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음악사

20세기 말의 음악적 상황과 최근의 음악 5/6 (2023.04.28)

작은대학교 2023. 4. 28. 18:00
반응형

안녕하세요. 작은대학교입니다.

 

오늘은 지난시간에 이어 '반'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포스트모더니즘, 즉 반 모더니즘을 이어 서술해보도록 하겠습니다.


3) 인용기법

 

18세기 이후에는 기존의 작품들과는 차별화 되는 새로움이란 것을 예술음악의 본질로 여기는 사고가 만연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사고는 20세기가 되면서 점차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음악에 있어 르네상스 시대의 패러디미사와 구스타프 말러의 작품들처럼 이미 존재하고 있는 작품을 빌려와 새로운 작품에 사용하는 방식인 인용(Zitat)은 이미 음악사에 있던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1960년대 이후부터 기존의 음악적 단편들을 새로운 작품 창작에 병치시키거나 혼합하는 인용기법은 더욱 다양한 방식으로 시도되기 시작했습니다. 인용기법은 이 시기 작품 경향의 한 흐름을 주도하는 중요한 특성으로 인식될 만큼 많은 작곡가들에 의해 다양한 맥락에서 사용되었습니다. 반 아방가르드적 움직임 가운에 이미 앞에서 언급했던 신낭만주의, 신조성주의 경향을 보인 작곡가들은 역사적으로 전수된 음악적 단편의 인용을 통해 전통으로의 복귀를, 그리고 작품의 전체적인 통일성을 이루기도 하였습니다. 반면 모더니즘의 연장으로 설명되었던 실험적 음악극에서의 인용기법은 인용되어진 음악들이 각각 그 독자성을 유지한 채 작품의 통일성에 사용되기 보다는 다원주의적 복수성을 나타내는데 사용되었습니다. 실험적 음악극, 가령 《루드비히 반》과 같은 작품에서의 인용기법처럼 또 다른 맥락에서 음악들을 인용했고, 이런 방법을 통해 다양성을 전면에 내세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인용기법을 통한 융합과 병치라는 음악적 겨로가는 다양화를 전제로 하는 포스트모더니즘에서 특별한 가치를 갖게 되었습니다.

 

① 베른트 알로이스 치머만과 루치아노 베리오의 인용음악

인용기법이 사용되기 시작한 1970년대 이전의 작품으로는 베른트 알로이스 치머만의 오페라 《병사들》과 발레음악 《위비왕과의 저녁식사를 위한 음악》(Musique pour les soupers du Roi Ubu, 1966년), 그리고 루치아노 베리오(Luciano Berio, 1925년 ~ 2003년)의 오케스트라와 8성부 인성을 위한 《신포니아》(Sinfonia, 1968년) 등을 꼽을 수 있습니다.

 

시간을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의 교차점으로 이해하고 있는 베른트 알로이스 치머만의 특별한 철학은 《병사들》에서 인용기법을 통해 구체화되었습니다.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의 음악을 동시에 보여주고자 했던 그의 음악적 사고는 그레고리오 성가로부터 재즈, 전자음악까지의 음악인용으로 구현되었습니다. 또한 이 작품에서의 인용음악들은 내적 통일성과 외적 다양성 모두를 이루고 있습니다.

 

8명의 성악가와 관현악을 위한 루치아노 베리오의 《신포니아》 제3악장은 인용기법이 사용된 대표적인 작품입니다.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 제2번》 '부활'의 스케르초 악장을 인용한 《신포니아》 제3악장에서는 구스타프 말러 이외에도 12명의 작곡가들의 음악적 단편이 통일성이나 융합과는 거리를 둔 채 인용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루치아노 베리오가 《신포니아》에서 인용한 많은 음악적 단편들은 병치되어 사용되는데, 이는 포스트모더니즘의 다원주의를 잘 설명해주는 예가 됩니다.

