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론

18~19세기 음악미학 자연의 모방 1/4(2023.07.19)

작은대학교 2023. 7. 19.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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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작은대학교입니다.

 

오늘은 18~19세기의 음악미학적 흐름 중 하나인 자연의 모방을 가지고 서술해 볼 예정입니다. 먼저 자연의 모방과 관련된 시대적 배경을 서술하고 이후에 자연의 모방을 통한 음악적 활동을 했던 사람들을 중심으로 서술해보도록 하겠습니다.


Ⅰ. 자연의 모방

 

1. 시대적 배경

 

출처 : 테오도어 아도르노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테오도어 아도르노

 

  예술사 안에서 '모방'이라는 말처럼 끈질긴 생명력을 지닌 단어는 드물 것입니다. 예술사에서 말했던 대로라면 미학자와 예술가들은 억지로라도 자기의 생각을 모방과 연결시키기 위해 노력한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의심스럽습니다. 고대 그리스에서 시작된 이 용어는 현대의 미학에도 여전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독일의 철학자이자 피아니스트, 음악학자, 작곡가였던 테오도어 아도르노가 주장한 모방(Mimesis)이 대표적인 예로, 그의 개념은 모방이란 것을 굉장히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입니다. 그는 예술이 사실을 모방할 때 예술가의 유토피아적인 생각(희망)이 함께 내포되어 나타난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현대화된 모방론의 일종입니다. 물론 모방론은 현대 음악에 있어 아주 드물게 보이는 현상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16~18세기에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모방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여기서 다루는 모방이라는 개념은 16~18세기의 모방입니다. 이 시기에는 음악이 예술이라는 인정을 받기 위해선 자연의 모방으로 나타나야만 했습니다. 즉 음악은 예술의 본질로 봤던 자연을 이상화시킨 것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입니다. 자연이라는 용어는 첫째, 외면적 자연과 둘째, 인간의 내면(감정, 정신상태)를 말했는데, 외면적 자연은 그림음악(자연의 음향을 음악적으로 유사하게 재구성하거나, 어떤 이야기를 음악화 하는 것)을, 인간의 내면은 감정이론이라고 불려졌습니다. 18세기 후반이 되자 자연의 모방에 대한 원칙이 점차 바뀌기 시작했는데, 그 이유는 단순한 모방이 이제는 자연과의 경쟁으로 해석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즉 모방되어야 하는 것은 '그냥 존재하는 자연'이 아니라 '만들어 내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자연'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18세기 이후의 모방미학은 결국 천재미학(Genieasthetik)으로 넘어가게 됩니다. 즉 천재는 자연적으로 주어진 것이으모 독자적으로 일을 할 수 있는 일종의 자연으로 간주되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18세기의 모방이론을 좀 더 자세히 보면, 조금 다른 견해들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영국의 애비슨(18세기 중엽)은 모방을 열등한 개념으로 보았습니다. 그는 음악이 어떤 내용적인 것을 표현해야 한다고 보았기 때문에, 음악은 시가 원하는 방향을 잘 따라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가 말하는 음악의 모방이란 '묘사음악적', '그림음악적' 성격의 것입니다. 또한 그레트리(18세기 말)는 모방을 언어적인 의미 그대로 이해를 해서 '창조적인 것'과 반대되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그는 단순히 외부의 재현으로서의 모방을 말했고, 자연의 모방에 대해서는 말하고 있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출처 : 앙드레 그레트리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앙드레 그레트리

 

  이에 비해 대개 음악을 자연의 모방이라고 말했던 사람들은 매우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했습니다. 18세기에 예술학이 미학으로 발전할 수 있게 된 것은 바로 이런 사람들의 견해 때문이었습니다. 이런 발전의 시작은 프랑스와 영국에서 비롯된 것인데, 뒤보와 바퇴가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이 두 사람은 음악이 자연의 모방인 이유는 바로 감정의 모방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즉 인간(감정)을 자연으로 보았던 것입니다. 이런 관점은 '음악은 감정을 표현한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반면 뒤보와 바퇴는 독창적인 음악을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을 자연이 허락한 천재로 보았습니다. 따라서 모방, 자연은 곧 감정, 천재라는 밀접한 상관관계를 이루었고, 그렇게 이해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사고는 창조성을 장려하는 경향으로 방향을 잡게 되었는데, 여기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모방이라는 개념보다 자연이라는 개념입니다. 즉 자연 모방론이 곧 자연론이 되어버린 셈입니다. 그리고 이 자연론은 사람을 대상으로 했기 때문에 인간론으로도 이해될 수 있는 성격의 것이었습니다. 루소에 따르면 자연이라는 것은 인간이 되돌아가야 할 곳으로, 여기는 외면적 장소가 아니라 인간의 본래적인 모습(본성)입니다.

 

출처 : 장자크 루소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장자크 루소

  영국의 영(18세기 중엽) 또한 위의 프랑스인들과는 조금 다른 관점을 주장했지만, 그 역시 자연의 모방과 창조성을 중요시했습니다. 이런 생각은 영 뿐만 아니라 루소와 칸트 등 주요 사상가 뿐만 아니라 여타의 사람들에게도 광범위하게 나타나는 현상이었습니다. 이런 현상은 우선 미학을 학문으로 출발시켰던 바움가르텐에서 등장한 '자연스런 감성학(미학)'(Naturliche Asthetik)'이라는 단어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이 용어는 인간이 학습을 통해 습득을 하는게 아니라 타고난 것이라는 생각을 포함하고 있는 것입니다. 영의 감성학(미학)도 비슷한 흐름에 속해 있었는데, 그는 이전에 있던 자연에 대한 이해를 전제로 한 것이었습니다.

 

출처 : 장 필립 라모(1683 - 1764) : 네이버 포스트 (naver.com)/장 필립 라모

 

  한편 장 필립 라모 역시 자연의 화성이론이 자연법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것은 감정과는 무관한 자연모방론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화성학이 <자연법적 배음이론>을 통해 증명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런 라모의 생각으로 이후의 많은 음악이론가들이 20세기에 이르기까지 각자 자기의 이론을 배음이론으로 설명하고자 했습니다.

 

  <모방론>은 18세기에 음악이 '감정을 표현해야 한다'는 생각과 결합되어 언어의 내용 표현과 자주 연관되어 언급되는 내용입니다(알가로티, 루소, 칸트, 헤겔 등). 즉 이 시기의 <모방론>은 아직 절대음악의 이론으로 발전된 상태는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모방론>은 음악적 형이상학을 말하는 19세기의 낭만주의자들에게는 잘 다루어지지 않는 장르였습니다(장 폴, 티크, 박켄로더, 호프만, 쇼펜하우어 등). 역설적으로 낭만주의자들이 줄기차게 자연을 언급하는데도 <모방론>은 다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물론 <모방론>을 적극적으로 배척하는 사람들은 절대음악론자들이었습니다. 경제학자 아담 스미스(1770년대)와 칸트의 제자 미카엘리스(1790년대), 음악평론가 한슬릭(1850년대)과 같은 사람들이 대표적입니다. 특히 아담 스미스의 이론은 음악학계에는 잘 알려진 내용은 아니지만, 그는 음악이 자연을 모방하는 예술이라는 점에 대해 전반적인 의문을 제기합니다. 또한 그는 다른 예술의 도움이 없는 것과 기악만의 독자적 음악을 낮게 평가하던 당대의 흐름에 동의하지 않았고, 기악 자체를 대단히 가치가 있는 것으로 평가했던 사람입니다.


▶출처 : 음악미학. 홍정수, 오희숙 지음. 음악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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