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음악사

19세기 말의 음악적 양상 1/9(2023.01.04)

작은대학교 2023. 1. 3.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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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작은대학교입니다.

 

오늘부터는 19세기 말의 흐름을 먼저 집고 가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무래도 후기 낭만주의가 시작되는 시기부터 세계는 각종 전쟁에 휘말리게 되면서 복잡한 양상을 띄게 되는데, 이 때부터 많은 문화가 빠르게 섞이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것들이 생겨나거나, 섞이는 등의 많은 혼란을 야기시키게 됩니다. 하여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이 짧은 시간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는데, 혼란스러움을 좀 정리하고 넘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이 되므로 꼭 정리를 하고 넘어가시길 당부드립니다.


ⅩⅩⅡ. 19세기 말의 음악적 양상

 

19세기는 유럽의 민족주의 시대라고 불려질 만큼 각 나라에서 민족주의 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난 시기이기도 합니다. 특히 독일과 이탈리아에서 일어난 자유와 통합을 위한 투쟁은 민족과 언어를 공유하는 사람들끼리 결합해야한다는 민족의식에 불을 지폈고, 정치적 불안과 혁명은 민족주의 운동에 강한 자극을 주게 되었습니다. 하여 1830년에 일어난 프랑스 혁명은 1848년 파리를 중심으로 확산되어 다른 지역의 민족적 애국심을 자극하기도 하였습니다. 따라서 드레스덴, 부다페스트, 프라하 등 각종 도시부터 시작해 독일, 헝가리, 보헤미아의 자치권과 통합을 위한 열망을 고취시키게 되었습니다.

 

민족적 정체성을 향한 운동은 정치에서 뿐만 아니라 문학과 다른 예술에서도 빠르게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체코어, 헝가리어, 러시아어와 같은 서구 유럽 이외의 주변언어들이 문학을 매체로 크게 관심을 끌게 되었고, 17세기 이래로 유럽을 지배해 왔던 고전문화를 대체하기 시작했습니다. 음악에서의 이런 민족주의적 정신은 앞에서도 살펴본 것과 같이 리하르트 바그너의 독일 신화 찬양, 주세페 베르디의 정치적인 목적을 위한 역사적 소재 사용, 그리고 프레데릭 프랑수와 쇼팽이나 프란츠 리스트처럼 각 지방 특유의 민요나 민속춤을 새로운 재료로 도입시키는 것과 같은 데에서 그 예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19세기 후반 음악의 양상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서유럽 이외의 지역에서 음악이 크게 발달한 것이고, 둘째는 19세기 낭만주의 음악의 주를 이루었던 독일어권 음악이 더욱 더 그 경향을 확장시켜 후기 낭만주의 음악으로 나타나게 된 것이며, 셋째는 서양음악의 전통 안에서 새로운 음향을 추구했던 프랑스에서 자신들만의 독특한 음악을 탄생시키게 된 것입니다. 이들의 음악은 모두 각 나라 고유의 민족주의 정신으로부터 시작된 것이지만, 편의상 여기에서는 서유럽 외 지역의 '민족주의 음악', 독일어권의 '후기 낭만주의 음악', 프랑스의 '인상주의 음악'으로 분류하여 정리하도록 하겠습니다.

 

1. 민족주의 음악

 

19세기 음악에서 민족주의적인 경향이 점점 더 짙어지게 되는 이유는, 지금까지 서양음악의 주류를 이끌었던 독일과 프랑스, 이탈리아가 아닌 다른 민족의 특성이 새로운 음악적 요소로 낭만주의 어법에 첨가되면서 이국적이면서도 신비로운 색다른 청취를 가져왔기 때문입니다. 당시 유럽 작곡가들은 자기나라의 민족적 특색을 음악에 어떻게 녹여낼 것인가 하는 점에 대해 고심하였는데, 이러한 경향은 20세기까지 지속되었습니다. 이러한 경향 속에서 독일과 프랑스처럼 깊은 음악의 전통을 가지고 있던 나라들도 서로 경쟁했지만, 과거에 그런 음악적 번영을 누려보지 못했던 나라들도 이제는 민족적 특징을 자신 있게 음악에 반영하기 시작했습니다.

 

1) 러시아

 

러시아는 유럽에서의 음악적 위상을 강화시키기 위해 페테르 대제와 카트린드 대제가 의식적인 서구화 정책을 펼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19세기 초에 이르기까지는 러시아의 민족적인 음악 성향이 이루어지기 힘든 풍토에 놓여있었습니다. 특히 러시아는 1812년, 나폴레옹의 러시아 침공을 계기로 자문화에 대한 의식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이것이 예술 작품의 고유한 양식을 반영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하여 이렇게 시작된 러시아의 민족주의적 경향이 어디로 나아가야할 지에 대해 러시아의 지식인들은 선택을 해야만 했습니다. 따라서 러시아에서는 서구 유럽의 고급문화를 모델로 삼자는 서구파와,

자신들의 민속 문화를 찾자는 민족주의파로 대립되어지게 되었습니다.

