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론

르네상스시대 음학미학가 2/2(2023.07.03)

작은대학교 2023. 7. 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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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작은대학교입니다.

 

오늘은 르네상스시대의 마지막 시간으로 르네상스시대에 활동했던 인물을 중심으로 서술하고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4. 조세포 차를리노(Gioseffo Zarlino, 1517년 ~ 1590년)

 

출처 : Gioseffo Zarlino - Wikipedia/조세포 찰리노

  차를리로는 보에티우스의 천체음악론을 원래의 것, 즉 피타고라스의 방식으로 다시 되돌아보면서 음악과 수의 관계를 강조했습니다. 그는 화성들의 관계를 수로 풀어 새로운 화성학 이론을 제시했는데, 그것은 그의 저서 『음악의 가르침』(Institutione harmoniche, 1558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가 중요시 했던 것은 화성이었습니다. 그는 전해 내려오던 여러 선법들을 두 가지로 간단하게 정리했는데, 그것이 장조와 단조입니다. 이런 분류로 인해 화성학의 새로운 길을 열게 되었습니다. 그는 장조와 단조가 가지고 있는 심리적인 작용에 대해 다음과 같이 생각하였습니다. 장음계는 기쁨, 그리고 단음계는 슬픔입니다.

 

  그의 감정이론은 가사와 관계되어 착상된 측면이 강합니다. 그는 화성을 가사에 맞추어야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슬픈 가사나 기쁜 가사에는 각각 그것에 상응하는 음정이 사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반음계에 대해 분별할 수 없고 연약하다는 이유로 사용을 거부하였습니다. 또한 그는 악기가 주는 감정적인 효과에 대해서도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였는데, 현악기는 약하고 강한 감정을 동시에 쓸 수 있지만, 건반악기는 강한 선으로 인해 그럴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음악이 정신을 북돋아주고, 감정을 조정해주며, 분노를 억제시키고, 시간을 덕스럽게 보낼 수 있도록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언어와 음악을 서로 맞추는 것은 당시의 대위법으로는 구현하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5. 빈첸조 갈릴레이(Vincenzo Galilei, 1520년 ~ 1591년)

출처 : Vincenzo Galilei: Reshaping the Sonic Universe (interlude.hk)/빈첸조 갈릴레이

 

  빈첸조 갈릴레이는 우리가 잘 알고있는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아버지입니다. 그는 중세시대가 학문과 예술을 위한 암흑시대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여 이 시기를 극복하는 것은 고대 그리스의 문화를 되찾는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는 고대 그리스의 음악이론을 연구하면서 음악과 관계된 여러 요소들을 새롭게 정리하였습니다. 그에게는 음악의 상위에 있던 것이 언어였고, 그로 인해 언어가 가진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음악이 하는 일이였습니다. 그는 그리스의 학자들에 의존하면서 이런 주장을 펼쳤습니다. 그는 음악작품이 일정한 감정적 성격을 가지고 있고, 그 음악을 듣는 사람들은 이것을 이해하며 받아들인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음악연주의 중심적인 과업은 감정으로서의 인간 본성을 모방하는 일이며, 듣기에서 중요시되어야 할 것은 그 감정을 알아들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갈릴레이는 자신의 스승인 차를리노와는 반대되는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차를리노가 다성부의 성악곡을 좋은 것이라고 했지만, 갈릴레이는 가사의 낭독에 있어 단성부만이 표현력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그의 주장은 다성부 음악이 고대 그리스의 음악적 이상과 어긋나기 때문에 등장한 것이었습니다. 이 입장은 오페라의 태동에 이론적 바탕을 주게된 주요한 주장으로 이것으로 인해 당시 전통적 음악과는 어긋나는 혁신적인 음악이 생겨나기도 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모노디입니다. 또한 차를리노가 다성부 음악에 의거해 화성학을 주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차를리노의 주장은 모노디를 더욱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즉 차를리노의 화성학과 갈릴레이의 표현력이 만나 모노디를 발생시켰고, 모노디로 인해 오페라가 탄생할 수 있는 배경이 완성된 것입니다.

 

  갈릴레이는 그리스의 모노디 음악의 예시를 자기가 직접 만들어 제시하였습니다. 그의 <예레미야의 탄식가>는 단테의 신곡 중 우고리노의 탄식가에 음악을 붙인 작품입니다. 그는 이 노래들을 카메라타운동의 주역인 바르디(Bardi)백작의 집에서 실연하기도 했습니다.

 

  차를리노는 갈릴레이의 음악에 반대하는 이론을 폈지만, 갈릴레이는 음악적 법칙이 자연스러운 수학적 원리에 의거해야 한다는 차를리노의 생각을 다시 반박했습니다. 갈릴레이의 생각은 차를리노의 주장이 이제 없어져야 할 중세적 현학취미라는 것입니다. 그 대신에 감각에 의한 지각과 음악적 체험에 따른 단순한 방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따라서 그는 스스로 대위법 책을 집필하여 까다로운 이론들은 모두 빼고 단순하고 중점적인 것들만 모아놓았습니다.

 

  차를리노는 불협화음과 반음계의 자유로운 사용을 조장했는데, 이것은 새로운 음악적 가능성을 열게 된 계기가 되었고, 오페라의 작곡에서는 '제2작법'(몬테베르디)으로 받아들여져 사용되었습니다. 또한 갈릴레이의 단성부 성악곡과 반음계의 유연한 사용에 대한 그의 주장은, 그가 생각했던것과는 다르게 반음계적 다성음악(제수알도(Gesualdo) 등의 마드리갈)을 크게 번창시키게 되었습니다.

 

6. 루터(Martin Luther, 1483년 ~ 1546년)

출처 : 포브스 (joins.com)/마틴 루터

  루터에게 있어 음악은 하나님의 창조물이었습니다. 그는 음악이 천지창조 때와 같이 창조되어진 것으로 보았고, 이것이 인간의 예술(기술)로 더욱 빛나게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모든 음악을 하나님의 창조물로 파악해, 기악도 교회에서 허락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소리의 세 단계를 설정하고, 그 중 예술음악을 가장 높은 위치에 두었습니다. 그가 주장한 세 단계의 소리는 첫째, 자연의 소리(새소리 등), 둘째, 사람의 목소리(말을 전달할 수 있기 때문에 더 높은 단계), 셋째, 예술음악(이렇게 닦여진 음악을 통해 하나님의 지혜를 감탄하고 예감할 수 있으므로)입니다.

 

  루터는 음악과 감정을 굉장히 밀접한 것으로 보았습니다. 그는 음악을 듣고 느끼는 기쁨을 죄없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루터는 찬양이 언어를 뛰어 넘어서서 환호의 외침이 될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찬양 뿐만 아니라 세속음악에서도 이런 것들이 일어날 수 있는데, 교회음악에서 그 가능성이 더 크다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그는 음악의 감정적 능력을 통해 정신적, 영적 침체를 없앨수도 있다고 보았습니다.

 

  루터는 세상의 질서와 음악을 서로 연관시켰습니다. 그는 음악이 문법과 함께 세상을 묶는 힘과 질서를 가지고 오는데, 이 질서는 동시에 '신적인 질서"(Ordinationes Dei)'라 보았습니다. 이 질서는 내적인 질서로, 이것과 비견되는 외적인 질서는 국가의 정치구조나 부부관계라고 보았습니다. 루터가 활동했던 당시나 그 이전에는 루터만큼 음악을 높게 평가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이처럼 루터의 음악에 대한 평가로 인해 독일 음악이 더욱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출처 : 음악미학. 홍정수, 오희숙 지음. 음악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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