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음악사

고전시대 오케스트라 음악 3/9(2022.10.10)

작은대학교 2022. 10. 10.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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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작은대학교입니다.

 

이번 시간에는 세 대가 중 모차르트의 교향곡에 대해 알아보려고 합니다. 비록 짧은 인생을 살았지만 아주 반짝반짝 빛나는 보석같은 작품들을 많이 남겼던 그의 교향곡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3) 모차르트

 

① 초기 교향곡

모차르트는 런던에 있을 때 작곡했던 1번 교향곡(K. 16)을 시작으로 41번 《주피터 교향곡》(K. 551)까지 남겼습니다. 이 외에 모차르트의 교향곡일 수도 있다는 작품이 약 10여개가 있기도 합니다. 현대에 일반적으로 언급되는 번호들은 옛 모차르트 전집의 분류에 따라서 부여한 것입니다. 모차르트의 초기 교향곡들은 이탈리아 전통의 서곡과 전고전시대의 우아함을 차용한 방식으로 작곡되었습니다. 이를테면 초기의 교향곡들은 당시 런던에서 활동했던 카를 프레드릭 아벨(Carl Friedrich Abel, 1723년 ~ 1787년)이나 J.C. 바흐의 영향을 받은 것이며, 이후 비엔나에서 작곡한 작품들은 하이든이 그랬던 것처럼 비엔나의 오케스트라 전통에 가깝습니다.

 

1770년대 전반기에는 잠시 교향곡 작곡을 하지 않았는데, 이 시기에는 잘츠부르크에서 여러 가지 행사용 오케스트라 곡을 작곡했습니다. 오케스트라 음악과 실내악의 중간쯤 되는 규모의 세레나데와 디베르티멘토 등은 주로 축하용 음악이었습니다. 모차르트는 이런 음악들을 잘츠부르크 대학교의 종강 축제 음악으로 작곡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이유는, 그 당시 풍토는 그 지역의 유명한 음악가에게 대학교의 행사 음악을 주문하고 연주시켰기 때문입니다.

 

1770년대 후반의 작품(31번-34번)에서는 만하임 악파의 어법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클라리넷을 넣기도 했으며, 이를 통해 음량 확대와 대비가 두드러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1780년대의 교향곡에서 클라리넷을 자주 사용하기도 합니다. 하여 파리의 '영적 음악회'(Concerts spirituels)를 위해 작곡한 1770년대 말의 《파리 교향곡》(31번, K. 297)에는 2관의 목관악기가 4성부의 진행을 맡고 있고, 현악기 총주의 점진적 음량 증대 방식이 나타나 파리의 음악 기법을 수용한 흔적이 있습니다. 1780년대 중반에 작곡되었던 교향곡 중에 두드러지는 작품은 《하프너 교향곡》(K. 385, 1782년), 《린츠 교향곡》(K.425, 1783년), 《프라하 교향곡》(K. 504, 1786년)입니다. 이 작품들에는 만하임 악파와 하이든 교향곡의 영향이 남아있긴 하지만, 기법적으로는 매우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악기의 사용 면에서는 음향의 밀도를 높여주고, 특유의 반음계적 진행이 나타나며, 부분적으로 대위법적인 구성도 엿볼 수 있습니다.

 

② 후기의 세 교향곡

모차르트 교향곡의 절정은 1788년 여름, 6주간 작곡한 마지막 세 작품(39번-41번)입니다. 첫째 작품은 《백조의 노래》라는 부제로 불려지기도 합니다. 이 이름은 19세기에 다양한 실내악 편성의 묶음에서 이 곡이 자주 맨 뒤에 자리했기 때문에 예술가들의 마지막 걸작이라는 의미에서 붙여진 것입니다. 둘째 작품은 소규모의 다른 g단조 교향곡(K. 183)에 견주어 때로 "대 g단조 교향곡"이라고도 불리는 작품입니다. 이 교향곡에는 트럼펫과 팀파니가 빠져서 단조의 분위기가 더 드러나게 합니다. 셋째 작품은 《주피터 교향곡》이라고 불리는데, 런던에서 하이든 교향곡을 소개해주었던 살로몬이 모차르트 사후에 이 작품을 그렇게 불렀다는 견해와, 피아니스트인 요한 밥티스트 크라머(Johann Baptist Cramer, 1771년 ~ 1858년)가 이 작품의 신적인 아름다움을 그렇게 표현한 것에서부터 유래되었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늦어도 1820년대부터는 음악회 프로그램에 이런 이름이 사용되기 시작했고, 1822년 무지오 클레멘티(Muzio Clemeti, 1752년 ~ 1832년)가 이 작품의 피아노 편곡집에 그런 이름과 그림을 사용하였습니다. 그리고 피날레 악장에 5성부의 푸가가 사용되었기 때문에 '마감푸가가 있는 교향곡'이라고도 불리기도 합니다.

