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음악사

20세기 초반의 음악적 상황 1/4(2023.01.25)

작은대학교 2023. 1. 25.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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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작은대학교입니다.

 

오늘부터는 19세기를 지나 20세기에 대해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20세기에는 19세기보다 더 복잡하고 어려운 음악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는데요. 우선 19세기 말의 음악적 양상들이 20세기 초에 어떻게 변화를 해 나아갔는지 알아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ⅩⅩⅢ. 20세기 초반의 음악적 상황

 

1. 사회적 배경

 

20세기가 되면서 사회전반에 커다란 변혁이 시작되었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겉으로 잘 드러났던 것은 바로 물질문명의 급격한 발달입니다. 미국과 서유럽을 중심으로 19세기 말경부터 시작된 각종 발명은 20세기에 들어와서도 계속되었고, 이로 인해 발명된 전화나 라디오, 전기, 자동차 등의 문명의 이기는 1920년대가 되자 미국과 유럽의 일상생활 속에 친숙한 일부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그 발명은 또 여기에 그치지 않고 TV와 로켓, 컴퓨터 등까지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더욱이 산업사회를 특징지을 수 있는 기계에 의한 대량생산을 통해 제작된 물건들이 일반인들에게도 빠르게 보급되기 시작했습니다. 하여 20세기 초의 많은 사람들은 물질문명의 발달에 크게 고무되어 앞으로 다가올 자신들의 삶에 대해 낙관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기계를 통한 생산과 대량생산, 즉 과다한 공급은 계속되었지만 일을 할 수 없는 노동자들이 소비할 수 없게 되자 이는 경제적 위기로 연결되었고, 그 결과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대한 후유증은 전쟁이 끝난 이후인 1918년까지도 쉽게 없어지지 않아 많은 사람들이 절망감에 빠지는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하여 유럽 사회가 전반적으로 전쟁의 참상으로부터 헤어나오지 못했고, 여기에 작곡가들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이 시대의 작곡가들은 다른 예술가들과 마찬가지로 자신들의 살던 시대가 사회적, 경제적 기능을 상실했다고 생각했는데, 이는 사실이었습니다.

 

출처 : 1929년의 경제공황은 무엇인가? (pressian.com)/경제 대공황

1929년 10월, 뉴욕의 월스트리트에서 시작된 이른바 '경제대공황'은 오랫동안 세계의 경제를 깊고 긴 침체에 빠뜨리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침체 속에서 스페인에서는 혁명을 일으켰고(1931년), 러시아에서는 스탈린이 본격적으로 예술탄압 정책을 펴기 시작했으며(1932년), 독일에는 히틀러가 집권하면서(1933년) 유럽사회는 더더욱 혼란 속에 빠지게 됩니다. 결국 경제적인 위기로 부터 다시금 시작된 혼란으로 인해 결국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게 되었고, 전쟁이 끝날 때까지 전 세계는 다시 어수선한 분위기가 계속되었습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이 진행되는 동안, 20세기 초엽 유럽에서 활동하던 주요 작곡가들은 전쟁과 관련된 개인적인 이유 때문에 미국으로 망명을 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미국 사회에는 유럽의 문화가 이식되기 시작했습니다. 그 중 대표적인 작곡가로는 유태인 출신이었던 아놀드 쇤베르크(Arnold Schoenberg, 1874년 ~ 1951년)가 있는데, 그는 나치를 피해 보스턴으로 망명했다가 건강상의 이유로 다시 캘리포니아로 이주해 UCLA에서 교수직을 역임하게 되었고, 독일인이었던 파울 힌데미트(Paul Hindemith, 1895년 ~ 1963년)도 나치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해 예일대학교의 교수로 재직하였습니다. 헝가리 출신이었던 벨라 바르톡(Bela Bartok, 1881년 ~ 1945년)은 줄리어드음악원과 콜롬비아대학교에서 교육 연구활동을 하게 되었으며, 러시아에서 태어나 파리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이고르 스트라빈스키(Igor Stravinsky, 1882년 ~ 1971년)는 하버드대학교의 객원교수로 초대를 받고, 그 곳에서 특강 강의록을 바탕으로 『음학시학』(Poetique musicale, 1942년)을 출판하기도 했습니다. 