출처 : Luciano Berio - Wikipedia/루치아노 베리오

 

루치아노 베리오
1925년 10월 24일 이태리 북부 리구리안에서 출생
1952년 탱글우드에서 루이지 달라 피콜라 강습 참가
1954년 밀라노 라디오 방송국에 전자음악 스튜디오를 설립
1957년 《세레나타 Ⅰ》(Serenata Ⅰ) 작곡으로 음렬음악 창작 마감
1957년 이후 인성에 관한 음성학적 관심을 가진 창작을 선 보임
1965년 ~ 1966년 《시퀀차 Ⅲ》(Sequenza Ⅲ) 작곡
1967년 《신포니아》에서 인용기법을 총정리
1971년 이후 전자음악에 대한 새로운 시도/민속음악 자료 수집
1987년 이탈리아에 <템포 레알레> 연구소 설립
2003년 5월 27일 로마에서 사망

 

② 인용기법의 다양성

베른트 알로이스 치머만과 루치아노 베리오와 같은 작곡가들에 의해 형성된 인용기법은 젊은 작곡가들에 의해 다원론적으로 혼합되기 시작하였고 점차 다양한 의미도 부가되면서 음악적 포스트모더니즘의 중심에 놓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만프레드 트로얀(Manfred Trojahn, 1949년 ~ )은 1973년부터 1984년 사이에 작곡한 자신의 교향곡 3작품에서 구스타프 말러의 음악을 인용했는데, 대편성의 오케스트라를 위한 《교향곡 제2번》에서는 구스타프 말러의 선율적-화성적 작곡기법과 관현악법을 드러내놓고 인용했습니다. 알프레드 슈니트케(Alfred Schnittke, 1934년 ~ )는 '다중어법'(Polystilistik)이라는 자신의 창작관을 가지고 직접적인 인용, 개작, 그리고 분위기 암시로 인용기법을 차등화시켰습니다. 그의 《교향곡 제1번》(1969년/1972년) 제1악장에서 베토벤의 《코리올란 서곡》 시작 부분의 직접적인 인용, 제2악장에서 바로크 궁정풍의 춤에 대한 암시, 그리고 제3악장에서 프레데릭 프랑수와 쇼팽의 《장송행진곡》에 대한 교회합창 단풍으로의 개작은 그의 다양한 인용기법을 충분히 설명해주는 것입니다. 그는 《교향곡 제1번》을 시작으로 8개의 교향곡을 더 작곡했는데, 이 작품들로 인해 그는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의 뒤를 잇는 교향곡 작곡가로 인정을 받게 되었습니다. 또한 차등화된 인용기법으로 인해 포스트모더니즘 속에서 교향곡의 네오르네상스를 일으킨 사람이라고도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그의 교향곡에서 인용되는 이전의 음악적 요소들은 병렬적으로 연결되기보다는 혼합되는 모습을 보이며 진행됩니다.

 

출처 : Penn honors composer George Crumb on his 90th birthday - WHYY/조지 크럼

한편 다원주의적 맥락에서 인용기법을 구사했던 작곡가 조지 크럼(George Crumb, 1929년 ~ )은 전자적으로 증폭된 현악4중주를 위한 《검은 천사》(Black Angels, 1970년), 벨라 바르톡의 《미크로코스모스》, 클로드 드뷔시의 《프렐류드 Ⅰ&Ⅱ》의 영향을 받아 작곡을 하게 되었는데, 이 작품은 4권으로 작곡된 《마크로코스모스》(Makrokosmos, 1972년, 1973년, 1974년, 1979년)입니다. 《마크로코스모스》에서 그는 다양한 시대의 음악적 단편들을 모자이크 재료처럼 다루었고, 다양한 시대의 음악 양식들도 사용하였습니다. 전자적으로 증폭된 피아노를 사용하는 《마크로코스모스 Ⅰ》과 《마크로코스모스 Ⅱ》는 피아노 몸체를 두들기고, 줄을 뜯으며, 자, 쇠사슬, 유리와 같은 이물질들을 피아노에 미리 넣어놓고 연주를 시작합니다. 조지 크럼의 피아노 음색에 대한 이런 추구는 존 케이지의 '미리 조작된(prepared)' 피아노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여지고 있습니다. 또한 《마크로코스모스 Ⅰ》의 각 곡들은 별자리로 이름 붙여져 있는데, 각 곡들의 끝에 새겨진 이름 이니셜은 자기 주변에 있는 12명의 지인의 이름입니다. 이것은 로베르트 슈만이 《카니발》 Op.9에서 여러 악장들의 제목에 자기 주변의 인물, 존경하는 작곡가, 작곡가 자신의 이중적 성향을 의미하는 이름을 부여했던 것과 비교되기도 하는데, 조지 크럼의 《마크로코스모스 Ⅰ》의 악곡 구성은 로베르트 슈만의 작품 구성에 대한 양식적 암시이기도 합니다.