 

민족주의파를 이끌었던 첫 번째 작곡가는 미하일 글린카(Mikhail Glinka, 1804년 ~ 1857년)로, 19세기 초 러시아에서 주류를 이루었던 이탈리아와 독일의 음악어법으로 러시아적 줄거리를 가진 오페라를 작곡하였습니다. 민족주의파의 또 다른 대표적 인물이었던 밀리 발라키레프(Mily Balakirev, 1837년 ~ 1910년)는 러시아 음악의 뿌리를 찾기 위해 같은 목표를 가지고 있던 알렉산더 보로딘(Alexander Borodin, 1833년 ~ 1887년), 세자르 큐이(Cesar Cui, 1835년 ~ 1918년), 모데스트 무소르크스키(Modest Mussorgsky, 1839년 ~ 1881년), 니콜라이 림스키-코르사코프(Nicolai Rimsky-Korsakov, 1844년 ~ 1908년) 등과 함께 러시아 5인조를 구성하여 러시아 민족주의 음악을 발전시키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밀리 발라키레프를 제외하고 정규적인 음악교육을 받아보지 못했던 군인, 학자 등이었지만 민족주의 음악에 대해서는 매우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특히 그들은 러시아의 문학적인 내용을 담아내고 있는 프로그램 음악이나 성악음악 장르를 택했으며, 그 재료나 양식에 있어서도 민속적인 요소를 발굴해 내고자 했습니다.

 

① 모데스트 무소르크스키

모데스트 무소르크스키의  오페라 《보리스 고두노프》(Boris Godunov, 1872년)를 보며느 러시아의 민족주의 음악의 진수를 알 수 있습니다. 《보리스 고두노프》는 러시아 민족주의 작가 알렉산더 푸쉬킨(Alexander Pushkin, 1799년 ~ 1837년)의 역사극입니다. 줄거리는 합법적인 왕위계승자인 어린 조카 드미트리를 살해하고 왕위에 오른 고두노프가 자신이 '드미트리'라면서 등장한 인물이 반란을 일으키자 죄책감에 시달리다가 끝내 죽는다는 내용입니다. 이러한 내용은 표도르 도스도예프스키(Feodor Dostoevsky, 1821년 ~ 1881년)의 『죄와 벌』과 같은 내적인 심리극과 같은 유형으로 당시 러시아 문학에서 프랑스의 그랑 오페라를 연상시키기도 하지만,  모데스트 무소르크스키는 쥬세페 베르디, 헥터 베를리오즈, 리하르트 바그너 등의 서구 오페라적 요소에 러시아적 주제와 민속적 재료를 접목시켜 러시아 민족주의 음악의 진면목을 보여주었습니다.

 

이 오페라의 볼거리는 작품을 시작할 때 등장하는 황제 보리스 고두노프의 장엄하면서도 화려한 대관식입니다. 교회로 향하는 성직자, 왕과 대신들의 행렬, 이들의 의상과 장식소품은 가히 프랑스 그랑 오페라를 능가할 만큼 화려하고 사치스럽게 연출되기도 합니다.

 

출처 : 무소르그스키 보리스 고두노프 : 대관식 장면 : Orchestra of the Mariinsky Theatre · Valery Gergiev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보리스 고두노프 대관식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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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오페라의 시작은 프롤로그 1장으로 바순과 잉글리시 혼이 연주하는 선율이 클라리넷과 프렌치 혼, 바순과 클라리넷, 첼로와 베이스와 바순에서 대위적으로 성부를 더해가는 형태입니다. 이 선율은 c#단조로 되어있지만 완전 5도가 아닌 완전 4도 C#=F#를 강조하고 있고, 반음 내린 7음을 사용하여 조성적이라기보다는 선법적인 성격이 두드러지는게 특징입니다.

 

출처 :  새 들으며 배우는 서양음악사/프롤로그 1장 도입부

 

모데스트 무소르크스키는 오페라 외에 로베르트 슈만과 같이 피아노 성격소품들도 작곡했는데, 그 대표적인 작품이 《전람회의 그림》(Pictures at an Exhibition, 1874년)입니다. 이 작품은 그와 친분이 있던 화가이자 건축가였던 빅토르 하르트만(Victor Hartmann, 1834년 ~ 1873년)의 그림 전시회를 보고 작곡한 소품들을 모아놓은 것입니다. 평소 빅토르 하르트만은 러시아의 건축이 민속적인 재료로부터 영감을 받아야 한다고 믿었었습니다. 하여 모데스트 무소르크스키는 그의 이런 생각에 공감을 했고, 이를 음악에 반영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아래의 그림은 빅토르 하르트만이 그린 러시아의 전통적인 문입니다.

출처 : 무소르그스키 - 전람회의 그림 中 키에프의 대문 // Modest Mussorgsky - Tableaux D'Une Exposition: La Grande Porte de Kiev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하르트만의 그림 <키에프의 대문>

모데스트 무소르크스키는 빅토르 하르트만의 400여개의 전시회 작품 중, 10개 작품을 선택하여 음악을 붙여넣었고, 이 10편의 소품곡은 처음 도입되는 <산책>  선율이 악장들 사이사이에 삽입되면서 서로 연결을 시켜주었습니다. <산책> 선율은 한 그림에서 다음 그림으로 넘어갈 때 걸음걸이를 묘사한 것으로 《전람회의 그림》 에서 모두 5번 등장합니다. 이 선율은 박자가 5/4, 6/4, 7/4 등으로 계속 변하는 인상적인 단선율인데, 점점 진행해가면서 화성을 동반하여 나타납니다.

출처 : 새 들으며 배우는 서양음악사/무소르크스키, 《전람회의 그림》 중 <산책>

이 작품은 여러 작곡가들에 의해 오케스트라용으로 편곡되기도 했지만, 그 중에서 모리스 라벨(Maurice Ravel, 1875년 ~ 1937년)의 편곡이 가장 잘 알려져 있습니다.


▶ 출처 : 새 들으며 배우는 서양음악사. 허영한 외 6명 공저. 심설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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