 

1) 과학기술의 발달과 문명의 이기

 

의학 분야에서는 과거에 인류를 몰살시켰던 질병들에 대한 치료법들이 개발되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유전학적인 사실들이 개발되어, 신체의 한 기관만을 이식하는 획기적인 기술이 발달되는 등 과거에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일들이 각종 연구들을 통해 밝혀지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과거에는 손대지 못했던 인간의 정신활동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져, 지그문트 프로이드(Sigmund Freud, 1856년 ~ 1939년), 알프레드 아들러(Alfred Adler, 1870년 ~ 1937년), 카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 1875년 ~ 1961년)을 비롯한 심리학자들은 인간 내면의 깊숙한 부분에까지 탐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물리학 분야에서는 200년 동안 우리의 상식을 지배해왔던 아이작 뉴턴의 고전역학이 상대성 이론의 등장으로 입지가 흔들리게 되었습니다. 알버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년 ~ 1955년)은 1905년에 특수상대성 이론을 발표했고, 곧이어 1916년, 일반상대성 이론을 발표함으로써 그 이전까지 있었던 고전역학적 기반을 단숨에 뒤집게 되었습니다. 또한 광전효과 연구와 이론 물리학에 기여한 업적으로 1921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하게 되었습니다. 

 

천문학 분야에서도 급격한 연구의 진전을 이루면서 20세기 후반, 인류는 이제 화성과 금성의 비밀을 캐내기 시작했고, 1969년에 이르러서는 달에 첫 발자국을 남기게 되었습니다.이러한 상황 속에서 1908년, 무조음악의 벽을 두드린 아놀드 쇤베르크의 《현악 4중주 제2번》은 이례적으로 소프라노 독창을 포함하고 있는데, 그 가사(슈테판 게오르그[Stefan Anton George, 1868년 ~ 1933년]의 시) 중 "나는 다른 혹성의 대기를 느낀다."는 구절을 볼 때, 20세기 초에 인류가 우주에 도전하고자 했던 당시의 상황을 음악 작품에서도 느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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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음악과 현대문명

 

여러 가지 분야의 발전과 변화가 음악의 발전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에 의문을 품을 수 있지만, 실제로 이러한 것들은 음악에 크나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습니다. 20세기 작곡가들은 산업화의 산물들이 자기들이 살던 시대의 상징이라고 생각을 했기 때문에 기계문명 자체를 소재로 다루기도 했습니다. 특히 몇몇 작곡가들은 기계가 커다란 힘과 활발한 운동의 상징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도 했는데, 이러한 경향은 특히 1920년대의 작품들에 잘 반영되어 있습니다. 그 중에서 열차가 달리는 '칙칙폭폭'과 같은 소리 등을 묘사했던 아서 오네게르(Arthur Honegger, 1892년 ~ 1955년)의 《퍼시픽 231 열차》(Pacific 231, 1923년)나 철공소의 소음을 묘사한 세르게이 프로코피에프(Sergey Prokofiev, 1891년 ~ 1953년)의 《철의 춤》(Stal'noy skok, 1927년)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특히 20세기에 작곡된 음악 분야 중 전자음악이나 구체음악(musique concrete), 그 외 다른 음악들은 전기가 발명되지 않았더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장르였을 것입니다. 20세기 초엽부터 작곡가들은 전자악기의 사용을 마음 속에 그리기 시작했고, 1920년이 되어 프랑스의 작곡가 에드가르 바레즈(Edgrad Varese, 1883년 ~ 1965년)는 전자음향을 사용해 음악을 연주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여겼고, 이를 기반으로 전자악기의 개발을 주장했지만 당시에는 이를 위한 기술이 충분치 않았기 때문에 실현될 수 없었습니다. 또한 두 차례의 전쟁으로 전자악기를 개발할 정신적, 물질적 여유 또한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전쟁이 끝난 이후 파리에서 피에르 쉐퍼(Pierre Schaeffer, 1910년 ~ 1995년)를 필두로 전자기기를 이용한 새로운 실험적 시도가 이루어지게 되었고, 그 결과 구체음악이라는 새로운 장르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구체음악이란 자연의 소음과 인간이 만들어낸 소음을 그대로 녹음하거나, 전자장치를 이용해 그 소리를 변화시켜 녹음한 뒤 테이프로 제작한 것이기 때문에 영어권에서는 이를 테이프 음악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1950년대부터는 신디사이저를 이용해 소리를 전자적인 방법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고, 이것을 기반으로 전자음악 분야가 급속도로 발전하여 20세기 음악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더욱이 1960년대에는 컴퓨터의 보급이 시작되면서 소리의 특징들을 수로 변환할 수 있게 되었고, 1980년대부터는 미디 산업의 획기적인 발달로 과거와 같이 녹음기기에 의존하지 않아도 현장에서 컴퓨터로 디지털 음향을 만들어내는 것이 가능해졌습니다. 허나 20세기의 작곡가들은 그 이전 시대의 작곡가들에 비해 상상력이나 창의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이런 전자음향을 사용했다기 보다는, 이들이 살던 시대의 여건이 이렇게 조성되어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이런 시도를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 출처 : 새 들으며 배우는 서양음악사. 허영한 외 6명 공저. 심설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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