 변형을 담고 있고, 작품 구성은 음악 외에 시각적 이미지와 언어적 예술에도 큰 비중을 두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반복되는 음형과 고대의 선율, 리듬을 통해 현대 사회의 소비성에 대한 내용도 암시를 하고 있습니다.  

 

메레디스 몽크는 성악가, 무용가, 안무가 그리고 연극배우라는 자신의 모든 직업적 개성을 작품 속에 관철시켰습니다. 그녀의 연극과 춤은 음악이 되었고, 그녀의 음악은 종종 연극이 되기도 하였으며, 그녀의 목소리 또한 춤이 되기도 했습니다.  '사람의 목소리가 반드시 단어와 연결되어야만 하는 걸까?'라는 사고를 지녔던 그녀는 목소리를 악기화하기도 했습니다. 그녀의 대표적인 작품은 《열쇠,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극장 앨범》(Key, An album of invisible theatre, 1970년), 《채석장》(Quarry, 1976년), 《게임》(The Games, 1983년)이 있는데, 이 작품들은 신조성적인 작품입니다.

 

 

3) 컴퓨터음악

 

'전자음악의 역사는 기계의 발달과 함께 한다'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작곡가들의 음악적인 아이디어들을 간단하게 구체화 해줄 수 있는 전자기기들은 1960년대 이후에도 끊임없이 개발되었습니다. 구체음악으로 시작한 뒤 스튜디오에서 작업을 했기 때문에 청중들과의 공감대 형성이 어려웠던 전자음악은 무대 연주를 가능케 했던 신디사이저의 발명으로 인해 '전자음악의 음들은 죽은 음'이라는 비판을 탈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1960년대 중반 라이브 전자음악 합주단(미국의 Sonic Arts Union, 슈톡하우젠의 합주단, 로마의 Musica Elettronica Viva)의 결성과 활동들은 라이브 연주의 특성인 가변성과 전자음악의 새로운 음색을 결합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946년 세계 최초의 컴퓨터인 에니악(Eniac)이 발명된 이후에도 끊임없는 개발이 이루어졌는데, 1971년에 마이크로 프로세서를 핵으로 한 디지털 신디사이저의 출현으로 인해 전자음악은 그 어느때보다 급속한 발전을 이룰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신디사이저로 인해 전자음악은 또 다시 컴퓨터음악이라는 더 넓은 개념으로 변화하게 되었습니다. 음을 합성하고 음색을 결정했던 많은 부분들이 신디사이저 시스템 안으로 들어오고, 그 음을 여러 방법으로 편집, 작곡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이 다시 개발됨에 따라 컴퓨터음악은 더욱 다양하게 발전될 수 있었습니다. 컴퓨터음악은 독립된 하나의 음악장르로서 뿐만 아니라, 이미 언급되었던 실험적 음악극, 퍼포먼스, 비디오 아트, 사운드 아트, 영화음악, 설치예술 등과 같이 모든 예술의 영역과 결합되어 활용되고 있습니다.

 

출처 : 에니악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니악

 

1982년 등장한 미디(MIDI: Musical Instrument Digital Interface)는 드럼머신, 신디사이저를 포함한 모든 전자악기, 음색 변화와 합성을 위한 디지털 시그널 프로세서, 시퀀서 그리고 컴퓨터의 소통을 가능케 했던 공용 시스템입니다. 컴퓨터음악 발전에 커다란 획을 그었다고 말할 수 있는 미디의 출현은 컴퓨터에 장착되어 개인의 컴퓨터음악 시대를 열게 되었습니다.

 

컴퓨터음악이 하는 역할 가운데 좀 더 특수한 영역은 새로운 음향의 합성, 작곡 시스템의 확대, 전자적 악기의 개발, 그리고그 연구 성과들을 창조적 예술품으로 생산해내는 것입니다. 현대음악의 괄목할 만한 연구소 중 하나로 꼽히는 프랑스 퐁피두 예술문화 센터에 건립되어 있는 음향/음악연구소(IRCAM: Institut de Recherche et de Coordination Acoustique/Musique)는 새로운 미분음에 근거한 음체계의 연구, 이에 근거해 기존 악기를 미디악기로 개조, 그리고 그러한 음들을 입력하고 녹음에 확대·적용할 수 있는 오디오 기술의 개발 등으로 컴퓨터음악 발전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또한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소와 연계해 얻어낸 수학, 음향학, 컴퓨터공학, 물리학 등의 최첨단 연구 결과들을 작곡가들과 공동으로 작업하여 음악창작 활동에 접목하고 있습니다.

