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작은대학교입니다.
오늘은 지난 시간에 이어 다성음악을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겠습니다. 오늘은 다성음악의 발달과 함께 발달된 리듬과 파리에서 발달한 다성음악을 알아보겠습니다.
2. 6개의 리듬형
다성음악의 발달로 12세기의 음악가들은 새로운 기보법을 개발할 필요성을 느꼈고, 개발에 노력을 기울인 결과 '6개의 리듬형(modal rhythem, '선법 리듬')'이라는 기보법을 개발하게 되었습니다. 이 기보법은 12세기경에 발달하기 시작하여 13세기 중반에 이르러 완전하게 정착되었습니다. 이 기보법은 지금 현재 사용되고 있는 리듬의 개념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리듬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현재의 기보법은 일정한 음의 길이를 표시할 수 있는 음표들을 사용하고 있지만, 이 당시의 기보법은 하나의 리듬형을 기초로 하여 표기하는 방식입니다. 여기에 사용된 리듬형은 아래의 그림과 같이 총 6개의 종류가 있으며, 모두 3박을 기본 단위로 하고 있습니다(성 삼위 일체).
6개의 리듬형에서 4분음표는 L(Long, 길다)로, 팔분음표는 B(Brevis, 짧다)로 제 1리듬형은 LB조합, 제 2리듬형은 BL조합, 제 3리듬형은 LBBLBB조합, 제 4리듬형은 BBLBBL조합, 제 5리듬형은 LL조합, 제 6리듬형은 BBBBBB로 볼 수 있습니다.
이 리듬형들이 기본이 되어 악보에 사용되었는데, 이 때 사용되는 하나의 리듬형은 쉼표가 나올 때까지 하나의 리듬형으로만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원칙적으로 쉼표가 나올 때 까지 다른 리듬형으로 변형시킬 수 없었지만, 실제로는 단조로움을 피하기 위해서 간혹 기본 리듬형을 변형시키는 경우도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이론적으로는 어떤 리듬형이나 악보에 쓰는 것이 가능했지만, 실제로는 제 1리듬형과 제 2리듬형이 오르가눔 성부에 자주 사용되었고, 아래의 성부에는 제 5리듬형이 자주 사용되었습니다. 이 당시에 사용된 음표를 '네우마(neuma)'라고 불렀으며, 이 네우마들은 일정한 음의 길이를 표기할 수 없었기 때문에 두 개 이상의 네우마를 연결해 놓은 '리가투레(ligature)'의 다양한 조합을 통해 어떤 리듬형인지를 표기하였습니다. 아래의 악보와 같이 처음 세 음 리가투레가 다음의 두 음 리가투레가 계속해서 나오게 되면 제 1리듬형이 되고, 세 음 리가투레가 계속 이어지면 제 5리듬형이 됩니다.
이 6개의 리듬형 기보법은 단순하게 보일 수 있지만, 실제 남아있는 악보들을 적용시켜 볼 때는 해석에 많은 어려움이 따릅니다. 그 이유는 작곡가들이나 악보를 그린 사람들이 항상 기보법의 이론대로 악보에 표기하는 경우가 드물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기보법 자체가 아직 리듬 표현에 많은 제약을 주었기 때문에 작곡가들은 6개의 리듬형 기보법의 이론 안에 안주할 수가 없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일단 리듬을 표기할 수 있는 기보법이 필요했기 때문에 기보법의 발달이 요구되었고, 음악 이론가들의 관심 또한 기보법에 집중되었습니다.
3. 파리양식의 다성음악
12세기에 들어서 파리는 다양한 면에서 프랑스 뿐만 아니라 유럽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루이 7세(Louis Ⅶ, 1137년 ~ 1180년)와 그의 후계자들은 파리를 프랑스의 정치, 문화의 중심지로 발전을 시켰고, 종교적인 면에서는 왕 만큼이나 권력을 가지고 있던 드 쉴리(Maurice de Sully) 주교가 파리 중심에 유럽 최대의 성당을 건립하는 장대한 계획을 추진하고 있었습니다. 1163년에 시작된 이 공사는 약 100여년 간 지속되었고, 그 결과 노트르담 대성당이 세워졌습니다. 이 성당은 지금도 그 웅장함을 느낄 수 있을 정도이기 때문에 그 당시의 사람들에게는 더더욱 경외심을 불러 일으켰을 것입니다. 노트르담 성당이 종교의 중심지였다면, 파리에 있는 파리 대학교는 전 유럽에 영향을 미치는 교육과 지식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습니다. 이 때문에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는 많은 유학생들이 파리에 몰려왔고, 이 파리 대학교를 모범삼아 유럽의 여러 도시에 대학교들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영국에서 파리에 유학을 왔던 한 유학생은 이런 글귀를 남기기도 하였습니다.
레오냉 선생은 오르가눔의 최고 작곡가였으며, 그는 『미사와 성무일도를 위한 오르가눔 대전』(Magnus liber organi Graduali et Antiphonario)이란 책을 성스러운 의식을 고양시키기 위해 만들었다. 이 책은 페로탱 선생 시대까지 사용되었으며 …
유학생의 글귀로 알 수 있는 것은 바로 12세기의 위대한 두 명의 작곡가의 이름과 업적입니다. 이 두 작곡가는 파리의 노트르담 성당을 기점으로 활동했던 사람들로, 이들이 남긴 다성음악의 양식을 파리양식(혹은 노트르담 양식)이라고 합니다.
