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음악사

후기르네상스 종교음악 3/4(2022.06.27)-팔레스트리나

작은대학교 2022. 6. 27.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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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작은대학교입니다.

 

지난 시간에는 독일 이외의 나라들에서, 특히 영국은 어떻게 종교음악이 발달되었는지 알아보았고, 개신교가 아닌 카톨릭교에서는 어떤 흐름이 진행되고있는지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그럼 오늘은 지난 시간에 이어서 카톨릭교의 음악을 다시 꽃피웠던 대 작곡가 지오반니 피에르루이지 다 팔레스트리나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지오반니 피에르루이지 다 팔레스트리나(Giovanni Pierluigi da Palestrina, 1525, 1526년 경 ~ 1594년)

 

출처 : 지오반니 팔레스트리나(1525? - 1594) : 네이버 포스트 (naver.com)/지오반니 피에르루이지 다 팔레스트리나

 

지오반니 피에르루이지 다 팔레스트리나(이하 팔레스트리나)는 로마에서 가까운 팔레스트리나라는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그는 항상 본명보다는 그가 태어났던 마을의 이름으로 불리우곤 했습니다. 그는 어릴 때 로마에서 음악교육을 받았고, 1551년에는 로마에 있는 성 베드로(St. Pietro)성당에 부속된 줄리아 예배당(Cappella Giulia) 성가대의 지휘자를 역임하였습니다. 1555년 1월에는 교황 공식 교회의 성가대원으로 임명되었지만, 그 해 9월에 새로 부임하게 된 교황 바오로 4세(Pope Paul Ⅳ, 재임기간 1555년 ~ 1559년)가 교회에서는 독신자만이 일할 수 있다는 규칙을 엄수해야한다고 말했기 때문에 사퇴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1571년에 다시 줄리아 예배당의 음악감독으로 부임하게 되었고, 1594년 그가 사망할 때 까지 그곳에서 일하였습니다.

 

1577년 11월 교황 그레고리오 13세(Pope Gregory ⅩⅢ, 재임기간 1572년 ~ 1585년)는 팔레스트리나와 안니발레 초일로(Annibale Zoilo, 1537년 경 ~ 1592년)에게 미사에 사용되는 음악을 모은 책이었던 『그라두알레』를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권고한 사항을 근거로 다시 쓰는 임부를 부여하였습니다. 팔레스트리나는 이 작업에 착수했지만, 재정문제로 인하여 중단되었고, 그가 사망할 때까지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 작업은 다른 사람들에 의해 계속되어지게 됩니다. 

 

전해지는 이야기들에 따르면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다성음악을 모두 없앨 것을 촉구할 때, 팔레스트리나는 다성음악이 성스러움이 모자라거나 가사의 전달을 방해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6성부 미사곡을 작곡하여 성직자들에게 들려주고 이해시켜주려고 노력했다고도 합니다. 바로 이 미사는 1567년에 출판된 《미사 마르첼리우스 교황님》(Missa Papae Marcelli)인데, 이 전해지는 이야기가 진짜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팔레스트리나는 곡을 많이 작곡했던 작곡가로, 지금 현재까지 알려진 작품은 104개의 미사와 400여 개 이상의 모테트, 그리고 많은 봉헌송(Offertorium), 마그니피카트, 찬미가 등이 있고, 140여 개의 세속적이거나 종교적인 내용을 담은 마드리갈을 작곡하였습니다.

 

지오반니 피에르루이지 다 팔레스트리나
1525년 경 로마 근교의 팔레스트리나에서 출생한 것으로 추정
1537년 로마의 성 마리아 마지오레성당의 소년합창단원
1544년 팔레스트리나의 성 아가피토성당의 오르간 주자
1547년 루크레치아 고리(Lucrezia Gori)와 결혼
1551년 로마 성 베드로 성당 줄리아 예배당의 성가대장
1555년 로마교황의 시스티나교회 성가대원, 성 라테란 성당의 음악감독
1561년 ~ 1571년 성 마리아 마지오레성당의 음악감독, 음악적 명성과 영향력이 생기기 시작함. 모테트와 미사곡 모음집 출판
1571년 줄리아 예배당의 음악감독
1572년 ~ 1580년 로마에 흑사병 유행, 부인과 가까운 친척을 잃음
1577년 교황 그레고리오 13세로부터 트리엔트 공의회의 권고 사항에 의거하여 미사음악을 수정할 것을 위탁받음
1581년 비르지니아 도르몰리(Virginia Dormoli)와 재혼
1594년 2월 2일 로마에서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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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팔레스트리나 양식

