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작은대학교입니다.
지난 시간에는 20세기의 음악미학이 어떻게 나타났는지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그럼 오늘은 아놀드 쇤베르크와 테오도어 아도르노의 의견을 통해 20세기의 미학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전통적인 미학은 20세기에 들어 미래주의자들 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사람들에게서도 버림받기 시작했습니다. 아놀드 쇤베르크는 1922년, 자신의 화성학 책에 이런 의견을 내놓았습니다.
"한 제자에게 우리 예술의 수공예적인 것을 목수가 하듯이 남김없이 가르치는데 성공한다면 나는 만족하겠다.
내가 유명한 어느 말을 변경시켜서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면 나는 자랑스럽게 생각할 것이다.
'나는 작곡하는 학생들에게 나쁜 미학을 빼앗고 그 대신 좋은 수공예 이론을 주었다'라고."
아놀드 쇤베르크에게 있어 전통적인 미학이란 단순히 '나쁜'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기존의 미학으로는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내기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것은 좋게 들리고 저것은 나쁘게 들린다'라는 기존의 미학으로는 자신의 음악을 변호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는 조성과 관련된 미학까지 버리기로 하였습니다. 그 대신 그는 수공예론(곡을 만드는 방법)을 택했고, 그 결과 느끼는 것(미학)을 상관치 않는 만들기(시학)를 의도적으로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런 새로운 20세기의 예술과 입장을 가장 효과적으로 이론화시킨 사람은 바로 테오도어 아도르노(Theodor W. Adorno, 1902년 ~ 1969년)입니다. 그는 음악과 철학, 미학의 모든 방법을 동원해 과거를 부정적으로 평가했습니다. 그가 사용하는 <재료>(Material)라는 개념에는 그의 예술철학의 적용가능한 중요 부분들이 모두 반영되어 있습니다. 음악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재료란 멜로디, 화성 등을 만들어내는 요소로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때 사용되는 재료는 음악의 기본적 요소로서 이해될 뿐, 그 이상의 의미가 부여되지 않고 사용되는 경우가 더 많았습니다. 하지만 이 점에 대해 테오도어 아도르노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불협화음들은 긴장, 이의제기, 고통의 표현으로서 발생했다.
이것들이 침전되어 재료가 되었다. 이것들은 더 이상 주관들의 표현이 아니다.
이 재료들은 그 발생 근원을 부인하지 않지만 객관적 저항의 성격들이 되었다.
이 음향들의 수수께기적인 성공은 이것들이 고통을 재료로 변케하고 지배하는데,
이는 음향들이 고통을 계속 붙잡고 있음으로써 이루어진다.
이것들의 부정성은 유토피아에 충실하다."
테오도어 아도르노는 12음기법 음악의 불협화음이 인간의 고통스러운 상태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즉 인간의 고통들은 침전이 되어 불협화음을 이루는 재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음악을 만드는 재료는 단순히 음악의 물리적인 요소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성격의 것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하지만 주관에 의해 이루어진 재료는 주관적인 성격을 넘어 객관적 저항의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재료의 발생을 고통과 연결시키는 것은 굉장히 특이한 발상인데, 여기서 고통으로 인해 발생되는 재료가 철저하지 못하면, 사회적인 진실을 드러내는 데에도 실패한다고 그는 주장했습니다. 일례로 그는 알반 베르크의 오페라 『보체크』를 거론하면서, 이 작품이 기존의 양식들을(예: 파사칼리아, 모음곡, 론도 등) 사용해 충격을 드러내지 않고 흡수하였기 때문에 "불의의 장치 속에 무력한 병정(주인공 보체크)의 고통이 양식으로 평정되었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기존의 조성을 아직도 사용하고 있는 신고전주의자들(파울 힌데미트,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장 시벨리우스 등)에 대한 비판은 더욱 가혹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관습화된 것을 사용해 사회적인 고통을 용인하는 잘못된 화해를 철저하게 비판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재료는 역사와도 연결됩니다. 테오도어 아도르노는 음악형식이란 것은 역사적인 발달과정 속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한 것이며, 자연처럼 저절로 생성되지 않았고 인간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음악은 그 발생적인 것과 분리될 수 없다"고도 말했습니다. 즉 음악의 역사는 그 시대의 부정적 체험이 음악으로 집합된 것들이며, 음악의 기본적 요소인 재료 또한 이런 역사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의 음악사 관점은 이런 고통을 자신의 것으로 삼은 작곡가들에게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는 "이제 이미 3화음이 더 이상 쓸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는데, 이 것은 단지 낡고 시대에 맞지 않은 것이 아니라 3화음이란 것이 거짓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에게 3화음은 오히려 소음이며, 불협화음은 더 이상 소음이 아닌 것입니다. 더 나아가 테오도어 아도르노는 다음과 같은 주장도 했습니다.
"예술의 형태는 인간역사를 문서보다 더 합당하게 기록한다.
참혹한 형식은 참혹한 삶을 부정하는 것으로 읽히지 않는 일이 없다."
이 주장은 진실한 예술의 역사는 참혹한 형식 속에 들어 있고, 이 형식 속에 참혹한 삶을 거부하는 것들이 담겨져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에게 있어 참혹한 삶이란 바로 그가 겪은 히틀러의 통치입니다. 그는 음악이 이러한 체제에 대해 반응하는 '탄식'이나 '통곡'이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따라서 그의 귀에는 아름다운 음악은 거짓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미래주의자, 아놀드쇤베르크, 테오도어 아도르노는 각각 출발점이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과거의 음악(미학)을 거부한다는 점에서 일치한다는 점이 있습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20세기의 음악과 음악미학은 20세기의 가장 보수적인 신고전주의 음악가들에 의해서 거부되었다는 점입니다. 앞서 20세기 음악미학은 과거의 것을 거부했지만, 오히려 신고전주의자들은 이 시기의 음악을 뛰어넘어 바로크 시대와 르네상스 시대의 음악을 자신들의 음악에 접목시켰습니다. 이런 식으로 큰 두 갈래의 흐름이 생겼는데, 그 이유는 20세기의 전문가 그룹과 18~19세기적 청취자 그룹이 서로 추구하는 음악, 미학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즉 전문가 그룹은 역사적으로 음악을 생각하는 반면, 청취자 그룹은 미적으로 음악에 반응하기 때문으로 볼 수 있습니다.
▶ 출처 : 음악미학. 홍정수, 오희숙 지음. 음악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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