 

음악적 단편에 대한 직접적인 인용은 《마크로코스모스 Ⅱ》의 11번째 곡 <사자자리>처럼 작곡가가 직접 기재해 놓은 인용의 출처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감지할 수 없을 정도로 짧게 이루어진 《마크로코스모스 Ⅱ》 11번째 곡엥서 보여준 베토벤의 《함머클라비어 소나타》 인용은 모자이크 재료처럼 기존의 음악 단편을 사용한 예이기도 합니다.

 

출처 : Helmut Lachenmann - Wikipedia/헬무트 라헨만

병치, 혹은 병렬의 의미로서 사용된 인용기법은 헬무트 라헨만(Helmut Lachenmann, 1935년 ~ )의 협주곡, 특히 클라리넷 협주곡 《아칸토》(Acanto, 1975년/1976년) 그리고 《손풍금》(Harmonica, 1981년 ~ 1983년)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름다움이란 전통적 인습을 거부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던 그의 작품들에서 인용된 과거의 음악(모차르트 클라리넷 협주곡/민속음악)은 새로운 이질적 요소로 삽입되어 역사적 협주곡의 관습으로부터 벗어난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의 음악에서의 인용은 아방가르드적 실험의 구체화, 그리고 정치적,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출처 : Ginastera’s Estancia – Saskatoon Symphony Orchestra/알베르토 히나스테

인용된 음악이 새로운 작품 속에서 융합되는 내용은 아르헨티나 작곡가 알베르토 히나스테라(Alberto Ginastera, 1916년 ~ 1983년)의 《피아노협주곡 제2번》(1972년)과 같은 작품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 작품에서 그는 과거 음악에 대한 인용을 20세기 동시대의 음악에 등을 돌린 청자들에게 좀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쉬운 음악어법을 찾으려는 작곡가의 의도로 사용합니다. 이런 의도는 인용음악과 순수 창작음악이라는 이분법적 경계허물기의 하나로도 해석될 수 있습니다.

 

인용기법이 작곡가 자신의 다원주의적 음악관에 대한 표현이든, 또한 아방가르드적 실험정신을 위한 수단이든, 인용음악과 순수 창작음악 구분의 경계허물기를 위한 표현방식이든 간에 20세기 후반 음악의 중심 작곡기법이 된 것만은 확실합니다. 여성작곡가 소피아 아스가토브나 구바이둘리나는 퍼포먼스라는 혼합예술 형태가 아닌, 20세기 후반의 다양한 예술적 흐름, 음악어법의 모든 변화 과정을 자신의 음악언어로 삼기도 했습니다. 그녀의 음악세계는 다중어법이라는 창작관을 바탕으로 인용기법을 구체화했던 알프레드 슈니트케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녀는 바이올린 협주곡 《봉헌송》(Offertorium, 1980년/1982년/1986년)에서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음악의 헌정》의 주제를 구조적 기초로서, 그리고 《마지막 일곱 말씀》(Sieben Worten, 1982년)에서 하인리히 쉿츠의 음악을 십자가에 대한 상징으로 인용하였습니다.


▶출처 : 새 들으며 배우는 서양음악사. 허영한 외 6명 공저. 심설당.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