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음악사

다성음악 3/3(2022.05.23)-모테트, 프랑코 기보법

작은대학교 2022. 5. 2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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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작은대학교입니다.

 

오늘은 지난 시간에 이어서 다성음악을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시간에는 오르가눔 성부에서 발전된 모테트와 네우마 기보법이 아닌 새로운 형태의 기보법, 프랑코 기보법에 대해서도 알아보겠습니다.


4. 모테트(motet)

 

13세기 후반에 이르러 기존에 유행하던 파리양식의 오르가눔과 콘둑투스는 점차 사라져가고 새로운 양식인 모테트라는 양식이 크게 유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모테트는 갑자기 나타난 음악장르가 아니라 오르가눔의 클라우줄라와 밀접한 관련이 있을 뿐만 아니라, 그레고리오 성가에서 트로푸스와 부속가가 유래되어진 것과 비슷한 과정을 통해 생겨났습니다. 오르가눔의 클라우줄라 부분은 하나로 고정된 것이 아니라 여러 개의 대체 가능한 클라우줄라들이 있었으며, 연주자는 클라우줄라를 연주할 때 자신의 기호와 필요에 따라 선택하여 연주하였습니다. 이를 통해 이 때의 작곡가들이 클라우줄라를 하나의 독립된 악보로 보기 시작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흐름으로 13세기 초부터 작곡가들은 클라우줄라를 기초로 새로운 작품들을 만들게 되었으며, 그 결과로 모테트가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초기 모테트는 가사가 없이 모음으로 불리우고 있던 클라우줄라의 상성부에 새로운 라틴어 가사를 붙이는 것으로 시작했습니다. 이 방식은 트로푸스와 비슷한 방식으로 기존에 있는 음악을 그대로 활용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음악은 클라우줄라에 새롭게 추가된 가사, 즉 단어(불어로 mot)가 있다는 것을 뜻하면서 모테트라고 불리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모테트의 라틴어인 '모테투스(motetus)'는 곡 전체를 뜻하는 의미이가도 했지만 그보다는 가사에 붙은 성부를 뜻하는 의미로서 더 자주 사용되었습니다. 초기 모테트는 가사 내용이 어느 정도 종교적이었고, 성가의 내용도 관련이 있었지만, 점점 작곡가들은 테노르의 내용과는 관계 없이 라틴어 가사나 비종교적인 불어 가사를 붙이기 시작하면서 다르게 발달하게 되었습니다.

 

아래의 악보는 초기 모테트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잘 보여주는 악보입니다. 첫번째 악보의 테노르는 부활절에 불려진 《알렐루야》의 'nostrum'(우리들을) 부분으로 레오냉은 이 부분을 디스칸투스 양식으로 작곡했습니다. 이렇게 작곡된 디스칸투스는 독립된 악곡으로서 전해지던 클라우줄라 상성부에 가사를 새롭게 첨가하면서 모테트로 만들어졌는데, 바로 이 악보가 그 모테트입니다. 결과적으로 초기의 모테트를 작곡한 작곡가는 가사만 첨부한 것이며, 해당 곡의 내용은 부활절 절기에 어울리게 죽음으로부터의 부활이라는 내용을 노래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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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화음은 어떻게 시작되었나?-오르가눔의 발전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레오냉, 2성부 오르가눔 《알렐루야》 중 클라우줄라 <우리들을> 부분
출처 : 모테트(Motet)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작가 미상, 초기 모테트 《기도하는 신자들이여-우리들을》(Gaudeat devotio-Nostrum)

초기 모테트를 작곡하던 작곡가들에게는 기존의 클라우줄라에 가사를 쓰는 것에 역할이 제한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이후에 이들은 클라우줄라의 테노르 성부는 그대로 두고 완전히 새로운 선율과 가사로 위의 두 성부를 작곡하게 됩니다. 따라서 13세기 중반에 작곡된 모테트들은 어느 정도 분명한 양식적인 틀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대체로 그 양식은 주로 3성부가 많고, 위의 두 성부는 각각 연관된 내용이지만 다른 가사를 부르고 있고, 그 가사의 언어 또한 세속적인 내용의 불어나 라틴어, 혹은 각 성부가 다른 언어를 사용해 동시에 노래하는 경우도 등장했습니다. 이와 같이 두 개의 다른 가사를 두 개의 다른 언어로 동시에 부른다는 것은 음악이 엄청 복잡하게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복잡성과 해박함이 포함된 음악은 중세시대의 음악가들과 그 것을 향유하는 계층이 즐겼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특히 모테트를 듣는 청중은 궁정이나 교회, 대학에 있는 사람들로 그 당시의 고급 교육을 받는 소수의 사람들이었고, 모테트의 복잡성을 충분히 듣고 즐길 수 있었던 계층이었을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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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프랑코 기보법

 

13세기 말에 이르러 모테트의 기본 틀은 유지되었지만 음악적인 내용에 변화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바로 그 부분은 리듬의 변화였습니다.