팔레스트리나는 평생 로마에서 카톨릭 교회와 연을 맺으면서 살았습니다. 그래서 그의 음악에서는 그레고리오 성가의 느낌처럼 로마 카톨릭 교회의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습니다. 특히 그의 종교음악은 보수적이고 객관적이면서 심각하기 때문에 미사 통상문의 가사와 아주 잘 어울립니다. 그는 누구보다도 카톨릭 교회의 근엄하고 보수적인 정신을 잘 파악했던 작곡가였기 때문에 다성 종교음악의 표본으로 '팔레스트리나 양식'을 꼽습니다. 그래서 그의 음악은 카톨릭 종교음악 양식의 "최고의 완성품"이라고 일컬어지기도 합니다. 팔레스트리나의 작품들은 요한 요셉 푹스(Johann Joseph Fux, 1660년 ~ 1741년)를 비롯해 최근까지도 많은 이론가들이 대위법 책에서 팔레스트리나 양식을 다루어왔습니다. 그래서 바흐 이전의 작곡가로 팔레스트리나만큼 잘 알려지고 그 기법이 연구되어진 작곡가는 없을 것입니다.

 

네덜란드의 모방대위법적인 양식에 기초를 둔 팔레스트리나의 음악적 양식들은 그의 미사에 잘 녹아들어가 있습니다. 어떤 악장에서는 가사의 각 구절마다 새로운 동기가 도입되고, 이를 다른 성부에서 차례차례 모방하는 모방기점기법이 사용되기도 합니다. 또 다른 악장에서는 모방적인 부분과 호모포니적인 부분이 교차되면서 변화를 꾀하기도 합니다. 그는 또한 가사의 정확한 전달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기 때문에 다성적인 짜임새가 가사의 전달을 방해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당시 유행하던 반음계주의를 철저하게 회피했을 뿐만 아니라 무지카 픽타 이외의 반음계는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음악들은 부드럽고 투명한 음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선율선 또한 자주 3화음적인 진행을 보이고, 베이스도 4도와 5도 도약이 많기 때문에 선법에 기초한 곡이지만 조성적인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② 모테트

팔레스트리나의 모테트에서는 미사만큼 그의 탁월한 기량이 돋보이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지만, 그의 모테트들도 음악적으로는 아주 훌륭하며, 다양한 기법과 감정의 변화들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팔레스트리나의 약 400여 개에 달하는 모테트의 2/3정도는 4 ~ 5성부로 구성되어있고, 나머지 곡들은 모두 8 ~ 12성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가사는 대부분 안티폰이나 응답성가(Responsorium)에 기초했지만 선율은 거의 대부분을 본인이 작곡한 것입니다. 또한 그는 카논과 같은 인위적인 기법을 통해 곡을 구성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의 곡들은 순수한 음악적인 설계에 의해 작곡되거나, 가사의 내용에 따라 자유롭게 작곡되었기 때문에 대부분 모방대위적인 기법을 사용했다는 것 이상의 공통성은 찾아보기가 어려울 정도로 그 형태가 매우 다양하게 나타나있습니다. 비교적 초기에 속하는 그의 4성부 모테트는 전통적인 성부 진행과 음악구조, 서로 잘 융합되고 있는 성부, 그리고 세심하게 억제된 불협화음 등 르네상스 시대 다성음악의 표본으로 꼽힙니다.

 

③ 미사

팔레스트리나는 보수적이면서도 종교적인 작곡가였기 때문에 미사의 80%가 그레고리오의 성가 선율이 사용된 작품이었습니다.그러나 그는 당시의 작곡기법을 모두 활용하여 여러가지 유형의 미사들을 작곡하였습니다. 현존하는 그의 미사 작품들 중 모테트를 인용하여 작곡한 패러디 미사가 53개인데, 이 모테트들은 대부분 성가에 기초해 작곡된 것입니다. 또한 성가나 세속선율을 변형하여 사용했던 변용미사도 35개가 있으며, 그 중에서 11개는 그레고리오 성가가 아닌 다른 평성가를 변용하여 작곡한 것입니다. 그의 7개의 정선율미사는 세속선율을 사용한 《미사 무장한 남자》와 6음음계를 사용한 《미사 웃 레 미 파 솔 라》(Missa Ut re mi fa sol la)를 빼고는 모두 그레고리오 성가를 정선율로 사용한 작품입니다. 또한 《미사 카논》(Missa Ad fugum)과 같이 카논 기법을 사용한 미사가 5개이고, 《미사 마르첼리우스 교황님》 처럼 자유롭게 작곡된 작품도 6곡이 있습니다.

 

팔레스트리나의 양식은 네덜란드 다성음악 전통을 더욱 세련되게 만들어낸 양식입니다. 그와 그의 제자들은 17세기부터 19세기까지 유럽의 여러 지역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성스러운 음악으로 느껴지는 '구(舊) 양식'(stile antico)의 표본으로 많은 종교음악 작곡가들의 모방 대상이 되었습니다. 몬테베르디도 팔레스트리나의 음악이 자신의 음악보다 교회에 더 잘 맞는다고 했듯이, 팔레스트리나의 음악은 '카톨릭적'음악의 이상을 구현한 것으로 간주됩니다.


출처 : 새 들으며 배우는 서양음악사. 허영한 외 6명 공저. 심설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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