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작은대학교입니다.
지난 시간에는 리게티 죄르지의 음색작곡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그럼 오늘은 리게티 죄르지 이외의 음색작곡은 누가, 어떻게 사용했는지 알아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② 그 밖의 음색작곡
클러스터기법 사용 이외에도 음색작곡을 위한 음악어법들은 작곡가에 따라서 다양하게 사용되었으며, 그것은 리게티 죄르지나 동시대에 활동했던 폴란드 출신 작곡가인 크시슈토프 펜데레츠키 등에 의해 구체화되었고, 그것은 그 작품에서 잘 나타나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는 크시슈토프 펜데레츠키의 도나우에싱엔 음악제(Donaueshinger Musiktage) 위촉 작품인 《아나클라시스》(Anaklasis, 1959년 ~ 1960년)와 《히로시마 희생자를 위한 애가》(Threnody. To the Victims of Hiroshia, 1960년)가 있습니다.
크시슈토프 펜데레츠키도 전자음악에서의 음향 실험을 바탕으로 전통적 악기의 음색작곡을 했습니다. 그의 음색작곡은 그래픽 기보법, 기보법을 통한 우연성, 미분음의 사용, 악보의 서문에 기재된 새로운 연주법과 같은 내용으로 리게티 죄르지와는 또 다른 내용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래 제시된 보기에서 알 수 있듯이, 그의 음색작곡의 특징인 미분음의 사용, 플래절렛과 같은 연주법을 통한 음색 형성, 정확한 아티큘레이션이 제시되지 않은 연주를 했을 때 얻어지는 우연성 등이 한 눈에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탈리아 출신 작곡가 지아친토 셀시(Giacinto Scelsi, 1905년 ~ 1989년), 모튼 펠드만(Morton Feldman, 1926년 ~ 1987년), 에스토니아(구 소비에트 연방) 출신 아르보 페르트(Arvo Part, 1935년 ~ ) 등의 작곡가들 또한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음색작곡을 하였으며, 이러한 경향은 1980년대까지 지속되었습니다. 음색작곡을 했던 작곡가들이 대부분 동유럽과 러시아, 미국 등과 같은 서양음악의 본토라고 할 수 없는 지역에서 나왔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음색작곡 자체가 이성적이고 계획적인 총렬주의적 사고에 대한 거부로서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제3 세계 출신 작곡가들이 음악사에 이름을 올리게 된 계기는 음악사라는 거대한 역사적 흐름에 의해 나타난 현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작곡가인 윤이상(Isang Yun, 1917년 ~ 1995년)이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작곡한 작품 전반에서 보여주었던 음악언어는 '정중동'이라는 도교 사상과 연결되어 해석하는 '중심음기법'(Haupttontechnik)입니다. 이 기법 역시 음색작곡을 구현했던 여러 기법 중 하나입니다. 《예악》(Reak, 1966년), 《낙양》(Loyang, 1962년/1964년), 대편성 관현악을 위한 《차원》(Dimensionen fur grobes Orchester, 1971년) 등과 같은 작품에서 볼 수 있는 다이내믹의 잦은 변화와 중심음, 그리고 그 둘의 결합을 통해 중심음향을 채색하는 주변음인 시김새의 사용으로 얻는 음향표면은 윤이상이라는 작곡가를 음색작곡가의 대열에 합류시키게 되었습니다. 윤이상은 "아시아 음악에는 원래 전개라든가 형식적 구조가 없고, 단지 순간, 즉 다양하게 조형된 음향적 현상들만이 존재하며 그것이 바로 이 음악의 생명입니다. 말하자면, 형식이 아니라 지속에 대한 관계가 더욱 중요시 된다는 것입니다"라는 진술을 했으며, 그 진술을 통해 그가 어떻게 음색작곡을 생각하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 출처 : 새 들으며 배우는 서양음악사. 허영한 외 6명 공저. 심설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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