 

 

초기의 모테트는 위의 악보처럼 위의 두 성부가 같은 리듬형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두 성부를 구분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13세기 말에 이르러 두 성부의 리듬 진행에 차별화를 두기 시작했습니다. 이 차별화가 가능했던 이유는 바로 6개의 리듬형 기보법을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기보법의 출현 때문이었습니다. 새로운 기보법은 프랑코 폰 쾰른(Franco von Koln, 활동기간 13세기 중엽 ~ 13세기 말)의 저서 『리듬이 측량되는 노래 기술』(Ars canus mensurabilis)을 통해 알려지게 되었으며, 이 책은 1260년 경에서 1280년 경 사이에 완성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프랑코 기보법은 기존의 6개의 리듬형과는 전혀 다른 리듬 개념을 선보였습니다. 6개의 리듬형에서는 개별적인 음표가 특별한 의미를 지니지 못한 반면, 프랑코 기보법은 예외적인 것이 있지만, 개별적인 음표에 고정된 음가를 지정해 두었습니다. 그래서 특정 음표는 특정 음 길이를 나타내는 지금의 기보법과 상당히 그 기능적인 측면이 가까워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프랑코는 네 개의 음표를 사용해 비교적으로 다양한 리듬을 표기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했고, 이 네 가지 음표는 두플렉스 롱가(duplex longa), 롱가(longa), 브레비스(brevis), 세미브레비스(semibrevis)라고 불렸으며, 그 모양은 아래와 같습니다.

{"originWidth":1604,"originHeight":306,"style":"CDM","link":" 실용음악 위키 ","caption":"출처 : 프랑코 기보법

 

이 네 가지 음표 중에서 두플렉스 롱가를 제외하고는 모두 3분법을 기준으로 하고 있습니다. 롱가와 브레비스는 그 아래 단위의 리듬을 세 개 합한 만큼의 길이를 가집니다. 즉, 정상적인 경우에 하나의 롱가는 세 개의 브레비스를 합한 것과 같은 길이가 되며, 하나의 브레비스는 세 개의 세미브레비스를 합한 것과 같고, 유일하게 2분법 적용된 두플렉스 롱가는 롱가 길이의 두 배가 됩니다. 

 

때에 따라서는 롱가의 길이가 2개의 브레비스의 길이를 가지기도 하는데, 이런 경우는 '불완전하다'라고 말하고, 정상적일 때에는 '완전하다'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브레비스를 요즘의 4분음표라고 했을 때, 완전한 롱가는 <점 이분음표>를 의미하고, 불완전한 롱가는 <이분음표>를 의미합니다. 6개의 리듬형이 3분법을 기본으로 하는 것을 보면, 3이라는 숫자를 완전하다고 인식하는 그리스도교의 삼위일체 정신과 부합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출처 : 모테트의 발달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프랑코의 3분법

 

 

위의 악보처럼 세 가지의 성부가 리듬에 의해서 뚜렷하게 구분되는 모테트는 13세기 중엽 이후부터 나타납니다. 이런 발달이 가능하게 된 것은 프랑코의 기보법의 영향이었으며, 이러한 모테트를 기보법의 창시자인 프랑코의 이름을 따 '프랑코식 모테트'라고 부릅니다. 프랑코 기보법은 이후에도 변화가 지속되었는데, 하나의 브레비스에 해당하는 길이로 3개 이상의 세미브레비스를 적용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세미브레비스는 아주 짧은 음가를 의미하게 되었습니다.

 

세미브레비스의 사용은 페트루스 데 크루체(Petrus de Cruce, 13세기 말)가 처음 도입하였는데, 이 당시 이론가들이 페트루스가 그 리듬을 처음 사용했기 때문에 트리플룸의 매우 빠른 리듬이 많이 나오는 모테트를 '페트루스식 모테트'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위의 악보는 페트루스식 모테트의 예로 현대 기보법에서 16분음표로 표기된 부분은 전체가 하나의 브레비스에 해당되기 때문에 5개나 7개가 있는 경우, 현대 악보로는 5연음이나 7연음으로 표기합니다. 결과적으로 페트루스식 모테트는 프랑코식 모테트에 비하면 트리플룸의 리듬이 모테투스의 리듬과 더욱 확실히 구별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성음악의 요약

 

12세기 말부터 프랑스의 파리를 중심으로 발달하게 된 다성음악은 크게 세 관점으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 다성음악의 출현으로 기보법의 발달이 활발하게 이루어진 것, 그리고 이 것이 14세기에도 계속된다는 점입니다.

둘째, 레오냉과 페로탱 양식의 장대하고 화려한 오르가눔에서 작고 소박한 콘둑투스와 모테트로 변화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콘둑투스는 13세기에 유행하다가 사라진 양식인 반면에, 모테트는 14세기로 넘어가면서 점차 복잡하고 현학적인 면을 띠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오르가눔이 갖고 있던 음악의 종교적인 배경은 점차 클라우줄라와 모테트를 거치면서 세속적으로 변해갔는 것입니다. 모테트의 테노르로 사용된 그레고리오 성가는 점차 그 의미를 잃어갔고, 때때로 세속음악의 선율이 모테트의 테노르로 사용되곤 했습니다. 종교적인 음악에서 세속적인 음악으로 변하게 되면서 연주하는 장소가 달라지기도 했는데, 대성당 뿐만 아니라 궁정의 작은 방에서도 연주하게 되었습니다.


▶ 모테트 : 클라우줄라의 상성부에 새로운 라틴어 가사를 붙여 만들어진 양식(초기 모테트)


출처 : 새 들으며 배우는 서양음악사. 허영한 외 6명 공저. 심설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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