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작은대학교입니다.
오늘은 지난 시간에 이어 19세기의 피아노음악에 대해 계속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알아볼 작곡가는 쇼팽입니다. 쇼팽은 오페라나 오케스트라 음악보다는 피아노음악에서 두각을 나타냈기 때문에 그의 생애와 그의 업적, 피아노 음악에 대해서는 여기서 서술하도록 하겠습니다.
3) 프레데릭 쇼팽
프레데릭 쇼팽(Frederick Chopin, 1810년 ~ 1849년)은 프랑스인 아버지와 폴란드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어머니로부터 피아노를 배워왔다가 이후에는 바르샤바 음악원에서 작곡과 이론을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체계적인 음악교육을 받은 그는 1828년부터 1829년까지 베를린과 비엔나 여행을 통해 더 넓은 음악 세계에 눈을 뜨게 되었고, 당시 연주가들과 마찬가지로 바이올린 비르투오소 니콜로 파가니니(Nicolo Paganini, 1782년 ~ 1840년)의 연주를 보고 열광하였습니다. 1831년 파리에 정착한 그는, 피아노 비르투오소, 그리고 작곡가로서 곧 명성을 얻게 됩니다. 당시 평론가들은 프레데릭 쇼팽의 음악이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독창적인 아이디어로 가득찬 음악이라고 평가하였습니다. 그는 자코모 마이어베어, 헥터 베를리오즈, 프란츠 리스트, 하인리히 하이네, 오노레드 발작(Honore de Balsac, 1799년 ~ 1850년) 등과 같은 사람들과 점점 가깝게 지내며 당시 파리에서 가장 부유했던 은행가 로스차일드 남작(Baron James de Rothschild)과 같은 귀족들의 살롱에 입문하게 될 수 있었습니다.
공공연주회장에서 연주하는 것을 극도로 꺼렸던 프레데릭 쇼팽은 생활비의 대부분을 귀족들의 값비싼 피아노 레슨비로 충당했고, 그의 연주는 중요한 귀족 후원자들의 살롱에서만 행해졌습니다. 거기에서 그는 음악적으로 더욱 더 새로운 실험들을 시도해볼 수 있었습니다. 그가 공공연주회장을 기피했던 이유는, 그의 섬세하고 우아했던 연주가 콘서트홀보다는 작은 살롱에서 아주 효과적이었기 때문입니다.
프레데릭 쇼팽 | |
1810년 | 3월 1일 바르샤바 근교에서 출생 |
1822년 ~ 1827년 | 바르샤바 음악원 원장을 사사 |
1829년 | 바르샤바 귀족들의 후원을 받음 |
1830년 | 비엔나, 독일 연주, 《피아노협주곡 제 1번》, 《피아노협주곡 제 2번》 |
1831년 | 파리 |
1832년 | 첫 번째 공공음악회 이후 명성을 굳힘, 살롱 사교계 회원, 유명 작곡가, 작가, 화가들과 친분 |
1836년 | 여류 시인 조르쥬 상드(George Sande)와 만남, 폐병 증세 |
1837년 | 영국 체류 |
1838년 | 폐병 악화, 상드와 마요르카에서 요양생활, 《전주곡》 |
1840년 | 《b♭단조 피아노소나타》 |
1841년 ~ 1847년 | 파리에 살면서 여름에는 상드의 별장에서 지냄, 폴로네즈, 《b단조 피아노소나타》 |
1847년 | 상드와 결별 |
1848년 | 파리혁명, 영국과 스코틀랜드로 연주여행, 런던에서 마지막 공공음악회 |
1849년 | 10월 17일 파리에서 사망 |
프레데릭 쇼팽은 도메니코 스카를라티(Domenico Scarlatti, 1685년 ~ 1757년)와 무지오 클레멘티(Muzio Clementi, 1752년 ~ 1832년)처럼 건반음악 작곡만을 고집했던 낭만시기의 가장 중요한 작곡가로, 첼로소나타 한 작품을 제외하고는 피아노를 위한 음악만을 작곡하였습니다. 그는 독창적인 피아노 언어를 개발했고, 화성적인 효과 또한 극대화시켰습니다. 또한 1831년 이후 파리에 살면서도 조국이었던 폴란드를 잊은 적이 없던 그는 자신의 음악에 민족성이 강한 춤곡 선율이나 리듬들을 자주 사용하기도 하였습니다.
그의 작품은 2개의 피아노 협주곡, 3개의 소나타, Op. 10과 Op. 25를 포함한 27개의 연습곡(Etudes, 1829년 ~ 1832년, 1832년 ~ 1836년, 1839년), 4개의 스케르초(Scherzo), 4개의 발라드(Ballades, 1836년 ~ 1843년), 26개의 프렐류드(Preludes, 1836년 ~ 1839년), 21개의 야상곡(Nocturne, 1827년 ~ 1846년), 왈츠(Waltz), 마주르카(Mazurka, 1826년), 폴로네즈(Polonaise, 1842년) 등의 춤곡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다양한 종류의 피아노 작품들을 작곡하였습니다.
① 레가토와 루바토
프레데릭 쇼팽은 피아노를 노래하는 악기로 다루었습니다. 그의 선율들은 부드럽게 연결시켜 연주하는 레가토(legato) 양식으로 되어있는데, 이는 19세기가 되면서 피아노의 페달이 발달해짐에 따라 가능해진 것이었습니다. 이 외에도 그의 피아노 음악에서 사용되는 또 다른 중요한 주법 중 하나는 바로 루바토(rubato) 입니다. 루바토는 '빼앗다'라는 의미로, 어떤 음표의 시간을 뺏어다가 다른 음표에 덧붙인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즉, 루바토란 감정의 표현을 위해 반주의 리듬은 엄격하게 지키는 반면, 선율의 리듬은 약간의 융통성을 허용해주는 주법입니다. 따라서 템포 루바토란 악구에서 강조하고 싶은 음에 충분한 여유를 부여해 길게 부각시켜주고, 나머지의 음들은 몰아치듯이 연주하는 것입니다.
② 마주르카와 폴로네즈
프레데릭 쇼팽은 56개의 마주르카와 16개의 폴로네즈 작품을 남겼습니다. 그는 폴란드의 두 민속춤인 마주르카와 폴로네즈의 특징적인 요소들을 활용해 민족주의적 정서를 표현하였습니다. 마주르카가 짧고 부드러움을 표현한다면, 폴로네즈는 영웅적이며 장중함을 나타냅니다. 하여 그의 작품《폴로네즈 A♭ 장조》와 《폴로네즈-환타지》는 애국적인 정열을 보여주는 웅장한 작품입니다. 하지만 마주르카를 다른 어느 장르보다 많이 작곡한 것으로 미루어 볼 때, 그는 자신의 정서를 표현하기에는 폴로네즈 보다는 마주르카가 더 적합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한편, 마주르카는 왈츠처럼 3박자로 점음표리듬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래의 사진에서도 보듯이 프레데릭 쇼팽의 마주르카는 첫 박에 점음표리듬이 오고 둘째 박이나 셋째 박에 액센트가 들어가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같은 리듬이 끊이지 않고 계속 나와서 단순하게 들릴 수 있지만, 이를 받쳐주는 화성이나 선율은 복잡하게 뒤틀려있는 것이 쇼팽 작품의 특징입니다.
▶ 출처 : 새 들으며 배우는 서양음악사. 허영한 외 6명 공저. 심설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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