 

 

3) 실험성의 연장

 

네 개의 공간을 청중들이 자율적으로 이동해 음악을 듣는 공간작곡 중 하나인 카를하인츠 슈톡하우젠의 《집을 위한 음악》(Musik fur ein Haus, 1968년)은 1970년대 이후 '공간-음악-경험'의 가능성 탐구의 모델이 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공간설치에 대한 실험적 창작을 경향으로 했던 작곡가들로는 빌 폰타나(Bill Fontana, 1947년 ~ ), 크리스티나 쿠비슈(Christina Kubisch, 1948년 ~ )를 꼽을 수 있습니다.

 

출처 : Twitter빌 폰타나/Christina Kubisch · SFMOMA/크리스티나 쿠비슈

뉴욕에서 작곡과 철학을 공부했던 빌 폰타나는 전 세계에서 채택했던 일상의 음향들과 소음들을 스피커를 통해 도시와 지방에 전파한 《소리재생 조각》(Sound Recycling Sculpture, 1980년)을 작곡했습니다. 그는 1970년대 후반부터 미국과 유럽에서 공식적인 음향설치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독일 브레멘 출생인 크리스티나 쿠비슈는 슈투트가르트, 함부르크, 마이란트에서 회화와 음악, 전자음악을 공부했는데, 그녀는 1975년부터 퍼포먼스와 비디오를 설치했고, 1980년부터는 음향설치, 음향조형 제작에 전념했습니다. 그녀의 음향-조형-공간에 대한 관심은 1990년 태양에너지에 대한 첫 번째 설치를 시작으로 '빛'과 음향의 결합으로 확대되었습니다. 크리스티나 쿠비슈는 2005년 3월 11일부터 유럽 산업예술의 출발지라고 할 수 있는 오버하우젠에 있는 가스탱크(Gasometer Oberhausen) 전시장에서 빛-음향-설치예술인 《하늘 빛》(Licht Himmel)을 전시했습니다. 2009년 2월 8일부터 4월 13일까지 그녀의 작품 《전기스케치》(Stromzeichnungen)는 북서 독일에 위치한 도시 말(Marl)의 조형박물관(Skulpturenmuseum Glaskasten)에 전시되었습니다.

 

음악과 조형예술 간의 불분명한 관계, 즉 장르간의 경계 허물기의 방향은 크리스티나 쿠비슈의 작품을 통해 보자면, 점점 예술이라는 영역을 넘어 예술 간의 결합을 꾀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조형예술과 음악창작간의 경계허물기의 또 다른 방향은 사운드 아트(sound art)라는 새로운 유형으로 발전했습니다. 오디오 아트(Audio art) 혹은 음향조각이라고도 부르는 사운드 아트는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는 장르입니다. 1978년, 로리 앤더슨은 인간의 신체 일부를 소리의 전달매체로 활용하는 작품인 《핸드폰 테이블》(Handphone Table)을 발표했는데, 이러한 흐름은 설치예술과 사운드 아트가 점차 음악과 조형예술의 영역을 넘나드는 것들 보여주었고, 이는 많은 작곡가들의 관심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작곡가이기보다는 예술가로 그녀의 직업을 구분하는 레바논의 모나 하툼(Mona Hatoum, 1952년 ~ )은 1994년, 벽에 비디오 장치를 설치해 관객이 입장하면 시각적인 감상과 함께 예술가의 심장박동, 숨소리를 들을 수 있게 했습니다. 반면 에드 오스본(Ed Osborn, 1964년 ~ )의 사운드 예술은 설치, 조형, 오디오, 비디오, 퍼포먼스 등 다양한 영역을 혼합하고 있으며 빌 폰타나의 초기 사운드아트의 영역을 확대해가고 있습니다.

 

출처 : Mona Hatoum - Wikipedia/모나 하툼/ Ed Osborn – Fluid Radio (fluid-radio.co.uk)/에드 오스본


▶ 출처 : 새 들으며 배우는 서양음악사. 허영한 외 6명 공저. 심설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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