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음악사

19세기 오페라 1/5(2022.11.04)

작은대학교 2022. 11. 4.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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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작은대학교입니다.

 

오늘부터는 19세기의 오페라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오페라는 지역별로 차이가 있기 때문에 이번에는 작곡가 위주로 알아보되, 국가별로 구분하여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ⅩⅨ. 19세기 오페라

17세기부터 이탈리아의 피렌체와 로마, 베네치아, 나폴리를 중심으로 성행한 오페라는 이후에 프랑스와 독일, 영국 등의 주변국으로 전파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흐름으로 인해 19세기 유럽 대부분의 도시에서 오페라하우스는 사교와 오락의 장이 되었습니다. 오페라는 스릴 있는 이야기의 구성과 무대효과, 의상, 발레, 대본의 수려한 운문체, 그리고 듣기 편하면서도 아름다운 선율, 화려한 장식 등의 조화로운 구성을 통해 대중들의 인기를 끌었던 장르입니다. 이름난 오페라 작곡가들은 작품의 의뢰가 쇄도해 단기간에 오페라 작품을 완성해야만 했고, 그만큼 경제적으로 큰 부를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작곡된 작품들은 여러 도시들에서 연주되면서 국제적인 명성을 얻기도 하였습니다.

 

오페라는 극을 동반한 작품이기 때문에 각 나라의 고유한 정서에 따라 다양하게 발달할 수 있었으며, 각 언어의 독창적인 강세와 억양, 분절법에 따라 선율이나 리듬도 다르게 발달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여러 가지 요인들에 의해 각 나라의 오페라가 다른 성격으로 만들어지기 시작했습니다. 19세기의 이탈리아 오페라의 소재는 주로 복잡하게 얽혀있는 남녀 간의 사랑이며,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선율의 아리아가 중심이 되었습니다. 프랑스의 오페라는 사랑과 가족, 나라에 대한 충정 등의 다양한 주제를 기발한 볼거리와 함께 연출했는데, 이런 연출로 인해 무대장치의 기술에 대혁신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반면 독일의 오페라는 소재들을 자주 신화나 전설에서 가져왔고, 선과 악, 혹은 복수와 헌신적인 사랑에 의한 구원의 이중성을 다루었는데, 이 때 음악적으로 복잡한 화성이 주축이 되면서 극적인 전개를 도와주웠습니다.

 

1. 이탈리아 오페라

 

19세기 전반에 온 유럽을 통틀어서 이탈리아보다 오페라가 성행했던 곳은 없었습니다. 이탈리아 각 도시의 오페라하우스에서는 매일 밤 많은 관중들로 꽉 들어찼습니다. 이들은 때때로 좋아하는 스타 성악가의 노래를 따라 부르기도 했고, 마음에 들지 않은 성악가에게 야유를 퍼붓기도 했습니다. 이탈리아 오페라에서는 아리아가 중심을 이루었기 때문에 주인공의 아리아를 듣는 것에 환호했던 청중들은 다른 줄거리가 진행되는 동안에는 간식을 먹거나 잡담을 나누면서 다시 아리아가 나오길 기다리기도 했습니다. 오페라 작곡가와 대본가는 흥행에 탁월한 감각을 갖고 있었으며, 새로운 오페라의 주요한 아리아가 미리 공개되지 않도록 철저하게 관리하곤 했습니다.

 

프랑스나 독일 오페라가 화성이나 이야기 줄거리 등에 낭만주의적인 음악양식의 변화를 시도하고 있을 때, 아름다운 선율에 집중되어 있었던 이탈리아 오페라는 프랑스와 독일 오페라에 비해 비교적 보수적으로 남아있었습니다. 이탈리아의 19세기 오페라 전통은 고전주의 오페라를 계승한 죠아키노 로시니에서 시작해 가에타노 도니체티와 빈첸조 벨리니를 거쳐 주세페 베르디에 의해 완성되었습니다.

 

1) 죠아키노 로시니

 

출처 ; 조아키노 안토니오 로시니 - 나무위키 (namu.wiki)

 

죠아키노 로시니(Gioacchino Rossini, 1792년 ~ 1868년)는 19세기 초반에 가장 성공한 오페라 작곡가였습니다. 그는 금관악기를 연주했던 연주자와 성악가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가 1816년에 작곡한 《세비야의 이발사》(Il barbiere di Siviglia, 1816년)는 피에르 데 보마르쉐(Pierre de Beaumarchais, 1732년 ~ 1799년)가 쓴 대본에 의한 작품입니다. 죠아키노 로시니는 지오반니 파이지엘로(Giovanni Paisiello, 1740년 ~ 1816년)의 오페라 《세비야의 이발사》(1782년)를 보고 이 작품을 탄생시키게 되었으며, 모차르트 또한 이 작품을 보고 그 후속 작품으로 피에르 데 보마르쉐의 대본을 보고 《피가로의 결혼》을 작곡하였습니다.  죠아키노 로시니는 《오텔로》(Otello, 1816년)와 같이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사용한 비극 오페라도 다수 작곡했지만, 그 중 어느 것도 그의 희극 오페라가 거둔 성공에는 미치지 못했습니다.

 

과거의 오페라에서는 이야기의 진행을 담당했던 레치타티보와 감정의 상태를 담당했던 아리아를 명백하게 구분했던 반면 죠아키노 로시니는 이들 사이에 관현악 에피소드나 합창을 넣어 구분하기보다는 극의 연속성을 추구하였습니다. 또한 그는 레치타티보 세코 대신 화려하고 효과적인 레치타티보 아콤파냐토를 많이 사용하였습니다. 이러한 죠아키노 로시니의 새로운 오페라의 면모는 이탈리아 오페라 뿐만 아니라 프랑스, 독일 오페라 양식에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2) 빈첸조 벨리니

 

출처 : 빈첸초 벨리니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빈첸조 벨리니(Vincenzo Bellini, 1801년 ~ 1835년)는 죠아키노 로시니보다 9살 연하로, 그의 오페라 명성을 이은 작곡가입니다. 34세라는 비교적 짧은 생을 마감했던 그는 비극 오페라만 10곡을 작곡하고 희극 오페라는 작곡하지 않았습니다. 1831년에 작곡된 《노르마》(Norma)와 《몽유병자 여인》(La sonnambula)은 그의 작품 중에서 가장 많이 연주되고 있는 작품입니다. 《노르마》의 유명한 카바티나인 <정결한 여신>(Casta diva)은 빈첸조 벨리니 특유의 길고 구불구불하고 장식적인 선율을 잘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빈첸조 벨리니는 '노래로 울게 만든다'라는 벨칸토(bel canto)의 모토 아래 서정적이고 열정적인 선율로 청중들을 감동시켰습니다. 벨칸토는 아름다운 노래라는 의미로 아리아 중심의 이탈리아 오페라의 특징을 잘 나타내는 용어로 사용됩니다. 이 벨칸토의 창법은 화려하고 아름다운 목소리의 기교적인 노래 연주 방법을 의미합니다.


▶ 출처 : 새 들으며 배우는 서양음악사. 허영한 외 6명 공저. 심설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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