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작은대학교입니다.
지난 시간에는 독일 루터교회에서 코랄이 어떻게 발전되어 나갔는지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럼 오늘은 독일이 아닌 그 밖의 나라들과 개신교가 아닌 가톨릭교에서는 어떻게 음악이 발달되었는지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겠습니다.
2) 그 밖의 나라들
프랑스, 스위스, 네덜란드에서는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의 영향이 독일과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습니다. 울리히 츠빙리(Ulrich Zwingli, 1484년 ~ 1531년)나 장 칼뱅을 비롯한 종교개혁가들은 미술과 음악은 믿음에 방해가 된다고 믿었기 때문에 교회음악을 엄격하게 통제하였습니다. 특히 츠빙리는 성경에 명시되지 않은 것들을 교회에서 일체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르간 또한 제거되었습니다. 이들의 이러한 사상은 스위스 북부지방까지 퍼져나갔고, 남부지방은 구교로 남게 되었습니다.
① 살터(Psalter)
칼뱅은 교회에서 성경에 없는 가사를 노래하는 행위를 금지시켰기 때문에 칼뱅파의 교회에서는 성경의 시편(psalm)밖에 부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칼뱅파 교회음악의 핵심이 되는 노래 모음집 『살터』를 1542년에 출판하였는데, 이 책에 수록된 노래들은 주로 운문적으로 번역한 시편에 새로 작곡된 선율이나 세속 혹은 성가의 선율을 붙인 것들이었습니다.
칼뱅파의 교회에서는 음악을 장식적으로 꾸미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살터 선율들은 단순하게 진행합니다. 따라서 실러블적인 형태의 살터 선율은 독일 코랄과 같이 더 큰 규모의 성악이나 기악곡으로는 발전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곡들은 음악사적으로 중요하게는 다루어지지 않지만, 이 단순함이 대중에게 인기 있는 비결이고, 예배음악으로서는 아주 우수한 작품들입니다. 주로 순차진행하는 형태의 선율들은 옛 성가적인 면이 있고, 악구들은 여러 가지 변화 있는 리듬패턴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칼뱅파 교회의 교인들은 교회 안에서는 찬송가를 단성으로 불러야 했지만, 일반 가정에서 예배를 드릴 때는 다성으로 부를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클로드 구디멜(Claude Goudimel, 1514, 1520년 경 ~ 1572년)을 비롯한 프랑스의 작곡가들은 다양한 찬송가들을 수직화성적인 4 ~ 5성부 곡으로 편곡한 후에 출판하였고, 이것들은 각각의 나라의 언어로 번역되어 보급되기 시작했습니다. 얀 피테르준 스벨링크(Jan Pieterzoon Sweelinck, 1562 ~ 1621년)도 제네바의 살터 선율들을 기초로 편곡해 여러 양식의 5 ~ 8성부로 된 곡들을 출판하였는데, 이후 이 곡들은 네덜란드 다성 종교음악의 기념비적인 곡들이 됩니다.
3) 영국
영국이 로마 카톨릭교회와 갈라진 것은 종교적인 어떤 이유보다는 헨리 8세의 개인적인 이혼, 그리고 정치적인 문제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헨리 8세는 마틴 루터의 개신교에 우호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영국의 교회에서는 '교황이 없는 카톨릭 의식'을 사용하여 예배를 드렸습니다. 따라서 종교개혁 이후에 바로 의전이나 음악에는 큰 변화가 없었지만, 1534년에 헨리 8세가 정식으로 카톨릭과의 결별을 선언한 후에 영국 내의 구교음악 필사본들이 많이 파손되었고, 1536년부터는 영어로 번역된 성서를 사용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또한 1548년에는 에드워드 6세(Edward Ⅵ, 재임기간 1547년 ~ 1553년)가 성직자들에게 영어로 된 가사는 "각 음절에 한 음씩 평이하고 분명하게 수직화성적으로" 부르라는 명령을 내리기도 하였습니다. 이후 1549년에 선포된 <통일령>(Act of Uniformity)은 모든 공공 예배에 사용되는 음악을 『영국 기도문』(English Book of Common Prayer)에 수록된 노래만 사용하도록 제한하였습니다.
① 서비스와 앤썸
영국은 자신들만의 종교인 성공회를 탄생시킴에 따라 영국교회의 음악들도 자신만의 색다른 체제를 갖추기 시작하였습니다. 먼저 영국교회 음악은 구교음악에서 미사에 해당하는 서비스(Service/예배)와 모테트에 해당하는 앤썸(Anthem/찬송가)로 나뉘어집니다. 그리고 서비스에는 미사와 마찬가지로 가사가 절기에 따라 바뀌는 부분(고유문)과 바뀌지 않는 부분(통상문)이 있습니다. 또한 대위적이면서 멜리스마적인 선율을 사용하는 대 서비스(Great Service)와 실러블적이면서 수직화성적인 선율을 사용하는 소 서비스(Short Service)로 구분됩니다. 앤썸에도 역시 짜임새가 대위적이면서 합창단이 부르는 완전 앤썸(Full Anthem)과 반주를 수반한 독창과 합창이 교대로 부르는 운문 앤썸(Verse Anthem)이 있습니다. 악보상으로 완전 앤썸은 무반주곡처럼 보이지만, 실제 연주에서는 반주가 있었던 것으로 추측되고 있습니다.