1) 레오냉(Leonin, 활동시기 1150년 경 ~ 1201년 경)
레오냉은 유학생의 글귀 이외에서 언급된 바가 없어 잘 알려지지 않았던 작곡가였으나 최근 연구에 의해 레오냉의 삶이 조금 더 자세히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그는 노트르담 성당에서 교육을 받았고, 파리 대학교에서 학위를 받은 후에 성당의 살림을 관장하는 행정관이 되었습니다. 그는 행정관이라는 사무직과 시인이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었지만, 무엇보다 작곡가로서의 행보가 더욱 뛰어났습니다. 그는 전례력에 맞춰 일 년 동안 사용할 수 있는 미사와 성무일도의 성가 중 응답식으로 불렀던 성가들을 2성부 오르가눔으로 작곡했으며, 그의 곡들은 『미사와 성무일도를 위한 오르가눔 대전』에 실려있기는 하지만, 그 당시의 원본은 아닙니다. 레오냉은 응답식 성가의 전체를 모두 다성음악으로 작곡한 것이 아니라 성가곡 중에 독창자가 부르던 부분만 다성음악으로 작곡하였고, 합창단이 부르는 부분은 그대로 두었습니다.
이 때부터는 오르가눔의 윗성부를 '두플룸'(duplum,더블)이라 하고, 성가 선율 성부를 '테노르'(tenor)라고 불렀습니다. 레오냉 이전의 음악이론가들은 오르가눔 작곡에 나타나는 두 가지의 양식을 주로 언급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순수 오르가눔'(organum purum)'과 '디스칸투스(discantus)' 입니다. 먼저 순수 오르가눔은 원래 성가의 음을 각각 길게 노래하는 테노르 성부 위에 멜리스마 양식의 두플룸으로 된 것입니다. 디스칸투스는 두 성부가 리듬형을 사용해 비교적 빠르고 규칙적인 박자감이 있도록 진행하는 것입니다. 이 디스칸투스 부분은 '클라우줄라(clausula)'라고 불렀으며, 레오냉 이후의 작곡가들은 기존의 것을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클라우줄라들을 주로 작곡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어떤 양식을 어디에 사용하는지에 대한 것은 작곡가가 임의로 정하는 것이 아니라 기초가 되는 성가에 따라 결정됩니다.
단성 성가에서 실러블적인 부분은 순수 오르가눔 양식으로 사용했고, 멜리스마 부분에서는 디스칸투스 양식을 사용합니다. 이것은 아마 멜리스마 부분까지 순수 오르가눔 양식으로 사용할 경우 곡이 길어지게 될 수 있기 때문에 그것을 피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사용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2) 페로탱(Perotin, 활동시기 1200년 경)
레오냉과 마찬가지로 페로텡 또한 잘 알려지지 않은 작곡가입니다. 그가 레오냉의 후계자인 것은 알려져 있지만, 다른 생에에 대한 자료들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페로탱의 작품도 영국에서 온 유학생의 글에서 언급되어 있는데, 그 글에 의하면 페로텡은 레오냉의 『미사와 성무일도를 위한 오르가눔 대전』을 수정, 보완했다고 전해집니다. 또한 레오냉의 클라우줄라를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클라우줄라를 작곡했는데, 이는 클라우줄라가 오르가눔으로부터 독립된 음악으로 간주되어졌음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페로탱은 이 밖에 3성부와 4성부를 위한 오르가눔을 작곡했으며, 곡의 길이도 레오냉에 비해 크게 확장되었습니다. 2성 오르가눔의 윗성부를 두플룸이라고 한 것처럼, 세 번째 성부를 '트리플룸'(triplum), 네 번째 성부를 '콰드루플룸'(quadruplum)이라 합니다.
3) 콘둑투스(conductus)
페로탱이 남긴 작품들에는 라틴어로 된 시를 활용해 2성부와 3성부로 작곡한 작품들이 있는데, 바로 이 곡들을 콘둑투스라고 합니다. 콘둑투스는 기존의 오르가눔 테노르 성부(성가 선율)를 사용하지 않고 새롭게 작곡된 테노르를 사용했기 때문에 노트르담 악파와는 구별됩니다. 콘둑투스는 각 성부들 간에 리듬 진행이 거의 비슷한 음가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오르가눔과 비교해보면 콘둑투스는 모든 성부가 거의 같은 리듬으로 진행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또한 콘둑투스는 실러블적인 양식을 사용하고 있고, 여러 절들을 갖는 유절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모든 성부가 비슷한 실러블 양식으로, 그리고 유사한 리듬으로 움직이게 됩니다. 이러한 것들 때문에 현대의 학자들에게는 하나의 양식을 의미하는 용어로도 사용되어 '콘둑투스 양식'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가사는 성경에서 가져온 것이 아니라 새롭게 만들어진 가사인데, 그럼에도 내용은 종교적이었기 때문에 미사 이외에 진행되는 종교 의식에 콘둑투스의 음악이 사용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콘둑투스는 1160년부터 1240년에 융성했지만, 이후에 모테트가 등장하면서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 두플룸 : 오르가눔의 윗 성부
▶ 테노르 : 성가 선율 성부
▶ 디스칸투스 : 그레고리오 성가의 멜리스마 부분, 클라우줄라라고 부름
▶ 콘둑투스 : 라틴어로 된 시를 사용해 2성부, 3성부로 작곡한 작품
출처 : 새 들으며 배우는 서양음악사. 허영한 외 6명 공저. 심설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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