 

이 세 교향곡들은 개별적인 작품의 완성도가 뛰어나고, 고전시대 특유의 안정적인 짜임새에 요소들 간의 긴밀성과 진행의 역동성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모차르트 음악의 종합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창작 시기가 밀착되어 있지만, 세 작품을 하나의 세트로 생각해서 작곡한 것으로는 보이지 않습니다. 아래의 보기들을 보면, 왜 그런지 짐작이 가능하며, 각 교향곡들이 매우 개성있는 진행을 하고 있다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다른 교향곡들과는 다르게 이 작품들은 특별한 주문 없이 작곡된 작품입니다. 이것은 당시 모차르트가 자주 자신의 음악회를 열어 수입을 늘리고자 했던 것과 연결됩니다. 그는 당시 경제적으로 궁핍한 삶을 살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수입이 보장되는 음악회를 개최하고자 했습니다. 대중을 직접 상대한다는 것은 고전시대의 교향곡이 지향했던 바이기도 했고, 후기의 하이든에게서 그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모차르트의 마지막 세 교향곡은 아마도 하이든의 성공을 염두에 둔 작품일 수도 있습니다. 하이든의 "파리 교향곡"의 앞 세 작품은 1787년 함께 묶여 출판되었는데, 그 조성이 순서만 다를 뿐 모차르트의 세 작품과 똑같이  C장조, g단조, E♭장조로 되어있습니다.


모차르트는 이 교향곡들에서 이전의 편안함보다는 심각함을 더 많이 드러내고 있습니다. 밝은 것 같으면서도 우울한 음향을 내고 있는 이 작품들은, 모차르트 음악에 증가하는 심각성을 짐작하게 합니다. 그는 초창기에 잠시 직책을 가지고 있었을 뿐, 하이든과는 다르게 점점 자유로운 작곡가가 되길 원했습니다. 이런 그의 성향이 결국 음악에 진지함을 불러왔던 것으로 보입니다. 창작의 자유로움이 작품에 새로움을 불어넣게 되었고, 이런 경향은 보다 인상적인 음악으로 흥행에 승부를 걸려고 할 때마다 더 가속화되었습니다.

 

악보에 기록은 되어있지 않지만, 당시까지만 해도 계속저음은 교향곡의 연주에 임의적으로 함께 하기도 했습니다. 하이든 또한 건반악기를 연주하면서 그의 후기 교향곡들을 지휘하기도 했습니다. 오늘날 원형에 충실한 연주를 할 때는 계속저음을 연주하는 건반악기가 함께 사용되곤 합니다. 계속저음의 연주는 당시의 관행에 의해 대부분 지휘자가 맡아서 했습니다. 하여 모차르트가 연주에 참여했다면 그가 계속저음을 연주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계속저음은 전성기 고전시대에 더 이상 힘을 발휘하지 못했기때문에 저음 보강 이외에는 음향적으로 독자적 역할을 수행하진 못했습니다.

 

출처 :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1756년 1월 27일 잘츠부르크에서 출생
1759년 작곡의 초기 시도
1761년 대중 앞에서의 첫 연주
1763년 유럽 연주여행 시작
1764년 1번 교향곡(K. 16)
1767년 비엔나로의 여행
1768년 징슈필 《바스티앙과 바스티엔느》 초연
1769년 ~ 1771년 이탈리아 여행: 밀라노(피치니, 삼마르티니), 나폴리(마요, 파이지엘로) 등. 시스티나 성당에서 알레그리의 9성부 《미제레레》를 청음으로 기보함.
1772년 잘츠부르크의 악장, 이탈리아(밀라노) 여행
1773년 비엔나에서 활동, 하이든의 음악을 접함, 현악사중주와 교향곡 작곡
1775년 ~ 1777년 잘츠부르크에서 활동
1777년 ~ 1778년 만하임, 파리, 뮌헨을 잇는 여행, 《파리 교향곡》, 파리에서 어머니 사망
1779년 잘츠부르크 궁정 오르가니스트, 《대관식 미사》
1780년 뮌헨으로부터 《이도메네오》 위촉 받음
1781년 《이도메네오》의 성공, 잘츠부르크의 직책을 사직하고 비엔나로 감, 비엔나 시대의 시작
1782년 콘스탄체 베버와 결혼(이후 6남매를 둠), 《후궁에서의 유괴》
1783년 하이든에게 헌정한 《하이든 사중주》
1784년 피아노협주곡(14번-19번)으로 공공 연주회 개최
1785년 프리메이슨에 가입, 피아노협주곡 21번
1786년 《피가로의 결혼》, 피아노협주곡 23번-25번, 《프라하 교향곡》
1787년 프라하 여행, 《돈 지오반니》, 세레나데 《작은 밤의 음악》, 아버지 레오폴트 사망
1788년 세 개의 말기 교향곡(39번-41번), 《대관식 피아노협주곡》(K. 537), 경제적 어려움으로 빚을 지기 시작함
1789년 직책 또는 작품 위촉을 받기 위해 드레스덴, 라이프치히, 베를린, 포츠담으로 여행. 클라리넷 5중주(K. 581)
1790년 《코지 판 투테》, 독일에서 연주회 개최
1791년 《티토의 관용》(프라하), 《마술피리》(비엔나) 성공, 미완의 레퀴엠
12월 5일 비엔나에서 사망

출처 : 새 들으며 배우는 서양음악사. 허영한 외 6명 공저. 심설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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