2. 카톨릭 음악
오랫동안 로마의 카톨릭 교회 내에서는 교회의 행정이나 교리, 음악을 개혁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특히 음악분야에서는 로마의 교황청이 교회 내에서 연주되고 있던 다성음악들을 시정하거나 폐기할 것을 때때로 권고하고 있었지만 작곡가와 연주자들은 이런 교회의 지시들을 회피해왔었습니다. 그러나 16세기가 되면서 종교개혁이나 외부로부터의 침략으로 인해 카톨릭교는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1527년에 스페인과 카를로스 5세(Carlos Ⅴ)에게 고용된 독일의 용병들이 로마를 점령하고 약탈하면서 그곳에 있던 고위 성직자들의 세속화된 사치한 생활에 크게 타격을 받았습니다. 또한 북쪽에서 일어난 종교개혁과 이로 인해 나타난 여러 나라들의 교황권으로부터의 이탈 때문에 카톨릭교의 내부에서 그에대한 대응 방안들이 절실해지기 시작했습니다.
① 트리엔트 공의회(Council of Trent)
1542년 5월 바오로 3세(Pope Paul Ⅲ, 재임기간 1534년 ~ 1549년)가 베네치아에서 43마일 정도 떨어진 알프스 지방의 트리엔트에서 호의를 열기 위한 공고를 냈습니다. 트리엔트 공의회는 여러 번 중단이 되었고, 방해를 받으면서 1563년까지 진행되었고, 이 시기 동안 교황이 네 번이나 바뀌었습니다. 이 회의의 주된 목적은 교회 내의 부패를 없애고 그동안 악용되었던 교리를 바로잡기 위한 것으로 비중은 적었지만 교회음악에 대한 개혁 논의도 진행되었습니다.
여기서 진행되었던 교회음악에 대한 우려는 먼저 샹송을 변용하거나 세속선율들을 정선율로 사용한 미사들에서 볼 수 있는 세속성, 둘째, 성부들의 모방대위적 짜임새로 인해 가사의 전달이 불가능했던 점, 셋째, 각 지방마다 서로 다른 부속가(Sequentia)들을 사용함으로써 교회음악에 통일성이 없던 점, 넷째, 시끄러운 악기들의 과다한 사용, 마지막으로 연주자들의 틀린 발음과 불경스러운 태도, 부주의함이었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음악에 대해 취한 직접적인 제재는 교회에서 연주될 수 있는 부속가를 4개로 제한한 것밖에 없었습니다(이후에 1곡을 추가). 그 이외의 음악적인 것에 대해서는 다만 "신의 집이 진정한 기도의 집"으로 불릴 수 있도록 "순수하지 않거나 음란하고 세속적인 음악"과 "교육적이지 못한 언어"는 교회 내에서 자중할 것을 당부하는 정도로 그쳤기 때문에 모방적 다성음악 또는 세속선율의 사용이 금지되지는 않았습니다.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발표한 내용 중 음악에 관한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미사를 노래로 부르거나 또는 노래 없이 악기만으로 연주하거나 그것이 적당한 속도로 정확하게 연주될 때에는 듣는 사람들의 귀와 마음 속에 평온함을 얻을 수 있도록 모든[음악적인] 요소들이 배열되어 있어야 한다. 미사가 노래와 오르간으로 연주될 때에는 세속적인 것을 배제하고 찬미가와 성스러운 기도만을 불러야 한다. 노래의 양식은 아무 의미 없이 귀를 즐겁게 하려는 것보다는 가사가 모든 사람들에게 확실하게 이해될 수 있도록 구성되어서 듣는 이의 마음이 거룩한 조화에 대한 갈망에 이끌리고 축복 받은 이의 기쁨에 대한 관조로... 또한 교회에서 노래 부르거나 오르간연주를 할 때에는 일체의 순수하지 않거나 음란한 음악은 추방해야 한다.
이러한 흐름에 호응했던 그 당시의 몇몇 작곡가들은 노래를 부르기 쉽게 선율을 순차진행시키고 부드럽게 움직이도록 하고, 리듬이 단순하고 규칙적인 곡들을 작곡하였습니다. 이 곡들은 성부들이 같은 리듬으로 움직이는 호모포니적인 부분과 모방적인 부분이 섞인 짜임새로 구성되어 있었지만, 모방적인 부분에서도 가사를 잘 알아들을 수 있도록 고안해 작곡하였습니다. 또한 이들은 무지카 픽타의 적용 이외에는 음악적인 표현을 위한 반음계를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즉 이들은 음악의 미적인 측면보다는 미사를 보좌하는 기능을 더욱 강조하여 작곡한 것으로, 지오반니 피에르루이지 다 팔레스트리나와 오를란데 데 랏수스, 토마스 루이스 데 빅토리아 등이 여기에 속하는 작곡가입니다.
▶ 서비스 : 예배, 고유문과 통상문이 존재
▶ 대 서비스 : 대위적, 멜리스마 선율 사용
▶ 소 서비스 : 실러블, 수직화성적 선율 사용
▶ 앤썸 : 찬송가
▶ 완전 앤썸 : 대위적 짜임새, 합창단이 부름
▶ 운문 앤썸 : 반주를 수반한 독창과 합창이 교대로 부름
출처 : 새 들으며 배우는 서양음악사. 허영한 외 6명 공저. 심설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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